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이오 시장은 2000년대 'IT 버블' 붕괴 직후와 유사한 구조조정기입니다. 당시 수많은 기업이 사라진 폐허 속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유니콘이 탄생했듯, 지금의 바이오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은 '잠재 유니콘'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재편기에 들어섰습니다."
이태규 스케일업파트너스 대표는 2026년 바이오 시장을 '냉정한 증명의 시기'이자 '다양성의 개화 시기'로 정의했다.
스케일업파트너스는 IT, 바이오·헬스케어, 소재 분야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며, 특히 초기 기업이 겪는 사업화 단계의 어려움을 돕는 데 특화된 벤처캐피탈(VC)이다. 이태규 대표는 삼성전자 기술·사업기획직을 거쳐 코리아벤처스·원익투자파트너스 등에서 20년 넘게 유망 기업 발굴을 주도해왔다.
지난 연말 여의도에서 만난 이 대표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투자를 받던 시대는 끝났다"면서도, 바이오 및 디지털헬스케산업 특유의 확장성과 잠재력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했다.
2026년 화두: '금리 공포' vs 'AI·정책금융 부양'
이 대표는 2026년 바이오 투자시장을 관통할 핵심 변수로 '금리'와 '정책'의 충돌을 꼽았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고금리 기조가 모험 자본(Venture Capital)의 유입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돌파할 동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바이오 같은 딥테크 산업이 성장하려면 모험 자본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금리가 자본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에 맞서 2026년 경제와 바이오 시장을 끌고 갈 두 축은 'AI에 대한 기대감'과 정부가 쏟아붓는 '정책 자금(R&D 예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 자본이 위축된 빈자리를 정부의 인위적인 자금 수혈과 AI 기반 산업 혁신이 메우며 시장 반등을 노리는 형국이다. 이 대표는 "AI 분야 대규모 CAPEX 투자 관련 거품 논란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의 효율을 높이며 시장을 지탱하고 있다"며 "2026년은 이 두 요소가 고금리의 파고를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돈 몰리는 후기 시장, 산업 성숙 증거"
현재 국내 바이오 투자는 초기 기업보다는 검증된 후기 기업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를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흐름"으로 분석했다.
그는 주된 원인으로 '투자 대상의 질적·양적 성장'을 꼽았다. "과거에는 VC들이 후기 투자를 하고 싶어도, 임상 후기 단계까지 생존하거나 유의미한 규모로 성장한 기업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바이오 생태계가 커지면서 기술력을 입증한 '체급 있는 기업'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즉, 과거에는 없었던 '검증된 투자처'들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본이 불확실한 초기 기업보다는 성과를 보이는 성장 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은 산업 발전의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매력'도 더해졌다. 이 대표는 "거품 붕괴와 옥석 가리기를 거치며 성장한 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며 "이로 인해 대형 자금이 후기 시장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다리 끊긴 초·중기, 정부가 메워야"
하지만 소외된 초기·중기 기업의 자금난은 심각하다. 창업과 투자, 엑시트 반복되는 바이오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책 자금'의 전략적 투입을 주문했다. 시장의 논리로 인해 발생한 혁신 창업 생태계 공백을 정부가 메워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 모태펀드 등이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후기 시장이 커지는 속도에 비해 앞단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라며 "정책 당국이 초기부터 미들 스테이지를 타깃으로 한 펀드 규모를 지금보다 과감하게 키워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 그래야 VC들도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떨치고 다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 '허리' 구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세컨더리 펀드(구주 인수) 등을 활성화한다면, 대형 VC의 후기 쏠림과 관계없이 창업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는 '안전판'이 마련될 것이라는 제언이다.
