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상속재산을 물려받는 후손들은 장례를 치르고 나면 상속세를 걱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사망한 후 6개월 내에 상속세를 신고·납부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20~40%에 달하는 가산세를 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사망 후 9개월과 10개월씩 상속세 신고기한을 두고 있으며, 영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6개월, 독일은 3개월의 시간을 준다. 우리나라와 일본, 독일은 상속받는 사람이 납세 의무를 지는 반면, 미국과 영국은 유산·유언 집행인이 상속세를 내야 한다.
실제 상속세 부담 규모는 국가별 소득 수준이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다르지만, 배우자의 세부담을 자녀보다 적게 가져가는 경향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게 나타난다. 똑같은 유산을 물려받더라도 배우자는 세금을 덜 내고, 자녀는 무거운 세금을 내는 것이다.

◇ 상속세 공제는 '촌(寸)'이 가른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무촌' 배우자와 '일촌' 자녀에 대해 다른 공제 규정을 두고 있다. 배우자는 상속받은 재산 가액에 따라 최대 30억원을 공제받을 수 있고, 자녀는 1인당 3000만원(미성년자는 500만원)까지 공제를 적용한다. 공제 수준의 차이가 100배에 달한다. 현재 법무부가 추진하는 상속법 개정안은 배우자에게 상속 재산의 50%를 먼저 떼주고 상속세는 물리지 않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면 실제 세부담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생전에 증여할 때도 공제 규모는 촌수에 따라 각기 다르다. 배우자는 최대 6억원까지 증여공제를 받지만, 자녀는 5000만원, 기타 6촌 이내의 친족은 500만원 한도로 공제가 가능하다.
독일은 상속 대상 배우자에게 75만6000유로(약 11억원)의 인적공제를 주는 반면, 자녀는 연령에 따라 최대 45만2000유로(약 6억5000만원)까지 공제한다. 배우자에 비해 자녀의 상속공제 규모는 절반 정도로 설정했다.
일본은 세액공제 형태로 배우자에게 1억6000만엔(약 16억원)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고, 미성년자는 20세가 될 때까지 연간 6만엔(약 60만원) 정도만 세금을 깎아준다. 20세가 되면 최대 120만엔(1200만원)의 상속세를 공제받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증여에 대해서는 인적공제를 적용하지 않지만,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을 물려줄 땐 공제를 인정한다. 사망하기 전에 주택을 배우자에게 증여한다면 2000만엔(약 2억원), 자녀에게는 1000만엔(1억원)까지 증여 공제가 적용된다. 다만 배우자는 혼인기간 20년 이상, 자녀는 20세 이상일 경우에만 증여 공제를 받을 수 있다.
◇ 배우자의 재혼까지 챙긴다
미국과 영국은 배우자에 대한 상속공제 한도가 아예 없다. 배우자에게 얼마를 상속하더라도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이다. 증여에 대해서도 배우자는 인적공제 한도를 두지 않는다.
미국은 평생 512만달러(약 55억원)만큼 상속세나 증여세 부담 없이 재산을 이전할 수 있으며, 생존한 배우자는 사망 배우자의 미사용 공제금액을 넘겨받는 '이월 승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사망하면서 300만달러의 재산을 상속받은 부인이 다시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미사용 공제금액 212만달러에 자신의 공제한도 512만달러를 추가해 총 724만달러를 세금 없이 물려줄 수 있게 된다.
영국은 살아남은 배우자가 재혼할 경우에도 세금 공제 한도가 따라붙는다. 첫번째 배우자가 사망한 후 재혼했는데 두번째 배우자마저 세상을 떠난다면, 첫 배우자의 상속 때 사용하지 못한 공제액(32만5000파운드 한도)을 더해서 자녀에게 물려줄 때 사용할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미국이나 영국의 배우자 간 미사용 공제금액 이월승계 제도는 우리나라 상속세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면서도 "생(生)의 동반자로서 배우자의 중요성을 인정해 상속이나 증여 공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