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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의 전쟁]④대통령 동기는 잘 해낼까

  • 2014.11.25(화) 11:13

▲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방위사업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대 방위사업청장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신임 청장으로서의 각오를 밝히고 있다.

 

장명진 전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이 제8대 방위사업청장으로 발탁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역대 청장들은 육해공군 장성 출신이거나 경제부처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현 정부 들어 KDI 출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출신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의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곳에 국책연구소 연구원을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 청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이자 도시락 같이 먹던 실험 파트너였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식사를 같이 한 적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시선이 달라졌다. 박 대통령의 '수첩'에 등재된 지 오래됐고 역대 방사청장 중 최고 '실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방산비리 척결은 모든 대통령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전 정권의 율곡비리가 터졌고, 국민의 정부 때는 문민정부 시절의 린다 김 로비 사건이 터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방산비리의 구조를 보고 받고 격노해 방위사업청을 개청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무기도입 시 중개업자가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국방예산을 20% 감축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 실세도 휘둘리는 '복마전' 비리


방산 문제를 구조적으로 국방부에서 떼놓겠다고 2006년 1월 출범한 방사청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육군 소장 출신 김정일 초대 방사청장은 해외 출장 시 방산업자들과 골프를 친 사건, 방산업자인 육사 동기로부터 출장 격려금을 받았다 돌려준 사건 등으로 취임 7개월 여 만에 자진 사퇴했다.

공군 준장 출신 2대 이선희 방사청장은 군수업체 부사장을 지낸 사실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선캠프 출신 예비역 고위 장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방사청 자체의 힘이 빠졌다. 이 와중에  내부 승진된 사단장 출신 양치규 3대 청장은 1년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예비역 해군 소장으로 MB대선 캠프에 몸을 담았었던 변무근 4대 청장 역시 전역 이후 4년 간 방산업체 임원을 지낸 이력의 소유자였다.

육군-공군-육군-해군 장성 출신이 떠난 이후에는 컨셉이 바뀌었다. 2010년 8월 5대 청장으로 장수만 당시 국방부 차관이 발탁된 것. 박영준 전 차관, 신재민 전 차관과 함께 ‘실세 3인방 차관’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일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장 청장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과 조달청장을 거친 정통 경제관료였다.

이런 장 청장도 ‘함바 비리’ ‘해군기지 입찰 건설사 사장으로부터 금품 수수’ 사건이 불거져 6개월 여 만에 어이없이 낙마했다. 장 청장 이후에도 경제관료가 방사청을 맡았다. 노대래 당시 조달청장이 6대 청장을 지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재부2차관 출신 이용걸 당시 국방차관에게 방사청을 맡겼다.

장수만 전 청장을 제외하곤 경제관료 출신 청장들의 개인적 흠결이 딱히 드러난 것은 없다. 하지만  차관급 청장 하나를 내려보내 군, 방사청, 국내 방산업체, 외국 방산업체 브로커에 포진한 군(軍)피아들을 상대하란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국회 국방위 소속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방사청 위임전결 규정을 분석을 보면  방사청 고위직들의 몸사리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방사청의 핵심 업무인 무기 구매 주요 업무는 과장 전결 사항이다. 핵심 기술의 소요 검토, 예산 편성안 검토 역시 마찬가지다. 대신 청장이나 차장의 전결 사항은 해외출장, 홍보, 에너지 절약계획 수립 등이다. 연이은 방산비리에도 불구하고 방사청 업무 자체로 크게 다친 청장 차장들이 거의 없는 비결이다.

 

▲ 방위사업청 소개 자료(홈페이지 캡쳐)



◇ 대통령 동기동창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런 까닭에 박 대통령은 연구실에서 36년 간 미사일만 들여다 본 대학 동창을 방사청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을 스스로 짊어진 셈이다. 군이나 고시 출신 인사가 흠결을 노출할 경우 책임은 본인과 친정에게 상당히 돌아간다. 반면 장 청장의 경우엔 성공의 환호도 실패의 비난도 오롯이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수첩에서 발탁된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이 그랬다.

아직까지 전문가들은 장 청장에게 물음표를 붙여놓고 있다. 국방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인 민관합동 회의체에 몸을 담고 있는 예비역 장성은 장 청장에 대해 “커리어가 너무 좁다. 거대 조직을 통제할 샤프함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라고 평했다.

그는 "대통령 줄이 제일 굵은 줄이긴 하지만 지금 방위사업청 자체가 개인 한 사람의 역량과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면서 "과거 청장 중에도 상당수는 대통령이 직접 특정한 미션과 신임을 줘서 보낸 사람이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조직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대수술 외엔 답이 없다는 이야기다.

 

[에피소드] 실세의 좌절

방위사업청에는 ‘실세’가 좌절한 역사가 있다. 초대 방사청 차장인 이용철 변호사 이야기다. 노무현을지지하는변호사모임 총무, 노무현 대통령후보 특보를 지낸 이 변호사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 민정2비서관 등의 요직을 맡았다. 이런 이 변호사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특명을 내린다.

이 변호사를 국무총리실 국방획득제도개선단 단장으로 보낸 것. 이후 이 변호사는 방위사업청 개청 준비단 부단장에 이어 초대 방위사업청 차장에 임명된다. 당시 청와대와 군 안팎에선 “대통령이 이 변호사를 청장에 앉히려 했는데 군의 반발이 워낙 심해서 차장으로 보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김정일 초대 청장이 물러나면 이용철 차장이 그 자리를 채울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취임 10개월 여 만에 돌연 사퇴한다. 그는 "제도개혁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는 상황에 대해선 직을 걸고 막아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이유야 어떠하든지 각군과 마찰을 겪은 데 대해 제 스스로 다짐한 대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고 판단했다"는 변을 남겨 물러나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당시 이 변호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A4용지 8장 분량의 ‘사직인사’에는 ▲각 군과 인사마찰에 대한 책임 ▲국방획득제도 개혁의 전반적인 토대 구축 ▲범정부적인 장기·전략적인 획득정책관리 희망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야인으로 돌아간 이 변호사는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07년 11월 다시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삼성법무실 소속 변호사로부터 책처럼 포장된 명절 선물을 받았는데 현찰 500만 원이 들어있어 돌려줬다는 것. 현찰 사진이 증거로 나온 이 폭로는 삼성특검 출범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쳤다.



** [무기와의 전쟁] 기획 시리즈중 ④편은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co-work)을 지향한다는 편집방향에 맞춰 외부 기고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윤태곤 필자(taegonyoun@gmail.com)가 취재 및 작성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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