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연말정산이나 기업의 법인세 등에서 공제받는 비과세·감면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선심성으로 무분별하게 깎아주던 세금 제도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모습이다.
27일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2014년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내년 국세 감면액은 33조1694억원으로 올해보다 4578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3년 연속으로 33조원대 감면 규모를 유지한다. 내년 국세감면 규모를 올해 추계인구 5022만명으로 단순히 나누면 국민 1인당 9115원씩 세금감면 혜택이 줄어든다.
국세수입과 비교한 감면율은 내년 13.2%로 올해보다 0.6%포인트 하락한다. 내년 국세 감면율은 사상 초유의 세수 호조를 기록했던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최근 세수 부족 현상을 감안하면 비과세·감면 규모가 더 많이 줄어든 셈이다.
◇ 5년째 제 자리 걸음
정부가 작성한 내년 조세지출예산서는 올해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감사원 지적에 따라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를 비롯해 4개 제도의 감면 규모를 포함시켰다.
기존에 감면이 이뤄지면서도 예산서에 담지 않았던 제도를 새로 넣으면서 전체 국세감면액은 연간 4조3000억원이 늘었다. 과거 방식 그대로 조세지출예산서를 작성했다면 내년 국세감면율은 12.0%로 떨어진다. 이는 2000년대 최저 국세감면율을 보였던 2007년(12.5%)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와 올해 수치도 모두 조정됐다. 문제의 조세지출 4개 항목을 빼면 2012년 국세감면액은 30조1141억원, 2013년은 29조9865억원으로 줄어든다. 국세감면율 또한 12%대로 내려간다.
2011년 이전의 국세감면 수치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국세감면액이 31조1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30조원 안팎이었다.
한해 2조원 이상 지출하는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등의 항목을 포함시키면 현재와 같은 33조원 수준에 근접해진다. 사실상 2009년부터 내년까지 5년간 국세감면 규모가 늘지 않는다는 의미다.
◇ 前정부의 그림자
정부의 실제 조세지출 내역은 1~2년 정도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이날 기재부가 발표한 조세지출예산서에는 2012년 실적과 2013년 잠정치, 2014년의 전망이 담겨 있다.
지난해 깎아준 세금 규모는 확정됐지만, 올해 실적은 연말이 지나야 정확한 집계가 가능하다. 내년 수치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함께 예측한 전망치를 내놨을 뿐이다.
통상적으로 조세감면 제도는 2~3년의 시한을 두고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전의 세법개정에 따라 감면 내역이 크게 달라진다. 즉 올해와 내년 전망치는 사실상 전 정부의 세법 개정이 상당부분 반영돼 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12년에는 조세감면 규정 5개를 신설하는 대신 24개 제도를 폐지했다. 표심에 민감한 국회가 19개 조세감면 제도를 없앤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치였다.
지난해 세법개정에서 감면 규모를 축소한 항목들은 올해부터 세수확충 효과가 나타날 예정이다. 올해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율이 낮아지고, 연구개발(R&D)비용 세액공제 산식이 바뀌면서 내년에는 관련 세수입이 각각 2248억원, 1396억원씩 늘어날 전망이다.
◇ 내년에 더 조여맨다
박근혜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지하경제 양성화와 함께 비과세·감면 정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향후 5년간 18조원 규모의 비과세·감면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기재부가 지난 26일 확정한 세법개정안에도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15%에서 10%로 낮추는 등 세원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공제는 최근 수년간 공제율을 계속 낮추면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연구개발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10%에서 3~5%로 낮추면서 기업들이 누려온 법인세 감면 혜택이 절반 이상 깎일 전망이다. 재활용폐자원 매입세액공제율 축소로 인해 해당 기업들은 내년부터 1607억원의 세금 지원이 끊긴다.
조세 지출이 줄어드는 금액만큼 국고가 채워지기 때문에 세금을 더 걷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 정부는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 제도 44개 중 77%인 34개를 일몰 종료하거나 축소하는 방침을 정하고, 관련 세법 개정안을 내달 2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