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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룰과 자회사형GA의 만남…보험 '제판분리' 포문 열었다

  • 2020.12.03(목) 14:28

미래에셋생명 내년 3월 전속조직 자사형GA로 "제판분리 시동"
1200%룰 적용…조직이탈 방지, 계속보험료로 수익 유지 포석
한화·신한 등도 준비…고용보험 대비 비용절감, 조직 효율화도

보험업계 해묵은 과제인 '제판분리(제조와 판매 분리)'가 미래에셋생명을 선두로 본격화될 조짐이다. 모집수수료 정책인 '1200%룰'자회사형GA(법인보험대리점)의 만남이 이를 가능케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보험사들은 코로나19 를 비롯해 '1200%룰' 도입, 고용보험 적용,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등 내년 보험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정비용을 낮추고 플랫폼·비대면채널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이다.

# 미래에셋생명 제판분리 포문 열어

미래에셋생명은 지난 1일 채널혁신추진단을 출범하고 내년 3월 본사 소속인 전속설계사 3300여명이 자회사형GA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보험상품 제조(보험사)와 판매채널(GA)을 분리하는 제판분리를 공식 선언한 것은 업계 최초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금융서비스에 소속된 설계사는 지난 6월말 기준 242명으로 총 3500여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제판분리를 통해 혁신상품 개발과 고객서비스, 자산운용 중심의 미래형 생보사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생명도 내년 4월께 2만명에 달하는 전속조직을 분리해 별도 법인을 신설하는 작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기존 자회사형GA인 한화라이프에셋, 한화금융에셋을 합병하는 등 사전 정비작업도 나섰다.

신한생명도 내년 오렌지라이프와의 통합법인인 신한라이프 출범에 앞서 지난 8월 자회사형GA 신한금융플러스를 출범하고 대형 GA인 리더스금융판매 인력 흡수를 계획 중이다. 자회사형GA 설립을 미뤄왔던 곳들도 설립을 서두르는 분위기여서 제판분리를 향한 지각변동이 거셀 전망이다.

보험사 자회사형GA 현황, 법인보험대리점

# 가보지 않은 길…전속조직 분리의 장단점

자회사형GA를 설립해 기존 전속조직 일부를 떼어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전속조직 자체를 완전히 떼어내는 시도는 없었다. GA의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서 전속설계사를 분리하는 것은 든든한 아군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GA 매출 의존도가 높았던 일부 보험사들이 다시금 전속조직을 키우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최근 생보사들은 역성장으로 인해 계속해서 전속 설계사가 유출되는 상황이다. 종신보험과 연금, 변액보험 등에 집중해왔으나 시장포화와 복잡한 상품구조, 규제강화 등으로 2017년부터 수입보험료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 집중해온 손보사 대비 상품경쟁력도 떨어지면서 여러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GA로의 이탈이 가속화 되고 있다.

보험사 전속설계사 수 추이

생보사와 손보사의 전속설계사 수는 격차가 점점 줄어들다 올해 6월말 손보사 설계사가 생보사를 추월한 상태다. 자회사형GA는 이러한 이탈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타 GA로 이탈을 줄이는 동시에 설계사의 생산성 향상과 조직을 직접 운영하는데 따른 고정비용도 줄일 수 있다.

다만 든든한 아군의 위치는 우군 정도로 내려간다. 초반에는 익숙한 자사 상품을 판매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판매가 용이하고 수수료가 높은 상품들로 판매추이가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 현재 미래에셋금융서비스 내에서도 생보상품 신규 모집실적이 줄어드는 반면 손보상품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초회보험료 기준 모집실적 격차도 크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2018년 생보 20억원 손보 65억원에서 2019년 생보 15억원 손보 67억원, 올해 상반기에는 생보 3억원, 손보 44억원을 기록하며 격차가 커지고 있다.

