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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SG경영은 왜 해야하는가?"

  • 2021.05.24(월) 14:00

[창간기획]ESG경영, 이제는 필수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 한국대표 인터뷰
"기후변화는 금융시스템 영향 미치는 재무 리스크"
"ESG, 착한 사회공헌 아닌 생존 위한 근본적 변화"

ESG 경영이 대세다. 투자유치, 수주 등 경영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많은 기업과 금융사들이 핵심 경영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ESG 경영은 금융투자, 스타트업 육성, 제품 개발 등 실질적인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녹아들고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다양한 ESG 경영활동이 이뤄지는 현장을 발굴해 공유함으로써 ESG경영 확산에 기여하고자 한다.[편집자]

최근 동네 대형마트를 갔다가 깜짝 놀랐다. 유가공제품 판매코너에서 남양유업 제품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 분위기를 봐선 남양유업 제품 인기가 너무 좋아서 물건이 동났을 리 없고,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기자회견 장면도 떠올랐다. 여전히 남양유업 제품이 잘 팔리고 있었다면 그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까. '이러다 진짜 회사 망하겠구나'란 판단에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은 아니었을까.

남양유업은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가운데 'S(사회)' 문제가 기업가치에 심각한 위험으로 옮겨가 결국 'G(거버넌스)'의 틀까지 비자발적으로 바꾼 사례다. ESG 관리를 잘못하면 회사가 망할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점을 남양유업은 보여준다. 앞으로도 남양유업의 사례는 ESG 연구의 교본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양유업 같은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서 ESG를 검색해보자. ESG 경영에 속도를 높인다는 수많은 기업 명단이 쏟아진다. 자본시장에선 ESG 관련주, 녹색채권 얘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ESG를 잘하지 못한다는 곳은 찾기 어렵고, ESG를 하겠다는 곳은 넘쳐난다. 그러나 한걸음만 더 나아가 다음 질문에 답을 얻어보려 시도하면 금세 막힌다. 

"ESG를 왜 해야하나, 또는 ESG의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MSG(MonoSodium Glutamate. 인공조미료 중 하나)는 알아도 ESG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제는 경제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ESG가 무엇을 뜻하는지 사전적 의미는 안다. 다만 거기까지다. ESG의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답을 찾기 쉽지 않다. 일부에선 ESG 등급을 매겨서 순위도 발표하지만 공허하다. 1~2년 전 자료를 바탕으로 한 뒷북 평가다. 

기업의 가치는 단순하게 보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흐름의 합계이다. 금융, 특히 투자의 역할은 이러한 미래 흐름을 보고 돈을 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ESG 평가등급이란 건 구체적으로 ESG의 어느 부분이 기업의 미래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야 한 시절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하다.

여전히 우리 경제와 자본시장은 'ESG를 잘하면 착한기업, ESG를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면 착한투자'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착한 것'은 의미 있지만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고 투자도 자선사업이 아니다.

단지 착해 보이려 ESG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해야하니까 하는 것일까. 왜 해야 할까. 답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만났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한국대표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 한국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에코앤파트너스이도씨(2℃) 사무실에서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유엔환경계획이 전 세계 금융회사들과 만든 자발적 논의기구인 UNEP FI는 20여 년 전인 2003년 ESG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책임투자'란 개념을 만들고, 현재 ESG와 책임투자의 세계적 기준이 된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까지 이르게 한 ESG의 '산파' 역할을 해온 곳이다.

임 대표는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부의 ESG, 기후변화 관련 각종 논의기구에 단골로 초대받는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이 분야 '고수'이기도 하다. 

임 대표는 "ESG를 여전히 비재무적 요소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적어도 기후변화 리스크 만큼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면 이들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은 기업에도 영향을 준다. 그는 "기업들은 투자를 받기 위해 관련 정보를 적극 공개해야 하고, 더 나아가 생존하기 위해 기후변화 리스크가 적은 분야로 사업방향 자체를 바꾸는 '딥체인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ESG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이미 자본시장에서도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그린수소와 같은 사업으로 전환한 기업이 주목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가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에코앤파트너스이도씨(2℃) 사무실에서 임대웅 대표와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ESG란 용어가 처음 나온 지 벌써 20년이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 처음 ESG란 개념을 사용할 때 '빙산'에 비유했다. 바다 위에 튀어나온 부분은 재무제표, 밑에 잠겨있는 99%는 ESG라고 봤고, 이 99%가 기업의 본질이고 주가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기본 전제가 ESG는 비재무적 변수이고, 주류는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ESG를 비재무적인 요소로 바라본다.

