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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밥벌이'에 무너진 회계사&신평사

  • 2016.06.20(월) 10:14

일감 주는 대기업에 종속
독립성 지켜줄 방안 찾아야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책임자들이 네탓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회계업계와 신용평가업계에도 불똥이 튀었습니다. 대우조선이 망가지는 동안 감사·평가를 해야 할 전문가들이 도대체 뭘 했느냐는 추궁입니다.
 
두 업계는 가슴만 쥐어뜯고 있습니다.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따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건데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쓴소리를 내기 어려운거죠.
 
감사를 해야 할 기업으로부터 감사 보수를 받는 회계사와 평가를 해야 할 기업으로부터 평가 수수료를 받는 신용평가사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기업을 대할 수 있을까요. 
 
▲ 그래픽: 김용민 기자 kym5380@

# 태생적인 '을'의 한계 
 
"그러면 그들은 그냥 무디스로 갈 거예요."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전말을 그린 영화 <빅 쇼트>에서 신용평가사 S&P의 직원 조지아 헤일(Georgia Hale, 극 중 이름)은 "왜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짧은 대사는 신용평가업계가 겪는 고충을 고스란히 말해줍니다. 여기에 신용평가사 대신 회계법인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소수 기업들이 경쟁하는 과점 시장이라는 점도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이 처한 공통된 현실입니다. 과점이면 경쟁을 덜 해도 되니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한 것 아닐까요.
 
이에 대해 빅4 회계법인 중 한 곳의 파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통신사들이 마케팅에 돈 많이 쓰죠. 그래봤자 경쟁사에게 빼앗긴 고객을 되찾아 오는 것 뿐인데요. 회계업계도 마찬가집니다. 죽어라 영업을 해도 '결국 체결 건수는 작년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되죠. 이통사들의 소모적 마케팅 경쟁을 회계업계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업계 또한 수를 늘려 경쟁을 촉진하는 것으로는 업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경제학자 보 베커(Bo Becker)와 토드 밀번(Todd Milbourn)이 2011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신용평가사 간 경쟁 심화는 오히려 신용등급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수보다도 품질을 통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언입니다.
 
또 다른 영화를 보죠. 2001년 말 분식회계 고백 이후 바닥을 친 미국 굴지의 에너지기업 엔론 사태를 고발한 <엔론: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에서 베서니 맥린의 대사입니다.
 
"너에게 개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넌 재무제표에서 오리를 보여줘야 해. 다행스럽게도 회계에는 이를 위한 룰이 있어. 일단 개의 발과 털을 노랗고 하얗게 칠해. 그 다음 플라스틱으로 만든 주황색 부리를 개의 코에 붙이고 나서 너가 고용한 회계사에게 물어봐. '이건 오리입니다, 맞죠?' 그러면 회계사는 이렇게 말할거야. '네, 룰에 따르면 오리가 맞군요.'"
 
이 대사에서 재무제표를 신용평가서로, 회계사를 신용평가사로 바꿔도 맥락은 같습니다. 앞선 영화 대사들은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신용평가사와 회계사들이 얼마나 기업들의 눈치를 보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데요.
 
권위 있는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을 둔 미국에서도 사정이 이러한데, 상대적으로 더 짧은 업력과 더 작은 시장을 갖고 있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겠죠.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두 영화만큼이나 국내 신용평가업계와 회계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대우조선은 '트리플 마이너스' 현금흐름 수치에도 5년 동안 최고 신용등급을 받았습니다. 매출액은 신임 사장의 "손실을 반영하라"는 말 한 마디에 1조원 넘게 곤두박질 합니다.
 
 
# 갑을관계 깰 제도 개선 서둘러야
 
이런 고질적 병폐를 잘라내려면 '먹고사니즘'에 무너지지 않도록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되찾아야 합니다. 당장은 거래가 끊기는 등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업계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도 개선 노력도 뒤따라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계약체결 구조 개선입니다. 이총희 청년회계사회 회장은 감사계약 방식을 자유수임제에서 지정감사 위주로 바꾸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사인이 저가 수수료로 경쟁하지 않도록 하려면 지정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아무리 좋은 필터라도 폐수를 식수로 바꿔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감사인에 앞서 (재무제표를 직접 작성하는) 기업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묻는 것이 선행조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용평가업계와 관련해서는 EU 방안이 주목할 만합니다. EU는 금융위기 이후 기업과 신용평가사 간 관계가 등급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EU는 신평사가 특정 기업으로부터 연 수익의 5% 이상을 낼 경우 그 기관을 공개하는 한편 신용등급을 평가한 방법론과 모델도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들을 마련했습니다.
 
회계업계와 신용평가업계의 자정 노력과 더불어 한국거래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울 소재 한 회계학과 교수는 국내 자본상품 거래 구조상 한국거래소가 정보비대칭 등 관련 문제 해소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거래소가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됐지만 여전히 공공성이 높게 요구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거래소에 대한 평가 잣대는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내는지가 아니라 정보투명성에 대한 기여 등 공공성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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