보험계약의 건전성과 조직 이탈도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조직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다"며 "바로 옆에 두고 타이트하게 관리하던 것에서 벗어나면 영업은 크게 늘어날 수 있지만 건전하지 않은 계약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조직 이탈"이라며 "조직에 대한 회사의 장악력이 줄어들다 보니 조건이 더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기 쉽고 조직이 대량으로 함께 이동할 때도 있어 타격이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사 법인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 수 추이

# 마법같이 찾아온 '1200%룰'…'자회사형GA'는 제판분리 중간다리 역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도 10여년 간 진척이 없었던 보험업 제판분리를 생보사들이 지금시점에, 연이어 빠르게 진행하는 것은 바로 내년 도입될 '1200%룰' 때문이다. (관련기사☞ [보험정책+]수수료 개편 후①1200%룰 왜 적용할까?)

제판분리가 쉽지 않았던 것은 보험사와 판매채널 간 1차적 배상문제 등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의견일치가 쉽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 이유이지만 실상 보험사가 대규모 전속설계사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관련기사☞ [GA,몸통을 흔들다]④제조-판매 과도기 '혼란')

설계사는 보험영업의 꽃이라 불릴 만큼 매출에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며, 대형사들은 이러한 설계사들을 수만명씩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 보험사가 자회사형GA를 최초로 설립하던 당시에는 전속설계사들의 집단 반발로 인해 설립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자회사형GA 설립이 늘어나고 어느 정도 정착하면서 마법같이 '1200%룰'이 등장했다. 1200%룰은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첫해 수수료를 계약자가 납입하는 1년치 보험료(월납보험료의 12배) 이내로 제한하는 규제로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모든 판매조직이 같은 규제를 받는 만큼 더 높은 수수료 보장을 통해 설계사들을 끌어모았던 GA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자회사형GA 인력이 일반 GA로 이탈하는 것을 크게 완화시켜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보험사가 '계속보험료'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설계사는 타 GA로 이동할 경우 본인의 계약자들에게 기존 보험을 깨고 새로운 보험에 가입시킨다. 이 경우 보험사들은 매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익인 계속보험료를 잃게 되며 새로운 계약 체결 시 설계사에게 선지급하는 수수료로 인해 비용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즉 수익은 줄고 지출은 크게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전속조직 규모가 클수록 보험사가 받게 되는 타격은 큰데, 이들의 이탈을 자회사형 GA와 1200%룰을 통해 상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회사형GA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보험사는 계속보험료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은 유지하면서도 교육비, 사무실 임차비 등 직접 운영하는데 들이는 고정비용은 30~40% 가량 낮춰 재무제표 개선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낮춘 비용은 최근 보험사들이 활로로 주목하고 있는 디지털·비대면 채널 등에 투입될 전망이다. 이미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비대면 채널 활대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고심 중이다.

# 생보사 위기 타개 가능할까…조직 큰 한화생명 내홍

이 같은 변화의 움직임에 생보사들이 그것도 덩치 큰 대형사들조차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생보사들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저금리에 따른 이차역마진 등 부담이 큰 한화생명의 경우 덩치가 큰 만큼 조직 변화에 따른 몸살도 크다. 전속조직이 2만명에 달하는데다 2019년 초 영업관리직인 지점장·본부장급을 사업가형지점장제(계약직)로 완전히 전환한 미래에셋생명과 달리 영업조직과 연계된 정규직원만 1000명이 넘어 고용문제와 맞물려 노조와 내홍을 겪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한화생명 노조는 2만명에 달하는 조직을 이동하면서 사전 설명이나 영업조직의 의견청취가 없었고 검증절차인 파일럿테스트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직원의 자회사 이동시 노조의 동의가 필요한데도 사측이 결정된바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어 노사 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했다.

한화생명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자회사의 물적분할 시 법상 직원의 개별동의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지만 직원의 자회사 이동시 노조의 동의를 얻는 것은 법과 별개로 단체협약으로 정해진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며 "전속조직을 이전하는 것을 전면 반대하며 이에 대한 조합원 쟁의 투표도 이미 마친 상태로 총파업을 각오하고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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