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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빅2' 무산…신뢰 잃은 이동걸식 산업재편 

  • 2022.01.14(금) 11:55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 3년만에 좌초
EU, LNG선 독점 우려에 기업결합 불승인
합병 추진 3년 만에 백지화…조선업에 악영향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추진 3년 만에 무산됐다.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선 독과점을 이유로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앞장서 국익을 내세우며 추진한 산업 재편이었다. 한국 조선업의 '빅3' 체제를 '빅2'로 개편한다는 구상은 물거품이 됐고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국익 앞세웠던 '조선업 재편' 밑그림

이제는 백지화된 밑그림이 공개된 건 3년 전이다. 2019년 1월31일, 산업은행은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긴급 개최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20년간 관리해온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선산업 1위 기업에 2위 기업을 넘겨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관련기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빅1' 자리 오른다(2019년 1월31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산업재편 필요성과 기업가치 제고 정상화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현대중공업과 우선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게 됐다"며 "당장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는 목적보다는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도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지분의 투자를 유치해 조선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에 합의하고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간담회장에는 그룹 2인자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과 가삼현 현대중공업 사장이 나섰다.

합의의 틀은 현대중공업과 산은이 합자 지주사를 만들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권을 현대중공업에 넘기고,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분(55.7%)을 출자한 뒤 그 자금을 단계적으로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은 옛 현대중공업을 조선합작법인(한국조선해양)과 사업법인(현 현대중공업)으로 나누기까지 했다.

명분이 독으로… 

결과는 백지화였다. 애초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특정 선종으로 들어가거나 국내로 한정하면 시장 점유율이 50%를 훌쩍 넘긴다는 독과점 우려를 샀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기본적으로 조선산업은 선주사들이 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어 시장 여건을 훼손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독과점 우려 속에도 산은은 산업재편의 명분 측면을 강조해왔다.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헐값에 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정부 주도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가져올 장밋빛 전망만 내세웠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대우조선과 산은의 공적자금 '굴레'(2019년 2월29일)

산은이 내세운 조선업 경쟁력 제고란 '저가수주 경쟁 완화'와 '선가회복 노력'이었다. 특히 이 회장은 "이번 딜은 단순히 회사를 사고파는 문제가 아니다. 과당경쟁, 중복투자 등 비효율을 제거하고 빅2 체제로 조선산업을 재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들이 제값을 받도록 하겠다는 논리는 선주사들이 위치한 다른 국가들을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독과점 이슈를 풀어야 했는데 결국 산은과 이동걸 회장이 강조한 국내 산업재편의 명분은 국제적으로 보면 독과점 이슈를 자극한 논리였다. 

양수도 마무리를 위해선 주요 선박 발주사가 있는 6개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승인를 받아야 했다. 승인이 없더라도 해당 국가에서 수주를 못할 뿐이긴 했지만 이는 본계약 조건으로 담겼다. 인수자인 한국조선해양 입장에서는 기존처럼 영업하는 것을 보장받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한국조선해양은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으로부터는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EU의 불승인이 결국 합병 무산을 불렀다. EU 집행위원회는 13일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형성해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한다며 불허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럽은 조선 고객사인 선주사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지역이다.

당장은 괜찮다?…악영향 불가피

EU집행위원회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 담당 부위원장은 "두 회사 합병은 LNG 운반선 시장 독과점으로 이어져 선가 인상 등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LNG선 시장 독과점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해결책을 두 회사가 제시하지 않아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EU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에 내건 승인 조건은 LNG선 사업부 일부 매각이었다. 세계 1·2위급 조선업체가 합병해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 거대 업체가 되면 선가가 높아질 것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EU는 세계 3위의 LNG 수입국이어서 선가 인상이 LNG 가격 상승이라는 파장까지 이어질 것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수합병(M&A) 불발이 두 조선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당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의 합동 보도자료에서 "최근의 조선산업 여건이 2019년 당시보다 개선돼 EU의 불승인 결정이 우리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업 시황은 변동성이 크다. 코로나 이후 현재와 다르게 다시 수주환경이 나빠질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는 지금보다 더 악화될 우려가 크다는 게 업계의 걱정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다시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부담도 더해졌다.

산업은행의 '이동걸식(式)' 산업 재편 방향성과 방식도 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됐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항공업 빅딜(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역시 이 회장 취임 이후 산업은행의 그림이다. ▷관련기사: 셈법 복잡해진 '항공 빅딜'…누군가 울면 누군가 웃는다(1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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