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차별화된 기술력, 감각적인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 고유의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K뷰티 브랜드들이 있다. 이에 K뷰티 흥행 주역들을 직접 만나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비결을 생생히 들어본다. [편집자]
지독한 여드름 콤플렉스에 갇혀 늘 고개를 숙이고 살았던 한 여성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피부과 의사에게서 '피부 장벽'의 원리를 배운 뒤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 기적 같은 경험을 나누고 싶어 부렸던 '기분 좋은 오지랖'은 이제 수만 명의 피부를 구원하고 있다.
화장품을 팔기 전 습관부터 고치라는 '잔소리'로 팬덤을 구축한 최혜진 디마프(DEMARF) 대표의 이야기다. 국내를 넘어 뉴욕의 지성인들까지 매료시킨 교육자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고집스러운 '장벽 집착기'를 들어봤다.
오지랖이 만든 화장품
스킨케어 브랜드 '디마프'의 최혜진 대표는 스스로를 '오지랖 넓은 교육자'라고 정의한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아동학 석사까지 마친 그가 화장품 업계에 발을 들인 건 지독했던 '피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피부 문제로 스트레스 받던 그는 어느 날 은인 같은 피부과 원장님을 만났다. 당시 원장님은 "지금은 레이저도 못 할 정도로 장벽이 다 망가졌다"며 세안법 교정, 자외선 차단제 사용과 함께 단 세 단계의 기초 화장품만 바르라는 숙제를 내줬다. 한 달 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피부가 편안해짐을 느낀 그는 화장품보다 중요한 것이 '습관'과 '장벽'이라는 본질을 깨달았다.
최 대표는 "그때 처음 '피부 장벽'이라는 개념을 배웠다"며 "원장님 말씀대로 습관을 바꾸고 루틴을 단순화했더니 피부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경험이 너무 신기해 SNS에 노하우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 디마프의 출발점"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사범대 출신답게 어려운 피부 과학 원리를 대중의 언어로 쉽게 풀어 공유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를 따르는 팬덤이 생겨났고, 그가 추천한 제품은 공동구매 진행 시 매번 1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다 평소 믿고 쓰던 제품이 단종되자 "직접 만들어 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그렇게 2023년 11월, 팬들이 제안한 이름인 '디어 마이 프렌즈(Dear My Friends)'의 약자를 딴 '디마프'가 탄생했다.
대표 제품인 '히어로 마이 퍼스트 세럼(만능기초)'에는 최 대표의 고집이 그대로 녹아있다. 처음엔 흐르는 액체 타입이었으나 "사용이 불편하다"는 고객 피드백을 수용해 과감히 버블 제형으로 바꿨다. 4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버블 세럼은 이제 누적 120만병이 팔리는 '재재재구매템'으로 등극했다.
디마프의 제품력은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 해당 제품은 크라우드 펀딩에서 4억원 이상을 모집했다. 올리브영 입점 직후 온라인몰 스킨케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무신사 뷰티 페스타에서도 카테고리 1위에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다.
브랜드의 성장세 이면에는 가격과 품질에 대한 최 대표의 치열한 고집이 자리 잡고 있다. 디마프의 제품들은 일반적인 로드숍 브랜드에 비해 가격대가 다소 높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그는 "가격이 비싼 건 브랜드 값이 아니라 높은 원가율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최 대표는 "피부 장벽에 진심인 만큼 성분 함량과 원료 퀄리티에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며 "당장의 가격 저항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써보면 왜 이 가격일 수밖에 없는지 고객들이 먼저 알아봐 주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런 자신감의 원천은 최 대표가 직접 개발한 '독보적 레시피'에 있다. 업계에서는 디마프의 '만능기초'가 큰 성공을 거두자, 여러 제조사에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시중에 흔한 레시피를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그가 2년여간 논문을 뒤지며 직접 설계한 고유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조사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까다로운 테스트를 수없이 거쳤다"며 "나만의 철학이 담긴 레시피는 겉모양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 본질적인 효능까지 따라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잔소리가 만든 팬덤
디마프 성장의 중심에는 일반적인 화장품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교육 콘텐츠'가 있다. 최 대표는 창업 초기 2년간 매일 5시간씩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고객들과 1대 1로 마주했다. 제품을 홍보하는 시간보다 "제발 이렇게 세안하지 마세요", "물 많이 드셔야 해요"라며 잔소리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정도다.
