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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금융대란]④시장은 '연말 공포'…한은도 골머리

  • 2022.10.27(목) 06:10

자금시장 불안속 건설사업 '도미노 붕괴' 우려
'새 자금 필요' 목소리 높지만…한은 운신폭 좁아

"증권사나 여신전문금융사, 건설사처럼 자금이 긴급히 필요한 곳에 유동성 공급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방자치단체 보증물에 대한 투자심리도 좀 안정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

정부는 레고랜드 사태가 불거진 뒤 1개월여인 지난 23일에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50조원+α(알파)'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내놨다.

내용은 크게 보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직접 사주는 것,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돈이 묶인 금융기관에 급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관련기사: '레고랜드발 급성 돈맥경화' 막으려…정부 50조원 공급 프로그램(10월23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자금시장에 공급자로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물가 압력 탓에 긴축 태세를 내려놓을 수도 없는 게 최근 통화당국의 처지. 한은으로서도 딜레마라는 얘기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정부 대책에도 시장선 "시한폭탄 돌아간다"

정부의 강도 높은 대책에도 시장은 부동산 PF부터 연쇄적으로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급가열된 주택시장이 최근 냉각되면서 부동산 사업은 이미 자금조달이 쉽지 않아진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PF의 대표적 자금 조달 방식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통상 연말께로 접어들면 시장의 단기자금 조달도 빠듯해진다.

레고랜드 사태 전에 이미 PF 경고등은 켜져 있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2일 내놓은 '9월 금융안정 상황'에 "비은행권 PF 대출의 경우 유동성이 낮은 아파트외 사업장이 다수를 차지한다"며 "상대적으로 잠재위험이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성수신 의존도가 높은 증권사 등은 시장불안시 PF 우발채무 인수부담 등에 따른 유동성 위험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꼽았었다.

한은에 따르면 6월말 기준 금융권의 PF 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 이 숫자는 2014년 이후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연 평균 14.9%의 증가세를 지속한 결과다. 잔액 규모는 보험-여전사-은행-저축은행-증권 순이다. 2013년 말과 비교하면 보험이 5조7000억원에서 43조3000억원으로 7.6배 늘었고, 여전사는 2조7000억원에서 26조700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건전성 측면에서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익스포저(PF 대출 및 PF 유동화증권에 대한 채무보증) 비율을 보면 여전사가 84.4%, 저축은행이 79.2%, 보험은 53.6% 순으로 높다. 한은은 "증권사들은 유동성 제공외 신용위험까지 부담하는 신용공여형 보증을 주로 확대해 유동성 확보부담 외에 신용위험에도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은행을 제외한 금융권 어디도 안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PF 대출·보증 규모가 업계 최대였던 한 보험사 관계자는 "2020년 이후 우량한 물량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둔 상태"라며 "다만 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덜 우량한 물량을 최근에야 받아간 금융기관은 비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안정 vs 금융안정' 중앙은행 존재이유 충돌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이나 PF 시장에서 확실한 수요를 확보해야만 이번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 대책이 실효적인 시장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발권력을 쥔 한은이 움직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조원 규모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운영하는 방안부터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 오히려 등급이 낮은 채권이나 어음이 시장에서 더욱 설 땅을 좁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채안펀드 자금 조달 목적으로 은행채 같이 우량한 물량이 풀리면 기존 수요는 오히려 이쪽으로만 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석에 앉아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

결국 시장에 신규 자금이 들어오는 게 중요하고, 그 역할을 한은이 해줘야 한다는 것이 시장 목소리다. 한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대출적격담보증권 대상 확대는 물론 매입기구를 설립하거나, 공개시장 운영 대상 증권 자체를 아예 확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은은 코로나19 초기 저신용등급 회사채와 CP 매입기구인 SPV(기업유동성지원기구)를 설립해 운영했고, 금융사 특별대출 등을 통해 시장에 신규 자금을 넣은 적 있다. 

하지만 당시와 달리 지금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여가며 긴축 기조를 강화하고 있던 게 문제다. 한은으로선 선뜻 신규 자금을 푸는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두 설립목표가 충돌하는 딜레마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는 27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의 비통방(비통화정책방향) 회의도 주목된다. 평시라면 별로 주목도가 높지 않은 게 비통방 회의지만 '전시'와 같은 지금은 다르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는 "유동성을 푸는 것 자체가 긴축의 기조와 상당히 배치된다"며 "(한은이) 그 수준의 적극성을 발휘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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