"실적 없으면 상장 한계…'연착륙' 유도해야"
이 대표는 2026년 바이오 기업공개(IPO) 시장에 대해 "과거처럼 기술특례상장으로 적자 기업들이 무더기로 상장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이제 바이오 기업도 일반 제조업처럼 '실적(매출과 이익)'을 증명해야 상장의 문을 넘을 수 있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IPO가 투자를 견인했습니다. 상장만 하면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니 무리해서라도 상장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매출 기반의 이익 구조'를 낼 수 있는 소수의 잠재 유니콘 기업만이 IPO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치료 현장의 미충족 수요 충족과 글로벌 경쟁 우위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증명한 기업들이 특례 상장 시장을 리딩함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M&A(인수합병)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조기 기술이전 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생태계의 건전성을 위해 한계 기업의 '구조조정'과 '연착륙(Soft Landing)'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승자독식 아냐…디지털 헬스케어 기회"
이 대표는 바이오 산업을 2026년의 주도 산업으로 꼽으면서도, IT 산업과는 결이 다른 '구조적 특성'을 강조했다.
그는 "IT 플랫폼 비즈니스는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1등이 시장을 싹쓸이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구조지만, 바이오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폐암 신약이 성공했다고 해서 치매 약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암, 대사질환, 뇌 질환 등 각 질병과 기술(Modality) 영역마다 수많은 '1등 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의 생태계라는 점이 바이오의 가장 큰 매력이자 기회입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이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현실적인 기회'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혁신 의료기기 분야다. 그는 이 분야를 '꿈(Dream)'이 아닌 '현실(Cash)'을 만들 수 있는 영역으로 정의했다.
이 대표는 "신약 개발은 성공 확률이 낮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하이 리스크' 영역이라면, 디지털 헬스케어는 기술만 확실하다면 단기간에 '현금 흐름(Cash Flow)'을 창출할 수 있는 실리적인 시장"이라며 "특히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단순 건강관리 차원을 넘어 의사의 진단을 돕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필수 의료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인허가를 받아도 수가를 받지 못해 사장되는 기술이 많았지만, 이제는 제도를 통해 병원 현장에 진입하고 비급여로라도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규제를 탓하기보다 이 제도를 영리하게 활용해 3년 내 자생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스케일업파트너스, "올해 기획 창업 모델 본격 가동"
스케일업파트너스는 2026년, 기존 투자 기업의 성장 가속화와 신규 '기획 창업'이라는 두 가지 축을 동시에 가동한다. 이 대표는 먼저 기존에 발굴한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실질적 성과 창출'을 강조했다. 스케일업파트너스의 운용 자산 규모는 약 1000억원으로 현재 60여개 기업에 투자했다.
혁신신약 분야에서는 뉴모달리티 기반의 유빅스테라퓨틱스를 비롯해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 마이크로바이오틱스 등이 2026년 상장을 준비 중이다.
또한 AI를 기반으로 한 신약개발, 혁신적 의료 예측·진단·치료 시스템 영역에서는 아이젠사이언스, 엑소퍼트, 인세리브로 등이 글로벌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출연연·대학의 초기 창업을 주도해 온 '기획 창업' 트랙에서도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대주로는 AI 헬스케어 분야의 딥슨바이오, 혁신신약 개발 기업 바이오미, 차세대 LNP 플랫폼을 개발하는 더다봄 등이 꼽힌다.
그는 "뇌 질환 예방, 치료 기술을 가진 딥슨바이오의 경우, 2025년도 특허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 혁신성을 인정 받았고 일본 요양원 중심의 보험 산업 진출과 국내의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활용해 2026년 비급여 시장에서 실질적인 매출(Cash Flow)을 만들어내는 모델을 입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차세대 LNP 공정 기술을 보유한 더다봄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도 확실한 기술 장벽을 구축한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026년 신규 투자는 철저히 '기획 창업(Company Building)' 방식으로 진행한다. 유망한 기술(Seeds)을 단순히 발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시스템을 갖춘 기업을 직접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기획 창업 시대를 준비하며 무엇보다 '전문성의 결합'을 강조했다.
그는 "연구자는 혁신 기술(Science)의 고도화에 집중하고, 자본 유치와 임상 전략 등 비즈니스 영역은 전문 경영인이 전담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초기부터 대규모 자금과 함께 경영 전문가를 매칭해, 연구자가 기술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스케일업파트너스식 '기획 창업'의 핵심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래를 대비해 이 앞단의 창업 생태계를 선도적으로 키워나가겠다"며, 스케일업파트너스가 업계의 생태계 조성자 역할을 자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