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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보험이 다루는 위험의 본질

  • 2020.08.24(월) 09:30

모든 것이 급변하여 그 속도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며 모든 것이 조금만 지나도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된다. 처음 접하는 것에 익숙함을 느낄 때 쯤 거기에 안주하기 시작하면 '꼰대' 또는 '고인물'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세상은 휘황찬란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사는 개개인은 너무 빠른 변화에 혼란스럽다. 이에 대한 해결책 또는 조언으로 기본으로 돌아가거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을 강조하는 전문가가 많다. 결국 화려한 변화도 표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에 기본이나 핵심을 간파하고 기준으로 삼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보험 상품을 보면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유사하다. 뇌출혈에서 뇌졸중으로 그리고 뇌혈관질환 진단비로 몇 년 사이에 보장 범위가 확대된 신상품이 계속 등장한다. 공소제기 교통사고 시 약관 조건에 따라 형사합의금 일부를 보전하는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이 3000만원에서 5000만원을 넘어 7000만원으로 그리고 현재 1억원으로 변하는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보험 상품을 설계하여 제안하는 설계사 입장에서도 그리고 계약자나 피보험자도 이런 빠른 변화는 혼란스럽다. 분명 최고의 설계라 자부했고 제안했다. 소비자도 이를 믿고 가입을 했지만 짧은 시간이 지나니 더 좋은 것이 또 등장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양측 모두 난감해지는 것이 근래 보험 중개 시장의 현실이다.

따라서 보험에서도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손해보험이든 생명보험이든 개론서를 살펴보면 1장에는 보험이 담보하는 위험의 성격을 정의한다. 어떤 것을 참고하든 보험이 담보하는 위험의 대상을 '사고의 발생 빈도는 낮지만 사고가 나면 피해 강도가 큰 것'으로 정의한다. 만약 사고 빈도가 너무 높으면 보험으로 인수할 수 없다. 이 경우 손해율이 너무 높아 보험사가 사업을 영위할 수 없고 손해사정 비용 등이 증가하여 보험 계약 유지가 어렵다. 피해 강도가 적으면 다수의 계약자가 굳이 보험료를 지불하며, 보험사에게 위험을 전가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보험 상품이 담보해야 할 위험의 적절한 예는 조기 사망처럼 사고 빈도는 낮지만 발생 시 한 가정에게 파국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보험 상품을 둘러싼 마케팅이나 신상품 경향을 보면 위험의 본질에서 벗어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부상치료지원금을 두고 치열한 상품 경쟁이 벌어졌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신체피해의 정도를 부상과 후유장애 각각 1~14등급으로 구분한다. 1급이 가장 심각한 피해이며, 14급으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경미하다. 보험에서 위험의 본질을 따질 때 중상해 이상의 심각한 교통사고 신체피해는 발생 빈도가 낮고 강도가 크기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12~14급은 단순 염좌 또는 타박상으로 별다른 치료 없이도 시간이 지나면 완치되는 피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로 12~14급 피해 시 100만원 이상의 보험금을 지급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성행했다. 이는 보험이 담보해야 할 위험의 본질을 벗어난다. 동일하게 골절로 몇 십만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해당 보험금이 없더라도 사고를 처리함에 있어 재난적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자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를 유혹하고 본질을 흐리는 전략으로 단기 매출 확보에만 급급한 형국이다. 물론 소소한 보험금 지급 경험은 중요할 수 있으며,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계약 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망이나 중대 질병과 후유증 등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는 계약도 다수 관찰되기에 문제가 있다.

결국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대수롭지 않은 사고에서 적은 보험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이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사고 시 납부한 보험료 대비 돌아오는 큰 액수의 돈을 통해 사고를 극복하는 것에 있다. 이를 놓쳐 정작 보험금이 필요한 사고에서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적절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산업의 올바른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 보험 가입의 목적과 본질을 경험하지 못한 수요층이 증가하면 그 효용과 필요성이 망각되고 불만이 쌓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가 선호하는 사고 발생 빈도가 높고 강도가 적은 위험만을 제안할 경우 보험 중개 시장에서 양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는 대면채널의 급격한 위축이 예상된다. 큰 피해가 아님에도 소소한 보험금으로 인해 만족도가 높은 치명적이지 않은 위험은 굳이 전문적인 중개자의 위험 환기가 필요 없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 상품은 비대면 채널로도 충분히 체결할 수 있다. 결국 대면채널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험이 추구해야 한 본질적 위험으로 돌아가 이를 제안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짧게 보고 기본을 망각하여 단기 매출에만 집중한다면 미래는 없다. 기본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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