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도 콘셉트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무척 공을 들입니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게 '컬러 마케팅'입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컬러를 하나 정하고 주야장천 그 색깔을 사용하며 소비자들을 세뇌하는 겁니다.
특정 색깔을 칠해 놓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업들이 있죠. 제 기준으로 한 번 떠올려 보자면, 빨간색은 코카콜라, 노란색은 이마트가 단번에 떠오릅니다. 블랙&화이트를 떠올리면 아디다스의 삼선이 생각나네요. 녹색? 열 명 중 아홉 명은 "스타벅스"를 외칠 겁니다.
하지만 컬러 마케팅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 색깔이나 되는 건 아니구요. 브랜드 이미지와 착 붙는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기업들이 선점하지 않은 색을 고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미지가 겹칠 수도 있고, 선점 효과가 있어서 나중에 "이건 우리 컬러"라고 해도 인식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2000년대 아이돌 팬클럽들의 '풍선 경쟁'과도 비슷하죠.
최근 유통업계에서 '컬러 콘셉트'를 확실하게 잡고 있는 기업이 하나 있습니다. 보라색 하면 어떤 기업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열이면 열 모두 '컬리'를 떠올릴 겁니다. 창립 때부터 이른바 '컬리 퍼플'을 꾸준히 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라색=프리미엄
컬리는 왜 보라색을 '키 컬러'로 정했을까요. 그저 예뻐서는 아닙니다. 컬리에 따르면 다양한 식재료의 색감이 가장 돋보이는 배경색이 보라색이라고 합니다. 보라색을 배경으로 각양각색의 신선한 식재료를 얹으면 식재료들이 더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 보라색은 옛날부터 '황제의 색'으로 인식됐습니다. 보라색을 낼 수 있는 염료를 만드는 게 무척 어려웠기 때문인데요. 바다고둥 1만 마리 이상을 잡아야 손수건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니 아무나 입을 수는 없었겠죠.
특히 고대 로마에서는 황제만이 보라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정한 적도 있습니다.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 누군가 보라색 망토를 걸쳤다면 '아 저 사람이 황제구나'하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프리미엄 식품을 취급하는 컬리가 보라색을 고른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보라색이나 다 '컬리 퍼플'이 되는 건 아닙니다. '팬톤 컬러 268C', '헥스 색상 코드 #672091'을 '컬리 퍼플'이라고 부릅니다. 팬톤 268C는 인쇄물용, 헥스 #672091은 모니터용 컬러인데요. 모니터와 인쇄물 간 차이에 맞춰 모니터용 컬러를 조금 더 밝게 설정했다고 합니다. 대충 보라색으로 '퉁' 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컬리 퍼플은 변화합니다. 색상 코드도 미묘하게 조정을 가하고 있습니다. 가장 '힙'한 보라색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컬리 퍼플이 달라 보이신다면, 색 감각이 남다르신 겁니다.
보랏빛 기업
최근 들어 컬리는 다양한 기업들과 손잡고 보라색을 입힌 '컬리 온리'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한 리빙 브랜드인 리빙크리에이터, 실리콘 주방용품의 선두 주자인 실리만과 실리팟, 프리미엄 텀블러 브랜드 스탠리까지 다양한 브랜드들이 '퍼플 한정판'을 내놓고 있습니다. 컬리와 손잡고 보라색 제품을 내놓은 브랜드는 지금까지 12곳에 달합니다.
이들이 컬리와 손잡는 이유는 컬리가 그간 구축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업계에서 컬리의 입점 절차는 깐깐하기로 유명합니다. 컬리에 단독 제품을 판매한다는 건 어느정도 품질이 보장됐다는 의미로 인식됩니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이커머스 업계답지 않게 컬리의 소비자들은 충성도가 높습니다. 이것이 리빙 기업들이 컬리의 보라색을 내세워 단독 상품을 구성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스타벅스의 충성 고객들은 스타벅스 로고와 그린 컬러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죠. 컬리의 고객들 역시 '컬리 퍼플'을 보고 제품을 구매할 거란 기대입니다.
이는 마케팅의 효율성과도 연계됩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집중도 낮은 마케팅을 펼치는 대신 '보라색 단독 상품'으로 컬리의 충성 고객들에게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거죠. 컬리 입장에서야 당연히 단독 상품 구성을 통해 신규 고객 유입이 가능하고요. '큐레이션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런 모든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부터 꾸준히 자신들만의 콘셉트를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자주 바꾸고, 리뉴얼이라며 키 컬러를 바꿔대면 "이게 우리의 키 컬러"라고 주장해도 들어주는 이가 없을 겁니다. 컬리만 해도 10년 넘게 '컬리 퍼플'을 밀고나가 이제 그 결실을 보고 있죠. '컬리 퍼플'은 컬러 마케팅이 힘을 얻으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