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트랙 소주
최근 몇 년간 소주의 인기가 식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 하면 생각나는 술은 '소주'일 겁니다. 특히 해외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의외로 소주를 많이 찾는다고 하죠.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한국의 음식들과 잘 어울린다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소주를 마실 때 늘 헷갈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여러 소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른 주류, 예컨대 맥주나 청주 등도 한 회사에서 여러 제품이 나오지만 이 경우엔 명백히 맛이 달라 구별이 어렵지 않죠. 그런데 소주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우선 주류 제조사들이 각자 발효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닌, 주정 회사로부터 순수 알코올에 가까운 주정을 공급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원재료가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알코올 도수도 통일되는 추세입니다. 예전엔 0.5도 정도씩 차이를 두고 '순한 소주'와 '독한 소주'를 구분했지만 최근 트렌드는 '통일'이죠.
실제로 하이트진로의 대표 소주인 '참이슬 후레시'와 '진로'는 모두 15.7도로 알코올 도수가 동일합니다. 지난 2월 진로가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낮추며 '더 순한 소주'가 됐었지만 참이슬 후레쉬가 4개월 만인 6월 도수를 낮추면서 다시 같아졌죠.
롯데칠성의 '처음처럼'과 '새로'도 새로가 낮추면 처음처럼이 따라붙는 레이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처음처럼이 16도를 고수하면서 약간의 차이가 있죠.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주류회사 직원들도 맛만 보고는 소주를 구별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그럼에도 소주 회사들은 이 '투 트랙'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거기' 같은 소주를 다른 브랜드로, 다른 병에 담아 파는 이유는 왜일까요.
같지만 다르다
먼저 오로지 '맛'만 놓고 보면 소주 브랜드 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건 많은 주류업계 관계자들도 인정합니다. 사실상 99% 이상의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물(정제수)과 알코올(주정)이 동일하니 맛에서 큰 차별화를 이루긴 어렵습니다. 소주에 들어가는 감미료의 배합에 따라 단맛의 정도나 뒷맛의 깔끔함에 차이가 있는 정도죠.
하지만 이 약간의 차이에 브랜드의 방향성이나 디자인, 마케팅이 결합되면 조금 더 큰 차이가 됩니다. 우선 멀티 브랜드를 가져갈 경우 기존 브랜드를 선호하지 않던 소비자가 유입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소주의 모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소주를 마시던 소비자가 같은 회사의 B 소주를 구입할 수 있겠죠. 같은 회사의 소주라 해도 각자 모델을 다르게 가져가는 이유입니다.
멀티 브랜드를 가져가면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도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은 역사가 깊은 소주 브랜드입니다. 지금의 4050 중장년층이 20대일 때부터 마시던 소주죠. 그런 만큼 지금의 20대들에게는 '아빠가 마시던 술'로 이미지화돼 있습니다. 아무래도 선호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양 사는 진로와 새로라는 신규 브랜드를 내놓습니다. 당연히 20대를 타깃으로 한 '영'한 이미지를 내세웁니다. 진로는 당시 20대들의 화제였던 '레트로'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1960~70년대풍 투명병과 두꺼비를 강조한 브랜드였습니다. 새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제로 슈거' 트렌드를 적극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죠.
이를 기존 참이슬·처음처럼에 도입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이 가능했을까요? 가능성이 낮았을 뿐더러 성공했더라도 다른 후폭풍이 몰아쳤을 겁니다. 바로 기존 고객층인 4050의 이탈입니다. 평생 마시던 술이 갑자기 '트렌디'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소주의 한계
그렇다고 맥주처럼 브랜드를 무한정 늘려나가긴 어렵습니다. 이는 결국 맛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맥주의 경우 홉의 종류와 발효 방식 등에 따라 수천 가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수천 개의 브랜드가 있어도 맛이 다 다릅니다. 하지만 소주는 맛보다는 마케팅·디자인 등 외적인 요소가 더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두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정도라면 젊은 층과 중장년 정도로 타깃을 나눌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세분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예 도수를 대폭 낮추고 과일 맛을 낸 '과일소주' 카테고리도 있지만 시장이 크지 않아 단독 브랜드로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과일소주 브랜드가 대부분 기존 소주의 브랜드를 차용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소주의 차별화'는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주류회사 직원들도 맛만 보고는 소주를 구별할 수 없다'는 말과 달리, 주류회사 직원들은 자사 소주와 타사 소주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묘하게 감미료의 레시피가 다르기 때문에 맛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거죠. 모든 사람이 다 이를 구별할 수는 없겠지만, 주류회사 직원처럼 특정 브랜드 소주만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브랜드 소주'라는 것 정도는 구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같은 회사의 소주라 해도 들어가는 감미료가 다른데요. 처음처럼의 경우 단 맛을 스테비아로 내지만 새로의 경우 스테비아와 에리스리톨이 함께 들어갑니다. 하이트진로의 경우 참이슬은 원수를 대나무숯으로 다섯 번 걸러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해 진로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죠. 자, 오늘은 평소 드시던 소주와 다른 소주의 차이를 눈이 아닌 입으로도 즐겨 보시면 어떨까요. 의외로 다른 맛을 느끼는 내 미각에 놀라실 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