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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손보, '자체 리스크평가 미흡'…의미는?

  • 2019.07.08(월) 16:09

DB손보, ORSA 운영실태평가서 '미흡'…대형사 중 유일
금감원 "내부모형 정교화 떨어지고 자본관리계획 미비"
"현실에 안맞는 당국 기준 때문"…당국-보험사 온도차

금융감독원이 보험사 스스로 자체위험을 평가해 이를 경영정책에 반영하라고 도입한 '자체위험 및 지급여력 평가제도'에 대한 첫 운영실태 점검결과 대형 손해보험사 중에는 DB손보가 유일하게 '미흡'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보사 가운데서는 도입한 5개 회사 중 한화생명만 양호등급에서 한단계 낮은 '보통'을 받았다.

DB손보의 '미흡'과 한화생명의 '보통' 판정에 대해 금감원은 '이들 회사들이 자체건전성을 평가하는 내부모형이 정교하지 못하고 이에 따른 자본관리계획 수립이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8일 금감원에 따르면 2017년 '자체위험 및 지급여력 평가제도(Own Risk and Solvency Assessment, 이하 ORSA)'를 시행한 후 53개 보험사 중 이를 도입한 보험사는 총 15개사다.

이중 지난해말 기준 금감원의 운영실태점검 평가에서 10개사가 제도운영 수준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개사는 보통과 미흡등급을 받았는데, 대형사 중에는 DB손보와 한화생명이 포함됐다.

ORSA를 도입한 생보사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미래에셋생명, 하나생명 등 5곳이며 이중 한화생명을 제외한 4개사가 양호 등급을 받았다.

손보사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메리츠화재, 농협손보, 코리안리, 서울보증, KB손보, 흥국화재, 미쓰이스미토모해상(한국지점) 등 10곳이 도입했고 이중 삼성화재, KB손보, 농협손보, 현대해상, 서울보증, 코리안리가 양호 등급을 받았다.

ORSA는 보험사 리스크를 양적 평가하는 지급여력제도(RBC)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계량적 요소에 법률, 평판 등 회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계량적 요소까지 포함해 주요리스크를 선정하고 내부 자본적정성을 평가토록 했다.

자체위험평가인 만큼 당국에 보고하지는 않지만 대신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사회는 회사의 위험성장, 경영환경, 자체 지급여력 평가결과를 감안해 경영계획을 승인해야하며 리스크 중심 경영의 최종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보험사 경영진이 실질적인 리스크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국의 표준화된 계량적 지표(RBC)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리스크를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각사 특성에 맞게 관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보험사 자체 리스크평가 역량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RBC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내부관리인력·시스템 등 인프라가 많은 대형사들이 더 잘 운영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평가에서 손보 빅4 중 하나인 DB손보가 대형사중 유일하게 미흡등급을 받은 이유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 "자체 리스크평가 기능 미흡" vs "현실에 맞지 않는 당국기준 탓"

DB손보의 RBC비율은 지난 1분기말 229.42%를 기록했다. 전체 손보사 평균인 252.1%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국 권고치인 150%를 상회하는 만큼 양호한 수준이다. 더욱이 2017년말 201.62%였던 RBC비율은 2018년말 216.25% 올해 3월 229.41%로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당국이 정한 건전성 기준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ORSA평가가 낮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금감원은 ORSA 평가기준 중에서도 핵심 평가사항으로 ▲자체 리스크모형(내부모형) 활용도 ▲지배구조 측면 ▲중·장기계획 점검 등 이사회의 역할 수행 ▲내부요구자본 산출 통한 지급여력평가 여부 등을 꼽았다. 다양한 평가항목 중에서도 핵심평가사항에서 하나라도 '하'점을 맞을 경우 등급은 '미흡'으로 내려간다.

