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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퍼스트무버]LG배터리①흑역사로 피운 꽃

  • 2021.10.12(화) 06:40

기술도, 기술자도 없는 상태에서 개발 매진
적자 내면서도 우직하게…구본무 회장 뚝심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산업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아이폰의 애플이 대표적입니다. 꼭 전에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로 창조하는 기업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후발주자였지만 기술과 전략으로 시장을 압도해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한국 기업 가운데도 꽤 있습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역경을 딛고 퍼스트 무버로 자리잡거나, 또 이를 향해 나아가는 'K-퍼스트무버' 기업 사례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배알못' LG화학, 배터리 사업 시작하던 날

세계 최초의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난 1996년, LG화학도 '복제'를 시도하고 있었다. 2차전지(충전 가능한 전지) 기술이었다. 럭키금속에 있던 2차전지 연구조직을 이전해 개발을 본격화한 때였다.

그해 4월 LG화학은 3년 뒤인 1999년까지 '리튬이온 2차전지'의 개발부터 양산까지 모든 것을 완료하겠다는 마스터 플랜도 전격 발표했다.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시험공장 건설도 착수했다.

하지만 당시 석유화학사업 중심이던 LG화학 내부에는 전지 전공 엔지니어가 단 1명도 없었다. 대책도 없이 신사업을 시작했다는 핀잔도 나왔다. LG화학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에 공부하러 간 사람이 얻어온 전극을 보면서 분석하는 수준이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앞선 기술력의 일본 기업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게 필수 과제였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LG화학을 대놓고 무시했다. 일본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시도했지만 기술 제휴는 물론 설비나 재료 지원도 거절됐다. 일본은 기술 유출을 국가적으로도 금지했다.

LG화학 연구진들은 우회를 택했다. 일본 배터리 제조업체가 아닌 장비 업체를 끈질기게 설득해 어떤 장비가 납품되는지 확인하면서 배터리를 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는 독립한 LG화학의 배터리 부문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기업을 따라잡는데 바빴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 회사의 배터리 개발 역사가 곧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역사라고 평가되는 위치로 거듭났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분야에서 국내 최초는 물론, 세계 최초 타이틀도 여럿 지니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CATL(중국명 寧德時代, 닝더스다이)을 제외하면 세계 1위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 동안 무슨일이 있었을까.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구본무 회장이 영국에 안 갔다면?

국내 대기업 역사에서는 '총수'의 역량과 관심이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친 사례가 적잖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도 그랬다. LG의 2차전지 사업은 약 30년 전인 1992년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부회장이었던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영국 출장이 계기라고 한다. 그는 현지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보고는 신사업 가능성에 꽂혔다.

구 회장은 귀국하면서 2차전지 샘플을 가져왔다. 계열사 럭키금속이 처음 연구에 착수했고, 뒤에는 LG화학이 사업을 이어갔다. 성과가 금방 나오진 않았다. 1997년 연구진들이 소형전지 시험 생산에 성공했지만, 대량 제작에 돌입할 만한 품질은 아니었다.

심지어 내부에선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수년간 이어진 투자에도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파로 사업 구조조정이 국내 경제계의 화두였던 때이기도 했다.

연구·개발은 연구진이 하고 영업도 직원들이 한다. 그러나 유망하기만 하고 돈 안 되는 사업을 우직하게 끌고 가려면 총수의 뜻이 결정적이다. 전설적인 말이 전해진다. 구본무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하고,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라"며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며 독려했다고 한다.

성과는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8년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에 성공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10년가량 연구·개발한 끝에 양산한 것을 3년(1996~1998년)으로 앞당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자이저, 듀라셀과 같은 유명 배터리 기업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2000년에는 중대형 배터리 연구와 북미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에 연구법인인 'LGCPI'(LG Chem Power Inc.)이 설립됐다. 2001년에는 2200mAh(미리암페어)급 노트북용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2005년에도 2600mAh급을 일본업체보다 한발 앞서 세계 최초로 양산하면서 기술력을 과시했다. 2005년 무렵 2차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구 회장은 독려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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