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숙원사업인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보험업법 일부 개정안)' 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빠르면 내후년부터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병원이나 약국에서 각종 서류를 발급받을 필요 없이 전산상으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1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처리했다. 법안 심의 과정을 무사히 넘긴 만큼 다음 단계인 국회 본회의 문턱도 무난하게 넘을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같은 날 잡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이란 게 중론이었으나 정회 후 재개되지 않으면서 오는 25일로 예상되는 본회의 통과가 유력해졌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소비자 편익을 위해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뒤 14년만에 시행을 앞두게 된 것이다.
올해 5월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은 지난 13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야당 측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 18일로 처리가 연기됐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 보이콧(거부)으로 연내 처리가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전날 여야 협의로 법사위가 다시 열리면서 일사천리로 심사가 진행됐다.▷관련기사 : 벼랑 끝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기사회생?(9월20일)
법안이 통과되면 시행시기는 공포 후 1년이다. 30병상 미만의 의원급 의료기관은 공포일로부터 2년 뒤 시행된다. 이에 따라 연내 공포가 이뤄지면 2025년부터 모든 병원에 새 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받는 게 한층 편해지는 것이다.
요청만 하면 병·의원이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전산화된 형태로 전송대행기관(전문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전달해주는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보험금을 받으려면 보험 가입자가 일일이 영수증과 진단서, 진료 내력서 등을 병원에서 발급받아 보험사에 스마트폰 앱이나 팩스로 전송해야 해야했다.
번거롭고 불편한 청구절차 탓에 진료비가 소액이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때 비교적 손쉬운 방법인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는 비중이 21%로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팩스(31%), 설계사(23%), 방문(16%) 등을 통해 보험사에 직접 제출하고 있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약 2760억원에 달하는 실손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채 보험사에 남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3997만명, 2020년 기준 연간 실손보험 청구 건수는 약 1억626만건에 달한다.
그만큼 많은 소비자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보장하는 법이란 게 보험업계 주장이다.
보험업계는 소액의 실손보험금까지 청구돼 이른바 '낙전 수입'은 줄지만 종이서류를 접수·심사하는 데 드는 인력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인식도 있다.
더불어 청구체계가 간소화하면 특정 병원이 백내장과 도수치료 등으로 과잉진료를 해 실손보험금을 부당 수령하는 일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이 법안 도입을 반대해왔다
보험업계는 시행령으로 남겨진 전문 중계기관(의료 데이터 전송 대행기관) 지정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내년 중 대형병원부터 단계적으로 청구 간소화가 시행되기 전 시행령 제정과 관련 전산 구축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중계기관은 보험개발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관련기사 : 실손보험 청구 중계기관, 보험개발원 힘 받나(5월24일)
다만 중계기관 지정 문제 역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해온 의료계가 큰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험로가 예상된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보험사가 대규모 의료정보를 손쉽게 입수할 수 있고, 보험가입 거절·보험료 인상 등으로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