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은 매정부마다 발생하는 논란이다. 금융산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정부 허가가 기본인 만큼 금융당국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시장경제를 강조했던 까닭에 관치금융 논란에선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부 초기부터 금융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며 관치금융이란 지적이 제기됐고, 최근 이같은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공약' 때부터 지적받던 금리차 공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금융소비자 보호 공약으로 예대금리차 주기적 공시제도 도입, 필요시 가산금리 적절성 검토와 담합 요소 점검 추진을 담았다. 기준금리 인상시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수신금리) 반영 속도 차이가 커 소비자들의 금융부담은 늘어나고 금융회사는 과도한 이익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의 공약이 대부분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예대금리차 공시만큼은 규제를 강화하고 시장에 개입하려는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
금융사들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예대금리차를 공개하고 있었고, 금리는 각 은행마다 경영 목표와 자금조달 등 복합적 요인을 반영해 결정하는 고도의 경영 활동인 까닭이다. ▷관련기사: [윤석열 시대]예대금리 공시·청년도약계좌…부담커진 은행(3월16일)
특히 취임 초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은행의 지나친 이자장사를 비판했고, 이는 수신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했다. 은행들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 전후로 수신금리를 기준금리 인상 폭보다 더 크고 빠르게 올렸다.
7월부터는 예대금리차 공시를 위한 작업에 속도를 냈다. 금융위원회가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만들어 은행별 예대금리차를 매달 공시해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대출금리와 수신금리 공시 범위도 넓혔다.
실제 공시가 시작된 8월22일 이후부터는 은행별 예대금리차가 주목받았다. 일부 은행들은 '이자장사 1등'이란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상대적으로 대출금리 인상 폭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했고, 소폭이지만 예대금리차 공시는 매달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라는 변수
회사채 등 단기자금시장 경색을 야기한 레고랜드 사태는 금융당국이 예상하지 못한, 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변수다. 시장에 돈줄이 마르자 금융당국은 금융지주들에 대규모 자금 공급은 물론 은행들에게는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은 더욱 노골화됐다. 은행채 발행 자제로 자금조달 한 축이 막힌 은행들은 수신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대출금리 인상 압력이 커졌다. 예대금리차 공시 부담에도 은행들은 이전보다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이번에는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수신경쟁 자제를 요청했다. 시중은행으로 자금쏠림이 심화되고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대출금리 기울기가 커지자 금융사들의 대출금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등 대출금리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취임 초에는 수신금리 인상 압박을, 이후에는 수신금리 경쟁 자제를 요청한데 이어 동시에 대출금리에도 금융당국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금융당국 금리 간섭에 은행 '속앓이'(12월3일)
오락가락 입장에 피해는 금융소비자
예대금리차 공시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소비자들이 공시 정보를 활용해 금융사들의 금융상품을 선택하지 않을뿐더러 금리차 줄세우기로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폭을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회의론적 시선이 우세하다.
특히 금리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오히려 애꿎은 금융소비자들만 피해를 본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신금리 인상은 자연스레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간과한 채 단순하게 접근했다는 게 금융권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장사 비판 후 은행들이 앞다퉈 수신금리를 인상했는데, 이로 인해 대출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무책임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라며 "은행들 자체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등 시장 상황에 맞춰 금리를 결정하는데 금융당국이 나서면서 혼란만 커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금리 상승에 대한 부담만 더 커진 게 사실"이라며 "특히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라 이미 대출을 받은 차주들은 갈수록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