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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르네상스]①소리 없이 강하다

  • 2015.08.04(화) 13:48

상반기, 디젤(51.9%)이 가솔린 넘어서
현대차 승용모델 11개 중 6개가 디젤

디젤차 전성시대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디젤차는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치부돼 왔다. 승차감도 좋지 않고 소음도 많았다. 소비자들은 '디젤=트럭'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디젤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180도 바꿔놓았다. 디젤차는 이제 친환경적이면서 경제적이고 높은 효율을 지닌 차량으로 인식된다. 디젤차의 대명사였던 SUV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효자 모델이 됐다. 디젤 엔진의 인기는 가솔린 엔진의 고유 영역이었던 승용모델에까지 확대됐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디젤 차량의 인기 요인을 분석해 본다. [편집자]

 

 

 

#대기업 차장인 유 모씨는 최근 '신형 K5' 디젤 모델을 계약했다. 당초 그는 가솔린 차량을 염두에 뒀다. 유 차장은 평소 디젤은 SUV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친구의 디젤 승용차를 몰아보고 나서였다. 소음도 없고 언덕을 치고 올라가는 힘도 넉넉했다. "기름 값이 확 줄었어"라는 친구의 말은 그의 판단에 힘을 실어줬다.

 

자동차 업체들이 잇따라 디젤 모델을 내놓으면서 신차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디젤 차량이 친환경적이고 연비가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디젤 차량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디젤 차량이 크게 늘어난 데는 수입차의 역할이 컸다. 수입 디젤 승용차가 보급되면서 디젤 차량은 소음이 심하고 매연을 많이 뿜어낸다는 인식을 바꾼 것이다. 여기에 레저 붐이 불면서 소형 SUV의 인기가 올라간 것도 디젤 차량 전성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 "이젠 디젤이 대세..가솔린 앞질러"

그동안 디젤 엔진은 주로 트럭 등에 사용됐다. 많은 짐을 실어야 하는 만큼 힘이 좋은 디젤 엔진이 트럭에 제격이었다. 대신 매연이 심하고 소음이 컸다. 따라서 승용 모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생겼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디젤 승용차가 상용화돼 있었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디젤 엔진의 단점을 개선, 보완해 승용 모델에 장착했다. 가솔린 엔진 못지 않게 매연과 소음을 줄였다. 여기에 디젤 엔진 특유의 힘까지 가미되면서 디젤 승용차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디젤 승용차가 허용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그 전까지 정부는 디젤 승용차를 허용하지 않았다. 매연을 많이 배출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현대차는 정부에 지속적으로 디젤 승용차 허용을 주장했다. 이미 승용차용 디젤 엔진을 개발한 상태였다. 판매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는 1500만대를 돌파한 상태였다. 내수 진작이 필요했던 정부는 마침내 디젤 승용차 판매를 허용했다. 디젤 승용차 시장 개방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솔린 승용차 위주의 시장에 변화가 생기는 계기가 됐다. 본격적인 디젤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디젤 승용차는 초기에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대비 디젤 차량의 비율은 29.8%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 2005년 디젤 승용차 시장이 열리면서 36.7%로 증가했다. 지난 2010년 36.1%로 떨어졌지만 다시 반등해 작년에는 39.5%까지 올라갔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신규 등록 차량 89만8396대 중 51.9%가 디젤차였다. 상반기 판매 상위 10위권 중 디젤 차량은 6종이 포함됐다. 수입차들도 마찬가지다. 상반기 판매된 수입차의 68.4%가 디젤 차량이었다.  
 
◇ 수입차, 디젤 시대를 열다

사실 국내에서 디젤 승용차가 각광 받기 시작한 데에는 수입차 업체들의 공로가 크다. 지난 2005년 정부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 디젤 승용차 판매를 허용했을 당시 처음으로 디젤 승용차를 내놓은 곳도 푸조였다. 수입차 업체들은 이미 자국의 시장에서 검증 받은 모델들을 하나 둘씩 선보였다.

특히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디젤 엔진 기술은 탁월했다. 유럽 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커먼레일 기술을 적용한 엔진을 내놨다.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연료나 엔진오일을 분사하기 전에 커먼레일이라는 장치 안에 저장했다가 연소효율이 가장 높은 시점에 고압으로 분사한다.

따라서 고압 분사돼 분무상태가 된 연료는 연소효율이 뛰어나 연비가 높다.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도 크게 줄고 공회전 때의 소음과 진동도 기존 디젤 엔진에 비해 적다. 현재 유럽 자동차 시장의 절반 가량이 디젤 모델이다. 그만큼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디젤 기술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최근에는 국내 업체들도 유럽 업체에 못지 않는 디젤 엔진 기술을 갖췄지만 당시에는 기술 차이가 상당했다.
 

수입차 디젤 모델들이 인기를 끈 배경에는 고유가 덕도 있었다. 디젤 엔진에 사용되는 경유는 휘발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실제로 고유가 시기였던 지난 2010년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평균 1710.41원이었던 반면 경유 가격은 리터당 평균 1502.80원이었다. 여기에 디젤 모델은 가솔린 모델에 비해 연비가 높았다. 같은 양의 기름을 넣어도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했고 디젤 차량 판매량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작년 전체 수입차 판매량의 67.76%가 디젤 차량이다. 지난 2003년 수입차 판매량 중 디젤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2.21%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년 디젤 차량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지난 2012년에는 가솔린 모델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수입차 판매량 10대 중 7대가 디젤 차량일만큼 소비자들의 디젤 차량 선호도가 높다.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수입차 판매는 유럽 브랜드의 준중형과 중형 디젤 차량이 전체 판매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소비자들에게 유럽산 디젤 차량은 연비가 높고 소음이 적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업체들도 국내 출시 모델 선택시 디젤 모델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디젤 시장 놓칠 수 없다

뒤늦게 디젤의 인기를 확인한 국내 업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디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도 대부분의 승용 모델에 디젤 라인업을 추가해 출시한다.

현대차의 경우 전체 승용모델 11개 중 6개 모델에 디젤 라인업을 갖췄다. 기아차는 7개 승용 모델 중 3개 모델에 디젤 엔진을 달았다. 조만간 출시 예정인 준대형 세단 K7에도 디젤 모델이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은 SM5 노바, 한국GM은 말리부와 크루즈에 디젤 모델이 있다.
 
▲ 기아차는 '신형 K5'를 출시하면서 종전과 달리 처음부터 디젤 전용 모델을 내놨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디젤 모델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방증이다. '신형 K5' 디젤 모델의 가세로 중형 세단 모델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쌍용차를 제외한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은 모두 국내 중형차 시장에 디젤 세단을 출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게 됐다.

RV모델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 모두 RV모델에 디젤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RV모델은 그 특성상 디젤 모델이 주를 이룬다. 레저붐과 맞물리면서 RV모델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전체 내수 판매량의 22.3%가 RV모델이다. 기아차는 무려 40.4%에 달한다. RV모델의 인기는 곧 디젤 차량 판매 증가와 직결된다.

국내 업체들의 디젤 승용차 출시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그동안은 가솔린 모델을 선보인 이후에 같은 모델에 디젤 엔진을 탑재해 출시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신모델 출시 때부터 디젤 모델을 선보인다. 기아차의 '신형 K5'가 대표적이다. '신형 K5'는 디젤 모델이 가솔린 모델과 함께 출시됐다. 디젤 시장을 노리는 기아차의 전략적 선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국내 중형차 시장에 국내 모든 메이커들이 디젤 모델을 선보였다"며 "이는 그동안 RV에만 국한됐던 디젤 시장이 점점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이런 트렌드는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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