금감원 관계자는 "양호판정을 받지 못한 곳들은 대부분 내부모형을 제대로 썼는지 여부에 따라 갈렸다"며 "RBC 표준모형에 자사 경험요율, 통계 등을 써서 내부모형을 만들고 내부 자본적정성 등을 산출해야하는데, 내부모형이 정교하지 못하고 이에 따른 자본관리계획 수립이 미흡한 곳들이 양호 판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 기준인 표준모형은 최소기준으로, 더 정교하게 자사 통계를 기반한 내부자본적정성을 판단하라는 것"이라며 "보통이나 미흡 판정을 받은 경우는 자체 리스크관리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필요최소한의 가장 기본적인 위험관리만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일부 대형사들마저 자체적인 리스크관리 역량이 사실상 미흡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DB손보 관계자는 "자체(내부)모형을 사용해 내부 요구자본산출 지급여력평가를 시행해야 하는데, 당국이 준 내부모형 산출 가이드라인은 2009~2010년도에 나온 것으로 세부적인 지침도 부족했다"며 "당시 내부모형 산출기준으로 구축된 시스템에서 나온 값이 현재의 적정리스크를 뽑아내 경영활동에 반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업그레이드 하는데 엄청난 자원이 필요한데, 2022년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따른 신지급여력제도(K-ICS)의 구체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변화되는 상황을 반영해 이르면 올해까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자체지급여력 평가를 하겠다는 내용으로 이사회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즉 현재 경영현황에 사용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내부모형을 통한 값을 산출하지 않은 것이다.

양호를 받은 회사들의 경우에도 내부모형에 이같은 새로운 제도들이 반영되지 않은 만큼 실질적인 리스크를 평가해 경영활동에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K-ICS는 부채를 시가평가 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제도인 만큼 노후된 과거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ORSA 적용이 의미 없을 수도 있다"며 "내부모형 관련 세부기준도 은행권에 비해 미비한데다 유럽의 솔벤시Ⅱ나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의 ICS(보험권 국제자본기준)를 반영한다고 해도 향후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할 수 있어 K-ICS 기준이 나온 후에야 구체적인 전략을 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ORSA 도입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른 대형사 관계자는 "당국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하고 연습하라는 취지로 보이지만 당국과 보험사 간 제도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온도차가 있다"며 "K-ICS로 넘어가면 새롭게 내부모형을 바꿔야 하는데 제도가 바뀌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굳이 ORSA를 도입했어야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모형은 말 그대로 내부기준인데 이를 평가한다고 하니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될 수 밖에 없다"며 "내부기준이다 보니 제도도입 초기에 조금 느슨한 잣대로 시작한 곳들도 있을 텐데 이런 곳들이나 상대적으로 역량,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형사들의 경우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먼저 도입한 것이 안한것만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53개 보험사 가운데 지난해까지 ORSA를 도입한 곳은 15곳으로 전체의 28%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한 없이 이사회 결정에 따라 제도도입을 미룰 수 있는 만큼 평가를 한다고 했으면 애초에 도입자체를 미뤘을 것이란 얘기다.

◇ "자체 리스크관리 내재화 필요" 목소리도

반면 ORSA 도입이 오래전부터 얘기돼 왔던 만큼 자체리스크 관리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K-ICS 등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 만큼 ORSA에 집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업계 전체적으로 제도가 곧 바뀌니 굳이 개선하려는 생각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며 "내무보형을 만드는 것은 회사의 리스크관리 역량이 얼마나 축적돼 있느냐가 관건인데 평가를 낮게 받았다는 것은 내부 리스크관리 역량이 부족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형보험사 리스크관리 관계자는 "ORSA는 갑자기 생겨난 제도가 아니고 내부모형이 무엇이 되었든 회사가 최선의 자기모형을 만들어 다른 경영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활용하라는 제도"라며 "K-ICS를 감안한 리스크 모형을 의무화 한 것은 아니며 회사에 맞는 리스크모델을 찾는 것이고 당국 승인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새 제도를 대비해야 하는 만큼 회사의 리소스가 부족한 곳들은 쉽지 않겠지만 자체평가인 만큼 100점이 있을 수는 없는 제도"라며 "기존 내부모형 기준이 오래됐다고 해도 회사의 리스크를 빠짐없이 찾고자 하는 것이 ORSA 제도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모델을 계속해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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