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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판분리' 첫발 한화생명, 앞날은 '안갯속'

  • 2020.12.22(화) 09:24

2만 명 전속조직 물적분할로 판매전문회사 설립
자사상품 매출 줄며 현 위상 유지 어려울수 있어
1400명 임직원 노조 동의없이 이동…연말 총파업

한화생명이 '보험상품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제판 분리'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향후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2만 명에 달하는 전속설계사 조직을 떼낼 경우 한화생명의 자체 보험상품 판매가 줄면서 장기적으로 업계 2위권인 현재 위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물적분할' 방식으로 1400명에 달하는 영업관리 임직원을 함께 떼내는 만큼 기존 조직의 위상 약화를 우려한 노조가 극렬히 반대하고 있어 내홍도 예상된다.

◇ 전속조직 떼내 '판매전문회사' 전환…수익확대 가능할까

한화생명은 지난 18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전속 판매채널 분리를 통한 판매전문회사 설립 추진을 의결했다. 전속 판매채널을 물적분할로 분사해 100% 자회사로 설립하는 형태다.

전속설계사 2만 명과 영업조직 임직원 1400명이 이동해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2021년 4월 1일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업계 1위의 초대형 판매전문회사 도약 ▲연결손익 극대화 ▲제판분리 선제대응을 통한 시장 선도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손해보험 상품 판매를 겸업해 설계사 조직의 이탈 방지와 함께 GA(독립 법인대리점) 수준으로 매출을 늘린다는 목표다. 그러면서 한화생명 본사는 안정적인 사업비차익을, 판매자회사는 추가 이익을 확대해 양측 모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과연 수익 확대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한화생명 상품만 판매하던 2만 명의 설계사가 다른 보험사의 상품을 함께 팔게 되면 당연히 자체 상품 판매는 줄어들게 된다. GA의 사업 구조가 회사 수익의 일부를 운영비로 떼어내고 나머지는 모두 설계사 수수료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니 타사 수수료 수익 확대로 줄어든 자사상품 매출을 메우고 현재 규모(M/S)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생보는 한화생명 상품만, 손보는 5개사 정도와 제휴를 계획하고 있어 40개에 달하는 보험사와 제휴한 다른 대형 GA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 조직이탈 우려도 나온다.

◇ 노조 "수익구조에 심각한 문제 발행할 수 있어"

노조가 사측의 결정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유도 이 대목이다.  

김태갑 한화생명 노조위원장은 "보험상품은 생보와 손보가 경쟁관계에 있는데 손보상품을 팔아 설계사에게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건 자사 상품은 덜 팔겠다는 의미"라며 "보험사는 보험상품 판매 수수료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납입되는 보험료를 통해 자산운용으로 수익을 내는데 타사 상품의 판매수수료는 설계사에게 지급하고 별로 남는 게 없어 수익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속조직의 완전한 분리는 장기적으로 회사에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구조"라며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겠다지만 조직 분리만으로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말이 안돼 영업현장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조직의 규모가 큰 만큼 경영진의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 겪게될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전속설계사는 한화생명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이를 강화하는 한편 점진적으로 GA 확대 방안을 모색하자는 의견을 사측에 전달했지만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며 "조직 규모가 큰 만큼 파급력이 어마어마한데 파일럿테스트나 사전 논의도 없이 추진하고 있어 경영진의 결정이 틀렸다면 향후 리스크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제판분리 흐름은 분명하다고 하지만 대형사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며 "조직이 거대해 미치는 영향력이 큰 데다 전속조직은 영업의 핵심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는 통로인 만큼 이를 잃을 경우 미칠 파급력을 예상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화생명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물적분할을 통한 제판분리 방향을 제시한 상황으로 추진단계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아직 구체적인 방안들이 모두 마련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화생명 ‘판매전문회사’ 통한 제판분리 주요 내용, 제판분리 첫발 딛은 한화생명, 이후 모습은 안갯속

◇ '로열티' 가진 영업조직 유지 관건

한화생명이 기존 위상을 지키려면 설계사 이탈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만큼 이들을 붙잡아둘 유인 마련이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GA로 이동할 사람은 어느 정도 이동했다고 본다"며 "GA 자체적으로 지원이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아 전속설계사들은 다시 돌아오는 경향도 있어 조직 이탈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1400명의 영업관리 조직이 함께 이동하는 만큼 지원업무나 교육에 있어 다른 GA와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설계사 이탈을 막을 수 있다면 한화생명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매출인 '계속보험료'를 지킬 수 있다. 더욱이 설계사가 다른 GA로 이동해 기존 계약을 깨고 신계약을 체결해 대규모로 늘어날 수 있는 신계약 사업비 지출도 줄일 수 있다. (관련기사 ☞ 1200%룰과 자회사형GA의 만남…보험 '제판분리' 포문 열었다)

다만 조직 이탈을 완전히 막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GA로 이동하지 않고 전속설계사를 유지하는 설계사는 대부분 한화생명에서 우수설계사로 인정받거나 로열티(충성도)가 높은 설계사인데 이들을 분리해 GA로 전환 시 로열티가 그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라며 "회사에 대한 로열티 보다 여타 GA처럼 수수료 마진이 높은 상품 위주로 판매구조가 바뀐다면 소비자뿐 아니라 회사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 줄어드는 자사상품 매출…중소형 GA로 확보?

한화생명 상품 판매 규모가 줄어들 경우 다른 GA 판매 비중을 확대해 이를 메울 가능성도 있다. 내년부터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보험판매 수수료를 연간 보험료 이내로 제한하는 '1200%룰'이 적용되는 만큼 GA판매 비중을 늘린다고 해도 과거처럼 수수료 출혈경쟁에 따른 사업비 지출이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보험정책+]1200%룰 왜 적용할까?)

더욱이 1200%룰 적용으로 대형 GA 대비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GA 역시 한화생명이 내미는 손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한화생명이 판매전문회사 설립을 발표하면서 교육체계와 지원시스템을 통해 중소형 GA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것 역시 이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 노조, 연말 총파업 결의 나서

한화생명 노조 제판분리 반대 시위
한화생명보험노동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열린 '한화생명 물적분할 저지, 총력투쟁 긴급 기자회견'에 참가해 사측의 영업조직 자회사 전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한화생명 노조는 임직원 4000여 명 가운데 35%에 해당하는 1400명의 임직원이 이동하는 데도 사전 논의나 동의 없이 진행을 추진하는 사측에 반발해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선 상태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의 타사 전직 시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단체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데 회사는 이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사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이번주 중으로 온라인 결의를 통해 연말 전면적인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증도 없이 이뤄지는 대규모 조직이동에 대한 우려를 지적했지만 사측은 검증해볼 방법이 없다는 입장만 반복해 다수의 영업직원들이 반발하고 있으며 관리자급 직원들의 공감대도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화생명 노조는 1400명의 임직원이 자회사로 이동시 기존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만큼 산별노조 가입도 함께 추진 중에 있으며 오는 24일 임시대위원회를 개최해 산별노조 가입 찬반투표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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