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졌을 당시 이커머스업계는 쿠팡에 실망해 이탈한 고객들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봤습니다. 이에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은 무료 멤버십을 강화하고 프로모션을 늘리는 등 '탈팡족' 잡기에 나섰죠. 업계에선 누가 탈팡족을 얼마나 흡수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바로 이번 올해 1분기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은 1분기에도 여전히 정체돼 있었습니다. 쿠팡의 1분기 매출은 줄었다는데 정작 매출 확대에 성공한 이커머스 기업은 없다시피 했는데요. 업계에서는 '탈팡족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히려 줄어든 매출
지난 1분기 신세계그룹 SSG닷컴의 매출액은 3226억원으로 전년 대비 9.6%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롯데온)의 매출액도 전년 보다 3.8% 감소한 272억원에 그쳤습니다. 11번가 역시 매출액이 931억원으로 전년 대비 18.2% 줄어들었죠. 모두 쿠팡에서 이탈한 고객을 잡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수치들입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쿠팡 사태가 터진 후부터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탈팡족 잡기에 나섰습니다. 11번가는 무료 멤버십 '11번가플러스' 혜택을 강화했고요. SSG닷컴은 올해 1월 새로운 유료 멤버십 '쓱7클럽'을 론칭했습니다. 롯데온 역시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여러 기획전을 진행했죠.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이들의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최근 지속해온 수익성 개선 기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11번가는 1분기 영업손실이 78억원으로 전년(97억원)보다 줄어들었습니다. 롯데온 역시 1분기 영업손실이 전년 (85억원)보다 감소한 58억원을 기록했죠. 새 유료 멤버십 론칭으로 마케팅 비용을 늘린 SSG닷컴만 영업손실이 전년보다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들이 오히려 사업을 줄였다는 점입니다. SSG닷컴은 저효율 위수탁 거래(3P) 비중을 전략적으로 축소하면서 매출액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롯데온도 '롯데마트 제타'와 중복되는 사업을 정리하면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죠. 11번가는 직매입 리테일 사업을 축소하는 한편 기프티콘 사업을 매각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탈팡족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만한 여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마케팅 비용을 늘리고 배송 인프라에 투자하기보다는 비용을 깎고 사업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탈팡족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이 받아낼 만한 그릇 자체가 부족했던 셈입니다.
수혜를 입긴 했는데
그렇다고 모든 이커머스 기업들이 탈팡족의 수혜를 입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커머스업계에서는 네이버(NAVER)가 그나마 '승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쇼핑과 멤버십, 플레이스가 포함된 네이버 서비스 매출액은 1분기 4349억원으로 전년 대비 35.6% 급증했습니다. 네이버는 네이버쇼핑 부문 매출을 따로 공개하고 있지는 않은데요. 네이버의 컨퍼런스콜에서 '커머스 생태계 호조'가 언급된 만큼 네이버쇼핑이 이 부문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네이버 외에도 네이버의 '아군'인 컬리 역시 1분기 높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컬리의 1분기 매출액은 7457억원으로 전년보다 28.4%나 성장했는데요. 신선식품 새벽배송이 주력인 만큼 쿠팡과 완전히 고객층이 겹치지는 않지만 일부 탈팡족을 흡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세계그룹의 또 다른 이커머스 G마켓도 공격적인 마케팅 투자로 탈팡족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지난 3월 G마켓의 GMV(거래액)와 평균 객단가는 각각 12%, 10% 증가했는데요.
지난해 12월 이마트 자회사에서 알리바바·신세계그룹 합작사인 에이지글로벌홀딩스(옛 그랜드오푸스홀딩)로 넘어간 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덕분입니다. 다만 거래액 증가가 당장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는데요. 아직 적자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상황입니다.
탈팡은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커머스업계에선 사실상 탈팡족이 없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물론 쿠팡의 실적을 살펴보면 이탈 고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쿠팡의 1분기 매출은 12조4597억원으로 전 분기(지난해 4분기)보다 2.7% 줄었습니다. 지난해 4분기 매출액 역시 전년 동기보다 약 5% 감소했던 만큼 2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한 겁니다. 쿠팡은 1분기 영업손실도 3545억원을 기록했는데요. 2021년 4분기(5592억원 적자) 이후 가장 큰 적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는데요. 적자의 경우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과로 뿌린 1조6850억원 규모 보상쿠폰이 반영돼 있습니다. 1분기 매출의 경우에도 전년과 비교하면 8% 증가한 수치입니다.
고객 이탈 지표를 보더라도 실제 탈팡족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쿠팡의 1분기 활성 고객(해당 기간 제품을 한 번이라도 산 고객) 수는 2390만명으로 지난해 4분기(2460만명) 대비 70만명 감소했는데요. 여전히 2400만명에 가까운 고객들이 쿠팡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역시 컨퍼런스콜에서 4월 말 기준 탈퇴 회원의 재가입과 신규 회원 가입 증가로 사고 이후 감소한 와우 회원 수의 약 80%를 회복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만큼 많은 소비자들이 쿠팡 생태계에 의존도가 높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쿠팡 로켓배송과 와우 멤버십을 대체할 만한 플랫폼이 네이버 외엔 마땅치 않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결국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 구도가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 체제라는 점을 명확히 한 계기였습니다. 네이버는 하반기 무제한 무료배송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요. 쿠팡 독주 체제에서 네이버가 나홀로 어떤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