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허(許)씨 집안의 스포츠 사랑은 쉼표가 없다. 기업 광고 효과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스포츠협회장 직함을 갖거나, 한 두 개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흔해 빠진 관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씨 일가의 골프와 축구에 대한 열의는 스포츠광(狂)으로 알려진 여느 재계 총수 일가에 못지 않은 남다른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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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을 공동창업한 실질적인 GS그룹 창업주 고(故) 허만정 옹의 장남 고 허정구 전(前)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우리나라 스포츠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를 창설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아태골프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골프계의 대부’로 통했다. 대(代)를 이어 허 명예회장의 3남 허광수(67)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은 한때 골프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현재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나아가 허씨가(家)의 축구 열정은 유별나다고 까지 할 만 하다. 허 옹의 3남 고 허준구 전 LG건설(현 GS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현재 GS그룹을 이끌고 있는 허창수(65) 회장은 2004년 7월 LG에서 분가할 당시 프로축구단 운영에 강한 의지를 보여 지금의‘FC서울’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FC서울의 전신 ‘안양LG’시절인 1998년 이후 16년째 직접 구단주를 맡고 있다. FC서울이 K리그 5회,리그컵 2회,FA컵 1회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프로축구 명문 구단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허 회장의 스포츠 마케팅을 뛰어넘는 무한애정이 뒷받침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허씨 집안에는 또한 축구에 대한 열성에 관해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가 있다. 허 옹의 7남으로 허창수 회장의 삼촌인 허승표(67) 피플웍스 회장이다. 축구 선수 출신인 그는 보성고와 연세대 축구부에서 공격수로 뛰었고, 1969년 서울은행 축구팀 창단멤버로 활약했다. 서울은행에서 뛰던 1972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와 대한축구협회의 교류 프로젝트를 통해 영국에 진출해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구단 아스날(B팀)과 코벤트리 시티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 중 유럽 진출 1호다.
특히 허승표 회장은 현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인 정몽준(62) 새누리당 의원이 1993년 축구협회 수장(首長)에 오른 뒤로 20년간 비주류의 길을 걸으며 1997년, 2009년, 2013년 세 차례나 축구협회장 대권에 도전해 고배(苦杯)를 마시기도 했다. 그가 ‘축구 야당의 대부’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허 회장의 축구계의 이력이나 별칭으로는 그가 걸어온 길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가 재계에서는 드물게 축구 선수 출신의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이기 때문이다. 서울은행 축구팀을 마지막으로 1976년 축구선수에서 은퇴한 그는 1978년부터 GS의 방계기업인 승산에 몸담아 상무와 부사장을 지낸 뒤 1990년 12월 비디오 제작·수입·판매 업체 미디아트를 인수해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형제들과 달리 LG그룹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허씨 일가가 LG에서 독립한 뒤로도 본가 GS에는 발붙이지 않고 오롯이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허 회장과 직계가족들은 GS그룹 계열사 주식 역시 전혀 갖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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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회장은 2000년 6월에는 이동통신 장비 업체 인텍웨이브(2006년 1월 피플웍스로 상호변경)를 설립해 IT 분야로 사업범위를 넓혔다. 다음으로 공들인 영역이 광고였다. 2003년 1월 광고 프로모션 업체 모투스에스피를 차렸다. 2008년에는 광고대행 업체 실버블렛을 사들였다. 2009년 3월에 가서는 광고 계열사들의 이름에도 ‘피플웍스’를 붙여 각각 피플웍스프로모션, 피플웍스커뮤니케이션으로 간판을 교체하는 기업이미지통합(CI)을 완료함으로써 경영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창업한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 허 회장은 2세 승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물림을 위한 기반은 일찌감치 구축해 놓은 상태다. 피플웍스프로모션은 현재 피플웍스와 피플웍스커뮤니케이션 지분을 각각 90%, 80% 소유하고 있다. 정점에는 허 회장의 외아들 준수(36)씨가 자리잡고 있다.
허 회장은 조희숙(64)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 데, 준수씨는 현재 피플웍스프로모션의 최대주주로서 84%나 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어 딸 서정(37)씨가 11%를 가지고 있다. 준수씨가 피플웍스 계열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은 계열사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는 등 경영일선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준수씨의 가업 승계가 시간 문제라는 의미다. 현재 피플웍스 계열사에 대한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겨놓고 있다.
GS 허씨 가문에서 축구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며 값진 방계기업을 일궈낸 허승표 회장의 삶에는 그만큼 스토리가 있다. 아울러 허 회장이 축구와 경영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바탕에는 ‘데이콤’, ‘조카’, ‘사돈’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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