ESG를 잘하면 주가가 오를까, 투자자들은 ESG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ESG의 어떤 부분이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까. 이런 연구가 거의 없었다. ESG를 평가해보니 평가가 잘 나온 기업 중에 주가도 좋은 기업이 있더라는 수준이다. 어느 정도 관련성은 있겠지만 ESG 때문에 주가가 올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세계적 신용평가사 S&P가 최근 ESG 변수와 기업의 채무불이행 연결고리를 분석해보니 E.S.G 중에서 딱하나 관련성이 있는 게 'E(환경)' 그중에서도 '기후변화 리스크' 라는 결론이 나왔다. 

글로벌 금융당국들도 ESG 전체가 아닌 기후변화 리스크를 관리한다. 전 세계 은행, 증권, 보험회사를 관리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 국제보험감독기관협회(IAIS)는 기후리스크를 금융감독에 적용하기 위한 국제기준을 만들고 있다. 

금융감독기구는 기후리스크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감독기구가 움직이면 그들의 감독을 받는 금융회사는 따라가야 한다. 건전성에 영향을 미친다는데 안 움직일 수 없지 않나. 

이제는 ESG 중에서 기후변화 리스크는 재무적 요소, 그것도 금융감독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주류로 들어왔다. 이러한 점이 ESG 20년 역사에서 가장 대단한 일이다.

-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

▲ 일반적인 ESG 평가는 과거 데이터를 분석한다. 재작년 지속가능경영을 하고, 작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낸다. 그 보고서를 토대로 평가기관이 올해 평가한다. 2년 전 내용을 지금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기후리스크는 미래의 위험을 분석하는 것이다. 기후재난 현상으로 인한 물적 피해인 물리적 리스크와 저탄소 사회로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손실을 의미하는 이행 리스크로 구분할 수 있다. 
  
- 어려운 용어다. 물리적 리스크란 무엇인가

▲ 최근 많은 기후재난이 있었다. 우리도 장마나 산사태로 해마다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작년(2019년)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액이 420조원이다. 이 숫자를 어떻게 추산했느냐. 기후재난으로 사고가 나면 피해를 본 공장, 주택, 토지 등은 보험금을 청구한다. 보험사는 그에 대비해 재보험을 든다. 바로 재보험사에 기후재난 관련 전 세계 데이터가 있다. 

420조원은 필리핀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다. 필리핀의 GDP 규모가 세계 30위권이다. 세계 30위권 국가의 GDP가 기후재난으로 1년마다 없어지는 것이다. 

기후재난이 이렇게 실물경제 직접 영향을 미치는데 IMF 같은 국제기구가 어떻게 기후재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로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지급하다 보니 어려워진 사례가 많다. 

보험사도 영향을 미치지만, 기후재난으로 공장이 잠기고 불타면 원리금 상환이 어려진다. 은행에 영향을 준다. 은행과 보험이 작동하지 않으면 실물경제는 어떻게 돌아가겠나.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바로 '그린스완'(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위험)이다. 기후리스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금융시스템에 영향 주고, 다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기존의 예측할 수 없는 금융위기를 지칭하는 '블랙스완'(Black Swan)처럼, 기후변화가 가져올 금융시스템 위기를 '그린스완'(Green Swan)이라고 부른다.[편집자]

- 이행 리스크는 무엇인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세계 각국 정상들이 지난달 기후정상회의를 했다. 온실가스를 더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IMF는 각국 재무장관들에게 피리기후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1톤당 75달러까지 탄소세를 높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만약 이산화탄소 100만톤 배출하는 회사가 있다면 850억원(7500만달러)의 탄소세를 내야 한다. 그러면 그 회사가 1조원어치 팔아서 1000억원 이익을 남겼다고 해도 800억원 이상 탄소세 내면 200억 정도 남는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이행 리스크다. 

