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급부족 해결책으로 '민간 신축 매입임대주택'을 내세우다 보니 이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물량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심사해야 할 민간 신축 매입임대주택 신청은 14만건에 육박했으며, LH가 올해 공급까지 해야 하는 물량은 당초 목표치의 2배인 5만가구로 늘었다.
사업자 신청 유인을 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 도입한 '공사비 연동형'도 여태 안착하지 못했다. LH는 공급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신청 기준을 확대했지만 업무 소화 면에서도, 재무적인 부담 면에서도 '과부하'가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LH가 최근 '공사비 연동형' 신축매입임대 주택 기준을 '수도권 100가구 이상'에서 '수도권 50가구 이상'으로 확대한 것은 목표 물량을 채우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배경에 있다. 그 과정에서 업무는 더욱 소화하기 어려워지고 사업자들은 혼란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관련기사: [혼돈의 신축매입임대]①회심의 '공사비 연동형'도 허술(11월6일)
목표 2배…무리한 추진에 '소화불량'
이 같은 문제는 한정된 인력 내에서 LH의 업무 부담이 과도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LH에 따르면 지난 10월11일 기준 신축 매입임대 신청 건수는 13만9800여건으로 14만건에 육박했다.
지난해 신청건수는 3만3500건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검토해야 할 물량이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공사비 연동형'이 새로 도입되며 심사해야 할 내용은 더 늘었다. 100가구 이상에서 50가구 이상으로 기준이 변경됨에 따라 공사비 연동형 적용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초 LH의 올해 신축 매입임대 목표량은 2만7000가구였다. 그것도 작년 공급물량이 예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면서 해당 물량까지 더해진 규모였다. 여기에 정부가 8·8대책(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으며 목표량이 5만가구로 늘었다. 내년까지 6만가구를 더해 총 11만가구를 공급해야 한다. 당초 계획의 2배, 평년수준으로는 약 3~4배 늘었다.
매입임대는 LH가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 만큼 기준이 까다롭다. 사업자와 소통하고 조율해야 할 일도 많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건축임대 사업에 비해 업무량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로 평가된다. 내부에서도 물량이 과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LH 한 관계자는 "매입임대가 중요한 업무긴 하지만 사실 LH의 주 업무는 아닌데, 주 업무에 투입돼야 할 기술직군들이 매입임대 업무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LH는 업무 분산을 위해 내부인력 충원을 비롯해 최근 새로 뽑은 신입사원들 다수를 매입임대사업 부서로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매입임대 업무를 담당했던 전 LH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연간 2만가구 매입도 쉽지 않은데 물량이 과도하다"라며 "목표량을 채우려 막판에 시간에 쫓겨 매입하는 경우 정주여건 등이 떨어져 차후 공가(빈집) 매입 결과가 생기거나 민원이 다수 접수되는 등 2차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매입가격 늘어…재무부담 가중
매입비용도 부담이다. 지난해 LH 매입임대 구매가격 대비 정부 지원 단가비율은 65%였다. 나머지는 LH가 부담해야 한다. 공사비 연동형으로 공사비 상승 값을 쳐주기로 한 만큼 매입임대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LH의 '2024~2028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부채 규모는 164조원, 부채비율은 221.4%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8년에는 227조, 232.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임대주택 관리 비용을 비롯해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인해 운영단계에서도 비용 부담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 지난해 LH의 임대주택부문 매출손실만 2조2565억원으로 집계됐다.
LH 관계자는 "공사비 연동형이 확대될 경우 평균적으로 매입 비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부담을 감안해 확대 방안을 정했지만 예상치 등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공사비 연동형 등 신축 매입임대 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면서도 "물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품질과 입지다. 수요가 붙고 매입임대주택이 제 기능을 하려면 질적인 측면을 강화하고 전체적인 관리 시스템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