공동주택 리모델링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리모델링 조합과 추진위원회가 모인 단체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공식적으로 면담을 요청했다.
리모델링 관련 단체들은 정부가 재개발·재건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반면에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 유감도 드러내고 있다. 재건축 공사비와 관련한 증액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리모델링이 재건축을 보완할 수 있는 아파트 정비 방식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재건축-리모델링 경쟁 아닌 상호보완 관계"
서울시리모델링주택조합협의회(서리협)는 최근 대통령 비서실에 공문을 보내 리모델링 관련 공약 이행 촉구와 면담 요청을 건의했다고 21일 밝혔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신속한 리모델링 추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리모델링 추진법을 별도로 제정하고, 안전성 검토 과정에 민간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리모델링 수직·수평 증축 기준을 정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서리협 관계자는 "취임 후 2년이 돼 가는데 공약이 이행됐거나 무탈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며 "직접 만나 리모델링 관련 공약 이행을 위한 제언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리모델링협회가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연 '공동주택 리모델링 당면 정책세미나'에서는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신도시 특별법)'이 통과되고 지난달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1·10 대책)'이 발표됐지만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만 담겨 리모델링이 소외됐다는 이유에서다.
이 협회의 이동훈 정책법규위원장은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한 뒤 성능이 다시 떨어지면 재건축하는 게 순리였는데 언젠가부터 리모델링 사업은 지체되고 재건축 사업은 당겨졌다"며 "특히 1기 신도시의 경우 리모델링과 재건축이 경쟁관계처럼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1기 신도시 특별법 이후 재건축보다 리모델링 사업절차가 더 복잡해져서 리모델링이 설 자리가 없게 됐다"며 "주택법 내 혼재된 조항을 모아 리모델링 특별법을 만들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리모델링 촉진 정책은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도 서운함이 드러났다. 이원식 포스코이앤씨 상무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의 사업 취지는 결코 다르지 않다"며 "정부가 반복적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와 지원만을 강조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사업주체들이 정책적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12만가구로, 세대수 증가 허용범위 15%를 곱하면 1만8000가구의 신규 공급이 가능하다"며 "전국 주요 지자체의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보면 리모델링 가능 단지는 250만가구로, 향후 37만가구 공급이 기대된다. 리모델링은 도심 주택 공급에 있어 유용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리모델링 역차별'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세미나에 참여한 염광은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 사무관은 "재건축만 활성화하는 것처럼 느끼실 순 있지만 그렇지 않다. 리모델링과 재건축 둘다 소유주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며 "정부는 소유주들이 재산권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고 개선과제를 발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리모델링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제도개선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도 정부가 업계, 전문가 의견을 듣고 많은 부분을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여러 개선방안을 강구해 법령에 담으려 하는 만큼 이번 회기 내에 통과되지 않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리모델링 공사비를 현재보다 줄여 재건축의 대안이 될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박홍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리모델링은 골조를 어느 정도 살리기 때문에 건축비 절감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현행 리모델링은 구조를 너무 많이 철거해 비용이 많이 들지만 폐기물을 줄일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령해석 바뀌었다면 경과규정 둬야...법 개정도 필요"
세미나에서는 '필로티' 규제 강화 이슈도 뜨거운 감자였다. 그간 필로티 설계에 따른 1개층 상향이 수평증축으로 간주돼 1차 안전진단만 실시했었다. 그런데 이를 수직증축으로 판단해 2차 안전진단을 요구하는 법령해석이 등장하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관련기사 : '필로티가 너무해'…리모델링 추진 단지 골머리(2023년12월19일)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조합들은 "지자체 자율이라지만 상급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1차 안전진단에서 구조안전성까지 평가하면 될 일 아니냐", "5억원 넘는 비용을 들여 2차 안전진단까지 실시했다"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송득범 변호사(법무법인 영진)는 "법제처가 동일 법률 내 동일 표현을 다르게 봐 다년간 시행했던 것과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으면서 국토부와 서울시, 일선 현장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쳤다"며 "추후 정반대의 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경우 판결이 법령해석보다 우선 적용돼 더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 변호사는 "법령해석이 달라졌다면 근본적으로 그 내용을 명확히 고칠 필요가 있다"며 "주택법 개정 또는 리모델링 특별법 제정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경우에도 경과규정을 둬 기존 조합에 소급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염 사무관은 "필로티 민원으로 사무실 전화에 불이 날 정도다. 여러 조합이 필로티를 추진하다가 혼란을 겪어 안타깝다. 법령해석 과정에서 경과규정이 언급됐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부가 해석을 지자체에 넘겨 경과규정을 적용할 길은 마련했지만, 인허가권자가 지자체인 만큼 국토부가 관여하긴 쉽지 않다"며 "국토부와 지자체, 조합, 시공사가 다 같이 지혜를 모으면 여러 해결방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