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장 면세점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공익을 내세운다.
찬성 쪽은 여행객 편의 증진과 외화낭비 감소를, 반대 쪽은 조세형평과 공항질서유지를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다. 실제 입국장 면세점을 둘러싼 찬반 주장 뒤에는 각각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
# 매출 줄어드는 항공사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가장 반대하는 쪽은 항공사다. 항공사들은 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수하물 회수가 지연되고, 세관 검사가 길어져 여행객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 항공사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매출 감소다. 기내면세점은 해외여행 후 입국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면세쇼핑 창구인데, 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사람들은 굳이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불편하게 면세쇼핑을 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항공사들의 기내면세점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 입국장 면세점 설치가 번번이 무산된 배경에는 항공사들의 정치권 로비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저비용 항공이 늘어나는 등 항공사간 경쟁이 치열해진 점도 입국장 면세점 문제에서 항공사들을 민감하게 만들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기내면세점에서 2014년 2074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기내면세점 매출이 1699억원으로 감소했고, 아시아나항공도 기내면세점 매출이 2014년 1225억원에서 지난해 961억원까지 줄었다.
반면 2014년 76억원이던 제주항공의 기내면세점 매출은 2017년 127억원으로, 2014년 61억원이던 진에어의 기내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135억원으로 불었다. 2017년부터 기내면세점 영업을 시작한 에어부산도 10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 대한항공 기내면세점 매출
2014년 2074억원
2015년 1952억원
2016년 1891억원
2017년 1699억원
■ 아시아나항공 기내면세점 매출
2014년 1225억원
2015년 1161억원
2016년 1108억원
2017년 961억원
심지어 입국장 면세점 취급 물품과 기내면세점 주력 판매물품이 겹친다. 인천공항공사는 최근 입국장 면세점 운영계획을 밝히면서 판매 물품을 주류와 담배, 화장품 등으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진에어와 에어부산 등의 기내면세점 판매 1~3위가 모두 주류(위스키)이고, 제주항공은 매출 1위가 담배다.
# 매출 기대하는 인천공항공사
항공사들의 반대편에서 입국장 면세점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쪽은 인천공항공사다. 인천공항공사는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장 당시부터 1층 여객터미널에 입국장 면세점 자리를 만들어 비워두고 있으며, 지난해 새로 증설한 제2여객터미널에도 입국장 면세점 자리를 이미 마련해 둔 상태다.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이 숨어 있다.
정부가 100% 출자한 인천공항공사도 수익을 좇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인천공항공사는 입국장 면세점 유치로 연간 300억원의 임대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최근 임대료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입국장 면세점 유치로 임대료 수익을 올리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밝혔으나 결국 목표는 이익이다. 임대료 수익이 아니더라도 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여행객들이 공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자연히 부대시설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인천공항공사의 매출은 항공부문(항공, 여객)과 비항공부문(상업, 임대, 유틸리티, 해외사업, 기타)으로 구분되는데 2016년 기준 비항공부문 매출(1조4175억원)이 전체 매출(2조1860억원)의 65%를 차지한다.
특히 면세점과 식당 등 상업시설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1조2177억원으로 비항공부문에서도 86%로 압도적인 비중인데, 인천공항공사는 최근 비항공부문에서 상업매출의 비중을 크게 끌어 올리고 있다.
■ 인천공항공사 2016년 부문별 매출(합계 2조1860억원)
항공(항공) 3552억원
항공(여객) 4133억원
비항공(상업) 1조2177억원(전체의 56%, 비항공의 86%)
비항공(다목적) 1917억원
비항공(해외) 30억원
비항공(기타) 51억원
■ 인천공항공사 연도별 상업매출
2013년 8220억원
2014년 8518억원
2015년 1조40억원
2016년 1조2177억원
# 시큰둥한 면세점 업계
입국장 면세점 설치논쟁에서 애매해진 쪽이 있다. 기존 면세점 업계다. 사실 면세점 업계는 과거에는 입국장 면세점에 대해 찬성했다. 입국장 면세점도 새로 진입할 수 있는 시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입국장 면세점이 추진된다면 입찰에 참여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2016년에만 서울 4곳 등 신규 시내면세점 6곳이 쏟아졌고, 사드배치 논란으로 중국특수도 보장받기 어려워지면서 업계는 관광수요 대비 면세점이 포화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전국 공항의 출국장 면세점 25곳, 시내면세점 25곳, 지정면세점(내국인전용) 4곳 등 면세점 사업장만 54개에 이른다. 이제 면세점 업계에서 입국장 면세점은 새로운 시장이 아닌 기존 시장을 갉아먹을 수 있는 불안요소다.
이에 따라 면세점 업계는 입국장 면세점 설치가 추진되자마자 반대입장을 내놓으면서 여행객 편의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면세품 인도장을 추가하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 내국인이 시내면세점에서 구매한 면세품은 출국할 때 인도장에서 찾아서 출국하도록 하고 있는데 입국할 때 찾도록 하면 여행객들이 물건을 들고다니는 불편은 자연스레 해소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역시나 여행객 편의를 내세웠지만 기존 자신들의 면세점만 계속 이용하게 해달라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또 입국장 면세점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입점할 사업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은 공항공사에 적지 않은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 현재도 출국장 면세점들은 비싼 임대료 탓에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구조다. 롯데나 신라조차 출국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데 급급한 수준이며, 롯데면세점의 경우 올 초 임대료 부담 때문에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하기까지 했다.
특히 청와대가 중소·중견기업에 기회를 줘야 한다고 언급한 상황이어서 입국장 면세점의 경우 중소·중견기업 몫으로 할당될 가능성이 높은데, 높은 임대료를 내고 도전할 곳을 찾기는 더 어려울 수 있다.
지난해 중소 면세점의 영업이익은 대부분 마이너스였다. SM면세점이 -276억원을 기록했고 삼익면세점도 161억원의 손실을 보고 인천공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시티플러스는 106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45억원이었다. 엔타스듀티프리(영업이익 12억원) 정도만 이익이 났다. 다만 입국장 면세점의 경우 제한된 공간에서 다른 대기업 경쟁자 없이 사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될 수 있다.
■ 중소면세점 2017년 영업이익
SM면세점 -276억원
삼익면세점 -161억원
시티플러스 -45억원
엔타스듀티프리 12억원
복잡한 이해관계 탓에 현실화되지 못했던 입국장 면세점이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다. 처음으로 대통령이 직접 설치검토를 지시했고, 그 배경에 최우선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