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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금감원 회계사의 말 못할 고민

  • 2016.10.21(금) 13:44

혼날 땐 공무원, 일할 땐 민간인

회계법인의 '상후하박'식 근로환경에 불만을 품고 금융권 공공기관으로 눈을 돌리는 공인회계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많은 회계사들이 1지망으로 꼽는 '꿈의 직장' 중 하나인데요.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을 관리·감독하는 곳이다보니 영향력도 막강합니다.
 
그런데 금감원에서 근무하는 회계사들은 "금감원이 밖에서 보는 것만큼 감리 권한이 큰 조직이 아니다"며 녹록찮은 업무 현실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회계법인에서 금감원 이직을 염두에 둔 회계사라면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말인데요.
 
금감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에 갓 입사한 회계사 한 명이 사표를 냈다"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힘 있는 조직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바로 마음을 접은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조직 내 금감원의 위치와 금감원이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업계 감리 권한 등을 토대로 그 속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 기재부·금융위·감사원 '눈칫밥'
 
우선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금감원은 2009년 이전까지 정부 지정 기타 공공기관 중 하나였는데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업무에 대한 독립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2009년부터 공공기관 지위에서 해제됐습니다.
 
그럼에도 금감원 직원은 현행법상 '공무원 의제' 적용을 받아 법을 어겼을 때 공무원에 준하는 처벌을 받습니다. 공적 기능이 강한 업무의 특성상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감사원 등 여러 정부기관으로부터 감독을 받고,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 대상기관이기도 합니다. 힘센 부처들의 감독을 받느라 당초 의도만큼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진웅섭 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역대 금감원장 모두가 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습니다. 통상 내부자 출신이 수장에 오르는 경우가 많을수록 조직 구성원들의 사기가 높은 편인데, 금감원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 '수년째 감리'의 속사정
 
금감원 내에서 회계 관련 직접적인 업무를 하는 곳은 회계심사국과 회계제도실, 회계조사국 등 3곳입니다. 이번에 사표를 낸 신입사원도 이 중 한 곳으로 배치될 예정이었는데요. 특히 회계심사국은 감사인(회계법인)의 감사 품질 등을 관리·감독하는 총괄부서지만, 흔히 밖에서 생각하는 수준 만큼의 엄격한 감리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게 담당자들의 고충입니다.
 
금감원은 앞서 설명한대로 '반관반민' 조직이기 때문에 감독 업무에 제한이 많습니다. 검찰처럼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직권조사 등 조사 과정에서 쓸 수 있는 집행 권한도 적다고 합니다. 금감원은 객관적인 증거 등을 수반한 제보가 들어와야 비로소 문제가 된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 금감원 직원이 부실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회계법인 관계자에 "22일 조사받으러 오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해당 관계자가 "그날 일이 있어 못 갑니다"라고 하면 그날 조사는 허탕을 치게 되는 겁니다. 강제력을 동원할 수 없어 조사대상자가 협조를 안 하면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이죠. 가끔씩 금감원이 감리를 하는 데 수년씩 걸리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 "그래도 없어서 못 가죠"
 
나름의 고충은 있지만 여전히 금감원을 비롯한 금융권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에 가고 싶은 회계사들이 더 많습니다. 회계법인 등 민간에 견줘 육아휴직 등 근로자로서 법적 권리를 보장받기가 용이하다는 점이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여성 회계사들의 이직 수요가 특히 높은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죠.
 
더욱이 최근에는 법인을 거치지 않고 아예 공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자 하는 회계사 자격 소지자가 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기근속 등에 따른 처우 격차가 큰 몫을 차지하는데요.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예산 기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 산하 11개 공공기관 중 직원 1인당 평균급여가 1억원을 넘는 곳이 예탁결제원(1억490만6000원)과 한국투자공사(1억468만9000원) 등 2곳이나 됩니다.
 
이밖에 산업은행(9435만원)과 수출입은행(9241만8000원), 중소기업은행(9129만원) 등이 9000만원을 웃돌았고요. '톱10'에 오른 나머지 5개 기관도 7800만~8500만원대로 집계됐습니다. 공공기관이 아닌 금감원의 경우 지난해 별도로 집계·공개한 직원 평균보수가 9573만6000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입사원 초봉은 4171만원이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빅4 회계법인 중 1인당 평균급여가 1억원을 넘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도 지난해 평균연봉이 9997만원으로 나타나 1억원에 못 미쳤습니다. 나머지 빅3는 안진(7446만원), 삼정(6837만원), 한영(6606만원) 등의 순입니다. 비슷한 초봉으로 시작하더라도 연차가 쌓일수록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겁니다. 금감원은 "권한이 없다"며 울상이지만 신입 회계사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를 원하는 회계사들은 여전히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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