이산화탄소 규제 준수를 위한 비용을 따져서 과거 3년 평균 에비타(EBITDA)의 몇 퍼센트인지, 또는 시가총액의 몇 퍼센트인지 계산도 가능하다. 재무제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만약 이산화탄소 규제 준수 비용을 절감하고자 석탄발전 대신 새로운 에너지 설비를 도입하려면 자본을 지출해야 한다. 그럼 현금 유동성이 틀어지고, 회사채 등급이 나빠진다. 역시 재무적 영향이 명확하다.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물리적리스크, 이행리스크로 구분한다./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 기후리스크가 금융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면, 결국 금융에서 돈을 끌어다 써야 하는 기업도 영향이 있을 텐데

▲ 그렇다. 단적인 예가 블랙록이다. 기후 관련 재무공시(TCFD)를 하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하겠다거나, 이런 압박에도 버티는 경영진에는 연임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한다. 블랙록이 갑자기 문득 깨달음을 얻었을까. 블랙록을 감독하는 기구들의 움직이니 그들도 움직이는 것이다. 감독기관이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ING는 매출액에서 석탄발전이 일정 비중 이상을 차지하는 곳에는 대출도 투자도 하지 않는다. 여러 단계에 걸쳐 기후리스크를 바라본다. 그리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인 철강·발전·부동산·선박·항공·자동차 등 몇가지 산업에 대해선 아예 온실가스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대한 기준을 정량적 지표로 바꿔버렸다. 예를 들어 철강은 제품 1톤당 이산화탄소 배출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대출 안해준다는 기준을 만든 것이다. 특히 매년 기준을 강화해서(낮춰서) 일정 시점이면 0으로 수렴하게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자산포트폴리오의 탄소중립'이다. 블랙록이 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 금융회사가 대출 또는 투자하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관리해야 하나

▲ '은행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냐'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석탄발전을 많이 하는 곳이 있다. 그 회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신용평가회사가 매긴 등급만 믿고 회사채를 사는 순간 금융회사의 자산포트폴리오 상에 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앞으로 탄소세 부담이 높아지면 투자기업 중에 어려워지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이 과연 회사채 상환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이런 것까지 이제는 고민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금융당국자들도 세상이 바뀌었다고 얘기한다. 

- 최근 많은 기업, 금융회사들이 ESG 관련 계획을 발표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ESG를 잘하고 있는 것인가. 또는 ESG를 잘한다는 개념은 대체 무엇인가? 

▲ ESG를 진짜 잘하는 기업들은 '딥체인지'(근본적 변화) 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것이다.

석탄발전으로 번 돈으로 착하게 사회공헌한다? 딥체인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사업 자체를 재생에너지나 그린수소로 바꾸는 것이다. 똑같이 에너지를 팔지만, 환경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 그런 방식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하는 것이 딥체인지다. 

예를 들어 SK이노베이션은 정유로 성장한 회사이지만 지금은 다른 에너지로 넘어가고 있다. 생존을 위해 딥체인지를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의 싸움은 단순한 환경 관리가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들고, 오염을 유발하는 사업을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제거해나가느냐는 것이 진정한 ESG 솔루션이 될 것이다. 

최근 ESG위원회 신설을 하는 곳이 많다. 안하는 것보단 좋다. 다만 그분들에게 어떤 계기로 하는 건지, 유행처럼 하고 계신 건지 묻고 싶다. 기업의 흥망성쇠 측면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을 사회에 제공하기 위해 변화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홍보자료 내기 위해서이거나 사회공헌 조금 하려고 하는 건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다. 

홍보나 사회공헌 정도의 수준에서 끝나면 비용을 떠나 기업의 미래를 별로 고민 하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ESG도 이제 본질 봐야 한다. 

- ESG 공시도 점점 강화하는 추세다. 이런 게 필요하지만, 기업에는 당장 부담일 수 있는데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참가하는 건 투자자에게 어필해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적절한 정보를 주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나. 옛날처럼 재무제표만 주고 판단하라고 한다면? 개인투자자들은 분산되어서 힘이 없겠지만, 기후리스크를 기반으로 건전성 감독을 해야 하는 감독기관은 어떻게 감독해야 하나. 또한 감독기관의 감독을 받는 금융회사는 또 어떻게 하나. 기후리스크 공시를 하지 않으면 투자를 못 받는 상황이 온다. 투자를 더 많이 받으려면 공개해야 한다. 

자본시장을 이용하고 싶으면 자본시장 참여자들에게 정당한 정보를 줘야 한다. 사업하는 친구에서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금융이 기업에 투자하는 행위인데 정보를 안 주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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