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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명의신탁도 사기 행위일까

  • 2018.05.04(금) 08:00

[Tax&]이동건 삼일회계법인 공인회계사

'국세부과제척기간'은 국가가 조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다. 즉, 국가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국세를 부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국가와 납세자 간의 조세법률관계를 신속히 확정하기 위함이다. 

법인세나 소득세는 보통 5년, 상속세나 증여세는 10년이 부과제척기간이다. 단, 납세자가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국세를 포탈한 경우에는 그 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날부터 10년(상속세나 증여세는 15년)까지 그 기간이 늘어난다. 

납세자가 허위의 사실을 만들어 내는 등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 과세관청이 그 탈루사실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세 가능기간을 늘려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면 국세부과제척기간이 연장되는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는 어떠한 행위를 뜻할까. 조세범처벌법에 따르면 아래 7가지에 해당한다. 

①이중장부의 작성 등 장부의 거짓 기장 
②거짓 증빙 또는 거짓 문서의 작성 및 수취 
③장부와 기록의 파기 
④재산의 은닉, 소득·수익·행위·거래의 조작 또는 은폐 
⑤고의적으로 장부를 작성하지 아니하거나 비치하지 아니하는 행위 또는 세금계산서 등의 조작 
⑥전사적 기업자원 관리설비의 조작 또는 전자세금계산서의 조작 
⑦그 밖에 위계에 의한 행위 또는 부정한 행위

즉, 허위의 조작, 은폐, 위계 등 적극적인 부정행위를 한 경우에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보는 것이다.
 
자신의 주식 중 일부를 타인의 이름으로 명의신탁한 후 모든 주식을 양도하고 각 명의자의 이름으로 양도소득세를 신고한 경우에도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원고는 1994년 이전까지 본인의 주식 중 일부를 아들 및 처제의 이름을 빌려 명의신탁했다. 2008년에 본인의 주식 및 명의신탁된 주식을 형에게 양도하고 각 명의자의 이름으로 양도세를 신고·납부했다. 

과세관청은 주식양도일로부터 이미 5년이 경과한 2015년에 주식의 명의신탁을 종합소득세 누진 고율 과세를 피하기 위한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보고 2004년 및 2005년에 받은 배당금에 대해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된다며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 

또한 2008년에 양도된 주식에 대해 각 명의자의 이름으로 신고 납부한 양도세를 실소유자인 원고가 과소신고했다고 봐 추가로 양도세를 부과했다. 납세자가 부정행위를 했으므로 국세의 부과제척기간을 5년이 아닌 10년으로 보고 세금을 추징한 것이다.
  
반면 납세자는 5년의 부과제척기간이 경과한 것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근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두69991 판결)에서는 원심과 다르게 이러한 명의신탁 행위를 조세포탈의 목적에서 비롯된 부정한 적극적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납세자의 손을 들어줬다. 

첫 번째 이유로 납세자가 조세포탈의 의도를 일관되게 가지고 명의신탁했다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를 과세관청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과세관청이 당해 회사의 재무상태와 실제 배당 내역, 명의자들의 구체적 소득 규모에 따른 종합소득세 세율 적용의 차이, 비상장주식 양도소득에 대한 누진세율 적용 여부 등을 보아 납세자가 적극적인 조세포탈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둘째, 배당금에 대한 소득세는 당해 회사가 명의신탁 당사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원천징수·납부한 것으로 여기에 명의신탁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 양도세를 명의자별로 신고함으로써 양도소득 기본공제를 많이 받은 것은 맞지만 명의신탁으로 양도세 세율이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사소한 세액의 차이만을 내세워 조세포탈의 목적에 따른 적극적인 부정행위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사건에 대해 국세부과제척기간을 5년이 아닌 10년으로 보아 과세한 것은 잘못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1996년 이전에는 주식회사 설립 시 발기인이 7인 이상이 돼야 하는 주주 수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족들 명의로 분산해 놓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주식회사의 1인 설립이 가능하므로 더 이상 주식을 명의신탁할 필요가 없으나 가끔 과점주주에 대한 간주취득세나 2차 납세의무, 금융소득 종합소득세 누진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차명주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납세자가 명의를 위장해 소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명의위장이 조세 포탈의 목적에서 비롯되고 허위 계약서 작성, 대금의 허위 지급, 허위의 조세 신고, 허위의 장부작성 등과 같은 적극적인 부정행위가 없다면 명의위장의 사실만으로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같은 취지: 대법원 2017. 4. 13. 선고, 2013두7667 판결).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과연 적극적 부정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는 아직 불명확하고 탈세 의도가 있었는지의 여부도 본인만이 알 것이다. 주식을 명의신탁하면 증여로 보아 과세하는 현재의 규정은 실질과세원칙의 위반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 

부동산실명제법과 같이 차명주식에 대해서도 명의신탁 자체를 무효로 하고 명의를 신탁한 자에게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형벌을 가하는 방법이 조세로 규제하는 것보다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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