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입니다. 사회 결속이 단단해지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2020년 자살률이 전년 대비 감소하긴 했지만 '불명예'는 여전했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고의적 자해(자살)는 암, 심장 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5위를 차지했습니다. 10~30대에서 사망원인 순위 1위이고, 40대와 50대는 2위로 높은 순위에 위치했죠.
촉각 곤두세우는 생보업계
생명보험업계는 이런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당장 자살 사망보험금 지급 때문만은 아닙니다. '뜻밖의 어려운 일을 당한 이웃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상부상조와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게 업의 특성인 만큼 더 그렇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자살을 막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생보사들 공동 출연으로 출범한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산하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생보재단)이 자살예방 지원사업을 주로 맡고 있는데요.
생보재단은 △2017년 34억4000만원 △2018년 34억9000만원 △2019년 32억4000만원 △2020년 32억원 △2021년 19억5000만원을 자살예방 사업에 태웠죠. 지난 5년간 전체 예산의 35~40%에 해당하는 돈을 매년 집행한거에요.
지난해 전체 예산이 53억9000만원으로 전년 80억7000만원에 비해 크게 감소해 자살예방 사업에 들어가는 돈도 같이 줄었지만, 사업 비중은 36.2%로 적지 않았습니다. ▷관련기사 : 코로나 속 자살 줄었다…생보 보험금 지급도 감소(2022.07.27)
이런 상황에서 보험업계 한쪽에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살에 대한 보험 보장을 줄이거나 자살 면책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코로나 이후 일상회복이 진행되는 향후 2~3년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가 주된 근거입니다. 당장 자살률이 감소세를 보였지만 아직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이죠.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살률이 급증해 2011년(인구 10만명당 3.17명)에 정점을 찍은 사례도 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고액의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등 보험이 자살 동기의 하나로 작용하는 걸 최대한 억제하자는 건데요. 실제 복지부에 따르면 자살 동기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38.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요. 다음으로 '경제생활 문제'가 25.4%를 기록했다고 해요. 남성의 경우 경제생활 문제가 첫 번째 동기였죠. 2020년 기준입니다.
자살과 면책기간의 인과관계
그렇다면 자살에 대해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정말 극단적 선택을 부추길까요.
10여년전 나온 보험연구원 보고서를 볼게요. 당시 연구원 소속 이창우 박사가 발표한 '생명보험의 자살면책 기간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인데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생명보험 가입자의 자살률을 보면 3년차 때 평균 8.7건으로 2년차(평균 7건)에 비해 늘어났고 4년차 평균 9.2건, 5년차 평균 9.5건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죠.
연차별 자살률 변동성 집중도를 '자살기간의존지수'(SPDI)를 통해 구해보니 1년차(25.35)와 2년차(17.30)때보다 3년차(31.88) 때 가장 큰 자살률 변동성을 보였죠. 4년차(21.27)와 5년차(23.03)에는 다시 낮아졌고요.
다른 기간 대비 3년차에 유독 높은 변동률을 보이고 있다는 건 면책기간이 생명보험 가입자의 자살 시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게 보고서의 결론입니다.
반면 이 보고서의 허점을 꼬집는 목소리도 팽팽합니다. 해가 지날수록 자살률 자체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가입 4~5년차 때 고점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입니다. 2년의 자살면책 기간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라면 3년차에 최고점이 나타나야 하지만 그 이후였다는 겁니다.
여기에 질병 사망률도 3년차부터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무시해선 안됩니다. 자살 증가가 면책기간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보험 보장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면책기간 연장, 여전한 찬반논쟁
그래도 보험업계는 "보험에 들고 2년이 지나 자살한 경우를 보장하는 건 생명경시와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자살의 유인요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보험 가입자가 생명보험 가입 당시부터 자살을 기획해 면책기간 경과 후 실행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방조 내지는 조장이라는 역기능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거죠.
또 자살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일 자체가 다른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를 올리는 손해를 안겨주고 있다고 주장하죠. 비록 보험료 증가액이 미미할지라도 말입니다. 사망을 보장하는 보험의 보험료를 낮추고 자살률도 낮춰보자는 거에요.
하지만 다른 쪽에선 면책기간을 늘렸을 때 또는 아예 자살에 대해 보장하지 않을 때 보험금을 받지 못한 유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자살 보장과 극단적 선택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아직 확실히 증명되지 못한 상태고 말이죠.
더 나아가 면책기간 연장은 자살 방지를 빙자한 보험사 배불리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쓴소리가 나옵니다.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해 면책기간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지난 2008년, 2012년 관련 논의가 나왔으나 결국 무산된 이유입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올라온 생명보험 관련 안건 중 자살면책 관련 건만 10건"이라며 "이는 다른 무엇보다 생보사들이 자살면책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짚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