이 집요한 소통을 체계화한 것이 바로 '피부 장벽학개론'이다. 이 콘텐츠의 목적은 판매가 아닌 '변화'에 있다. 피부 장벽의 원리와 세안 습관 등을 15개 강의로 구성하고, 미션을 수행하면 혜택을 주는 챌린지 형태로 운영한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고객의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구조다. 실제 참여자들 사이에서 "피부가 달라졌다"는 후기가 이어지며 자연스러운 입소문이 났고, 별도의 홍보 문구 없이도 구매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최 대표는 화장품을 옷에 비유한다. 그는 "사실 10단계 루틴은 마케팅적 상술에 가깝다"라면서 "화장품은 옷과 같다. 세럼은 속옷, 앰플은 셔츠, 크림은 아우터다.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3단계로도 충분하다. 속옷이 탄탄해야 겉옷 매무새가 살듯 속건조를 잡는 기초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화장품은 피부를 돕는 도구일 뿐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며 "우리는 그 한계를 솔직하게 말한다. '왜 이 제품을 써야 하는지' 원리를 이해한 고객들은 브랜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역발상'은 강력한 신뢰로 돌아왔다. 고객들은 스스로를 '자기님'이라 부르며 브랜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신제품 개발 시 샘플 5000개를 먼저 배포해 의견을 묻고, 수만 건의 후기를 AI로 분석해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함께 만드는 브랜드' 정체성은 디마프만의 독보적인 자산이다.
매출 500억원 목표
자사몰에 집중되어 있던 디마프의 팬덤은 무신사 뷰티 입점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3050 중심이었던 고객층이 피부 고민이 가장 치열한 1020 세대까지 넓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최 대표는 "무신사는 디마프를 세상 밖으로 처음 내보내 준 고마운 채널"이라며 "젊은 층의 니즈를 확인하고 제품 라인업을 정교화할 수 있었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고 회상했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최 대표는 데이터 분석에 더욱 집중했다. 특히 평점 4.9점이라는 높은 수치 뒤에 숨은 '부정 후기'에 주목했다. 지성 피부가 많은 젊은 층에게 기존 레시피가 다소 무겁다는 점을 발견하게 됐다. 그는 "데이터 분석 결과 1020세대는 4050세대보다 유분량이 많고 트러블 고민이 깊었다"며 "이를 반영해 속건조는 확실히 잡되 제형은 가벼운 '라이트' 버전을 즉시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민한 대응 덕에 무신사 내 거래액은 2024년 대비 300% 이상 급성장했다. 인지도가 쌓이자 올리브영과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졌다. 이제 디마프의 '장벽 케어'는 소수의 팬덤을 넘어 대중적인 스킨케어 루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디마프는 AI 에이전트를 통해 모든 플랫폼의 후기를 통합 수집·분석한다. 고객의 불편함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즉각 반영하기 위해서다. 최 대표는 "국내 매출의 80%가 여전히 자사몰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브랜드와 고객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단단하다는 증거"라며 "유통망이 넓어져도 고객과 1대1로 상담하던 초심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세계 무대로
디마프의 시선은 이제 세계 무대로 향한다. 작년 매출의 15%를 차지했던 해외 비중을 올해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디마프는 카카오벤처스, 대교인베스트먼트, 퓨처플레이로부터 총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글로벌 확장 기반도 마련했다.
최 대표의 글로벌 전략 또한 남다르다. 화려한 광고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는 아날로그 전략'이다. 최근 미국 방문 당시 최 대표는 현지 고객의 초대로 메디컬 스쿨과 포시즌스 호텔을 방문해 직장인 대상 스킨케어 클래스를 열었다.
그는 "K뷰티를 전혀 모르던 분들이 제 설명을 듣고 처음으로 스킨케어를 시작하는 걸 보며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다"면서 "인종은 달라도 건강한 피부를 갖고 싶은 마음은 똑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제품력에 반한 현지 고객이 직접 판매를 제안하며 시장이 열렸다. 미국 인스타그램에서는 조회수 300만회를 넘는 콘텐츠가 터져 나왔다. 창업 첫 해 30억원이었던 매출은 2024년 57억원, 2025년 134억원으로 매년 두 배 이상씩 뛰고 있다. 올해 목표는 매출 500억원 달성이다. 이미 1분기에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며 순항 중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지속 가능성'과 '가치'를 강조했다. 최 대표는 "왜 한국에는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더처럼 수십 년간 세대를 이어가며 가치를 증명하는 브랜드가 없을까 늘 고민해 왔다"며 "디마프가 그 갈증을 해소하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잘 팔리는 브랜드는 많지만 사랑받고 존경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존경은 결국 '가치'를 줄 때만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피부가 좋아질 수 없는 습관을 지닌 고객에게는 '제품을 사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 한다. 그것이 디마프가 정의하는 진심"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디마프를 사람들의 피부를 실제로 좋아지게 만드는 일에 집착하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