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현대·기아차의 이 같은 행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라인업 구축은 영원한 경쟁자인 도요타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있다.
◇ 준대형 하이브리드차 출시 속내는?
현대차와 기아차는 16일 잇따라 준대형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였다. 연비는 경차급으로 올리되 힘은 그대로 유지했다. 현대·기아차는 이 두 모델 모두에 동일한 엔진과 모터를 장착했다.
연비는 16㎞/ℓ다. 모닝(15.2~17.0㎞/ℓ), 스파크(11.5~16.8㎞/ℓ) 등 경차 수준의 연비다. 세타∥ 2.4 MPI 하이브리드 엔진은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하이브리드 전용 엔진이다. 최고출력 159마력, 최대토크 21.0kg.m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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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의 준대형 하이브리드 모델인 '그랜저 하이브리드'. |
엔진만 놓고 보면 쏘타나 2.0보다는 앞서지만 기존 그랜저보다는 못하다. 하지만 35kW 모터를 포함한 최고출력은 204마력으로 그랜저 2.4 모델보다 낫다. 여기에 각종 편의 사양들을 대거 장착했다. 현대·기아차가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이로써 준중형~준대형에 이르는 차급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완성하게 됐다. 특히 이들 하이브리드 모델이 모두 볼륨 모델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통해 친환경차 시장 확대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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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와 함께 기아차도 같은 날 K7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고 'K7 700h'로 명명했다. |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친환경차 시장을 단순히 라인업을 확충하는 의미로 봤다면 굳이 볼륨 모델에 하이브리드를 장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정체돼 있는 국내 친환경차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 '렉서스 ES300h' 겨냥한 이유
현대·기아차의 말처럼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K7 하이브리드는 국내 친환경차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내놓은 모델들이다.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하이브리드차의 대명사인 도요타를 잡겠다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복안이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K7 하이브리드의 경쟁 모델은 렉서스 ES300h다. ES300h는 올들어 지난 11월까지 국내에서 총 2449대가 판매됐다. 전년대비 259.1% 늘었다. 렉서스 전체 판매량의 약 51%다.
ES300h의 엔진 사양은 그랜저 하이브리드·K7 하이브리드와 거의 비슷하다. 최고출력 158마력, 최대토크 21.6kg.m이다. 전기 모터와 합산 출력은 203마력이다. 연비는 16.4㎞/ℓ다. 현대·기아차의 타깃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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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는 렉서스 ES300h와 비슷한 성능을 가졌음에도 가격은 훨씬 저렴한 준대형 하이브리드를 선보였다.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계산이다. 준대형 하이브리드 시장 선점과 전체 하이브리드 시장 저변 확대라는 두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수입 디젤 모델에 대항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을 중심으로 한 디젤 세단의 인기는 계속 상승 중이다. 하지만 디젤 세단에서 큰 재미를 못 본 현대·기아차는 이를 하이브리드로 상쇄한다는 계획이다.
그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하이브리드의 최강자인 도요타다. 따라서 국내 시장에서부터 준대형 하이브리드 모델로 '타도, 도요타'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려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생각인 셈이다.
◇ 현대·기아차의 선결과제는 '이미지'
문제는 현대·기아차의 이런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 과연 준대형 차급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것인가다. 미국 등 여타 시장에 비해 아직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덜 성숙한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국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올들어 지난 11월까지 2만1092대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19% 감소한 수치다. 아직 국내 소비자들에게 현대·기아차 브랜드의 하이브리드카는 생소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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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서스 ES300h. |
그동안 아반떼, 쏘나타, 포르테, K5 등을 통해 계속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였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현대·기아차가 도요타에 비해 친환경차 이미지를 선점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반면, 도요타와 렉서스는 같은 기간 총 4547대를 판매했다. 이는 수입차 전체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의 96.2%를 차지한다. 수입차 시장에서 '도요타=하이브리드'라는 공식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명확한 타깃을 가지고 준대형 하이브리드카를 내놨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며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도요타를 제치는 것보다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차' 이미지를 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