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국내 밀키트(Meal Kit) 시장이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CJ제일제당이 밀키트 시장 진출을 선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이마트도 나섰다. 가정간편식(HMR)이 대세인 국내 식품업계에 밀키트가 새로운 시장을 열 핫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 스웨덴서 시작…미국·일본 등으로 확산
밀키트는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식재료와 딱 맞는 양의 양념,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해 제공하는 제품을 말한다. 온라인 마트와 배달음식의 중간 형태다. 지난 2008년 스웨덴의 스타트업 '리나스 맛카세(Linas Matkasse)'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정기 배송을 신청하면 박스 안에 각 조리 단계별 사진과 조리법은 물론 해당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들을 손질해 보내준다.
밀키트는 가정에서 간편하게 원하는 요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으면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미국의 '블루에이프런(Blue Apron)'이 밀키트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후 아마존 등 글로벌 업체들도 이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오이식스(Oisix)'를 필두로 안전한 식재료와 영양의 균형 등을 앞세워 시장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의 밀키트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밀키트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21.6% 증가한 3조5340억원에 달했다. 일본은 10.5% 증가한 8859억원이었다. 그만큼 밀키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국내 식품업체들이 국내 밀키트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미 밀키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미국 등에서는 최근 업체간 경쟁 심화로 부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밀키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블루에이프런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40.3%로 전년대비 약 17%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최근 2년간 주가도 급락했다. 가공식품 대비 높은 단가와 경쟁 심화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업체들도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 아직 미미한 시장…잠재력은 충분
그럼에도 업계에선 국내 밀키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등과 비교해 아직 밀키트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약 20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의 2배인 400억원 규모로, 향후 5년 뒤에는 7000억원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1, 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간편한 한 끼를 원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아울러 외식보다는 집밥으로, 또 집에서도 외식하듯 근사한 한 끼를 먹고자 하는 소비자도 많아지고 있다. 이것이 이제 국내 식품업계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HMR이 성장한 배경이다. 따라서 HMR의 한 종류인 밀키트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사실 국내 시장에서도 밀키트가 이미 선을 보였다. 2016년 스타트업 닥터키친이 밀키트를 출시한 이후 한국야쿠르트, 동원홈푸드 등은 물론 GS리테일, 현대백화점, 롯데마트, 갤러리아 등과 같은 유통업체들도 밀키트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하지만 HMR의 열풍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밀키트만의 장점을 차별화하지 못한 탓에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업체가 밀키트를 출시하고도 정작 대량 생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 쉽게 투자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밀키트를 주력으로 내세우기에도 부담이 컸다. 업체들이 밀키트를 서브 아이템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이다 보니 섣불리 치고 나가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면서 "시장 형성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CJ제일제당·이마트 진출로 새 국면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국내 HMR 1위인 CJ제일제당이 밀키트 시장 진출을 선언한 데 이어, 국내 1위 대형마트 업체인 이마트도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나섰다. 대형 업체들이 잇따라 밀키트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은 그만큼 이 시장이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형 업체들의 진출로 국내 밀키트 시장의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지난 4월 그동안 축적한 HMR 기술과 CJ대한통운의 배송 시스템 등을 접목한 '쿡킷'이라는 브랜드의 밀키트를 출시했다. CJ제일제당은 밀키트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올해 매출 100억 원을 달성은 물론 향후 3년 내 1000억 원 규모로 매출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 11월까지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밀키트 센터를 건설,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마트는 '식도락에 관심이 높은 30~40대 맞벌이 부부'를 타깃으로 한 '피코크 밀키트'를 론칭하면서 본격적인 시장 공략을 알렸다. 이마트는 '쓱배송'을 통한 당일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앞으로 1인용 밀키트는 물론, 오가닉 밀키트 등으로 제품 라인업을 확대해 올해 매출 100억원, 2024년 연 매출 5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업계에서도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 밀키트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이런 대형 업체들의 진출이 필수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대형 업체들의 경우 좀 더 쉽게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저변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형 업체들의 진출은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분명 긍정적"이라면서 "다만 시장이 커질 경우 일부 대형 업체로의 쏠림이나 업체 간 경쟁 심화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