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의 부가가치세 대리징수제도가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조세제도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카드사 대리징수는 신용카드사가 거래단계에서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사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착안해 사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할 때 부가가치세 상당액을 미리 떼어 정부에 납부하도록 함으로써 사업자가 부가세를 탈루하는 것을 방지하게 하는 제도다.
현재는 신용카드사는 거래대금을 일단 사업자에게 모두 지급하고 사업자가 그 중 포함된 부가가치세 매출세액을 기간말 부가가치세 신고시에 과세관청에 납부하는 체제인데, 신용카드사가 세금을 미리 떼어 납부하는 제도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그동안 부가가치세의 전통적인 납부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전통적인 납부방식에서는 사업자가 대금을 지급받을 때 소비자로부터 미리 부가가치세 상당액을 함께 지급받아 기말에 과세관청에 납부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탈루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철(鐵)이나 동(銅)스크랩 등의 거래에서 중간단계의 유령사업자가 거래를 중개하면서 부가가치세를 거래징수한 후 폐업하고 자취를 감추어 버림으로써 과세관청이 부가가치세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소위 폭탄업체 문제가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폭탄업체와 거래한 사업자는 본인의 부가가치세 신고시 폭탄업체와 거래에서 납부한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을 인정받지 못하여 곤욕을 치루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카드사의 대리징수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 제도가 사업자의 거래시점과 부가가치세의 납부시점 차이에서 오는 탈루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부가가치세 제도를 투명화시키고, 국세행정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 삽화/변혜준 기자 jjun009@ |
반면 카드사 대리징수제도는 세법개정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2~3년 동안 도입을 고민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몇 가지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먼저 중소사업자는 자금부족 현상을 겪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부가가치세를 거래징수한 업자가 이를 그대로 본인의 자금으로 사용하다가 신고 전에 다른 거래에서 발생한 세액을 가감해 본인이 납부할 세액만 납부하면 됐다.
카드사의 대리징수가 본격화되면 사업자는 이제 본인이 원재료 등을 구입하면서 납부하는 부가가치세는 그대로 부담하면서 거래징수하여 납부받아 단기간이나마 운용자금으로 이용해야 할 부가가치세 매출세액은 과세관청에 카드사를 통하여 빼앗겨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만큼 운용자금의 부족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도 자금부족을 겪는 중소사업자들의 경우에는 그 부족현상이 매출액의 10%(부가가치세율)만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카드사의 문제도 적지 않다. 이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각 거래 중 부가가치세 거래와 면세거래를 신용카드사가 구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과자는 부가가치세 과세인 반면, 쌀은 부가가치세 면세이다. 카드사는 이들 거래를 부가가치세 과세와 면세로 모두 구분해 대리징수금액을 계산하고 과세관청과 사업자에게 정확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정확한 금액을 지급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도 큰 문제지만, 경우에 따라 과세와 면세의 구분이 잘못돼 부정확한 금액을 과세관청에 대리징수해 납부한 경우 이를 정산하는 것도 큰 문제다. 예를 들어 두부를 면세인 것으로 처리하였는데, 2~3년 후 세무조사 과정에서 과세물건으로 판명된 경우 부정확한 금액을 대리징수한 데 따른 책임은 카드사가 부담하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슈퍼마켓이 부담하여야 하는 것인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가가치세는 가산세도 다른 세목에 비해 높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지 카드사 대리징수제도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도 일부 업종에 국한하여 시범적인 사업을 거친 후 확대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소리도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세당국은 신용카드 세액공제, 현금영수증제도 등 과세양성화를 위한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지혜가 카드사 대리징수제도 도입에서도 발휘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통해 중소사업자, 신용카드사 등 이해관계자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폭탄업체 등 부가가치세 탈루문제가 해결되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