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시장, 특히 대출시장은 말마따나 혼돈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금리인하의 시기가 다가오면서 대출차주들은 이자부담이 낮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죠. 자연스럽게 새롭게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금융당국의 방향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너무 많은만큼 대출 옥죄기를 이어나가겠다는 기조를 연이어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세계 경제의 흐름과 한국 금융 정책이 맞붙게 된 모양새입니다.
'고금리' 시대, 끝이 보인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각)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있었던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에서 "통화정책 조정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기준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선언했다는 게 시장의 판단입니다.
당장 시장에서는 오는 9월 17일부터 18일까지로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단정짓는 모습입니다. 당장 주요 투자은행들은 동결이냐 인하냐의 문제가 아닌 0.25%포인트 인하냐 0.50%포인트 인하냐의 문제를 논의할 정도입니다.
미국이 코로나19 대유행, 전쟁,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을 극복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게 지난 2022년 3월입니다. 당시 미국 연준은 0.25%였던 기준금리를 0.50%로 올리면서 '저금리 시대의 종말'을 알렸죠. 그 이후 지난해 7월 5.50%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렸습니다. 1년 반 만에 기준금리가 5%포인트나 치솟은 거죠.
미국은 올해 들어 물가도 점점 안정화되고 경기도 살아나는 듯 하니 이제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기 부양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약 3년간 이어졌던 '고금리'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는 겁니다.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시장에서는 이미 선반영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채권금리만 하더라도 미국이 기준금리를 5.50%까지 끌어올렸을 때와 비교하면 내려와 있었고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대출 금리도 낮아져 두어달 전에는 주요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최하단이 2%선까지 내려오기도 했죠.
시장에서는 미국의 이번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몇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계속 내릴거라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현재 대출 금리도 낮아지겠죠. 이자부담이 큰 가계 혹은 기업에게는 희소식 중 하나일 겁니다.
'고금리' 끝나도 대출 안된다는 금융당국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 수요가 늘어납니다. 이자부담이 높아 대출을 받지 못했던 수요가 꿈틀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죠. 게다가 최근 우리나라는 집값이 연일 상승세인데요, '지금이 아니면 내집 마련이 힘들 수 있다'라는 수요도 있어 저금리가 되면 대출 수요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제지할 모양샙니다. 우리나라 가계 빚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2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가계가 금융회사에서 빌린 빚의 규모가 1896조2000억원으로 집계된 바 있습니다. 지난 1분기보다 13조8000억원 늘어난 수준이죠. 특히 최근 몇달간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매달 수조원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계가 지나치게 '빚'에 의존한다는 판단 아래 금융당국은 대출 시장을 더 직접적으로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5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한 시사프로에 출연해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표한 이후 본격화 하는 모습입니다.
이복현 원장의 발언 이후 다음날인 26일 주요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를 이끌어왔던 주택담보대출 취급에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취급 시 더 많은 제약을 걸겠다는 얘기죠.
여기에 더해 금감원은 27일 가계부채 증가폭이 관리 수준을 넘었다며 더 강한 정책을 펼치겠다는 예고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 금감원 "가계대출 목표 초과 은행, 내년 DSR 관리 페널티"(8월 27일)
금감원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할 경우 재무건전성과 금융시장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있고 소비자보호 문제 등도 우려되므로 일정수준 규율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가계대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개별 은행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어 감독당국의 연착륙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죠.
금리 vs 정책, 부작용은 어쩌나
결국 하반기 대출수요를 끌어올리는 금리 인하와 가계부채 상승을 막겠다는 정책간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네요.
대표적인 것이 풍선효과입니다. 일단 현재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는 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인데요,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니 카드사, 보험사, 저축은행 등 타 업권의 대출로 수요가 이동할 거라는 예측입니다.
당국 역시 이를 우려합니다. 당국의 목표는 '은행 가계대출' 관리가 아니라 전체 가계대출 관리거든요. 게다가 풍선효과가 발생하면 은행보다 더 큰 이자를 감내한다는 것이니 경제주체들의 이자부담이 줄어들지도 않을거고요.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대출 수요가 시중은행에서 지방은행으로, 은행권에서 제2금융권 등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라며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대출절벽' 또한 우려됩니다. 진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전체를 아우르는 금융 정책으로 인해 돈을 빌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자금을 제때 빌리지 못한다면 경제적인 부담은 점점 누적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죠.
이 때문에 은행들은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자금 공급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금리와 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가다보니 금융소비자들의 비판을 오롯이 감내해야할 처지라는 겁니다.
은행들은 올해 남은 기간은 금리보다 정책의 힘이 더욱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들의 아우성이 커질 수는 있지만 금융당국 입장에선 전체적인 리스크관리라는 명분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란 것은 지난 부동산 호황기를 비롯해 이미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결국 고금리 시대의 끝이라는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 겁니다. 이를 과하게 정책이란 힘으로 누르다보면 어디선가 터질 수밖에 없고, 금융시장과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