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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퍼스트무버]'3번의 위기' 돌파한 SK 분리막

  • 2021.10.26(화) 16:12

작년 기준 티어1 습식 분리막 세계 1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과감한 투자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SK이노베이션 자회사)가 세계적 LiBS(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 기업이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2004년 세계에서 3번째, 국내에선 처음으로 LiBS 생산기술을 개발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외국 기업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문전박대에 가까운 무시를 당하고, 경쟁사는 소송을 걸었다. 최대 고객사도 소송을 제기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직한 투자를 이어나간 끝에 현재는 '티어1' 습식 분리막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티어1은 테슬라, 폭스바겐, 르노닛산, 포드, 현대차·기아 등 선두권 전기차 기업들이 생산하는 차량에 공급되는 프리미엄 분리막 시장을 뜻한다.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을까.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세계 세번째로 시작한 '무명의' SK 분리막

SKIET는 2004년 12월 LiBS 생산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일본 아사히, 도레이에 이어 세번째 사례였다. 청주공장 1호기도 이듬해 1월 가동을 시작했다.

정유·화학 기업인 SK이노베이션에서 개발이 시작된 까닭에 기술 개발에 엄청난 장벽이 있진 않았다고 한다. LiBS의 원재료가 폴리에틸렌(Polyethylene, PE)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직접 뜯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거듭해 생산 기술을 쌓았다.

하지만 노력 끝에 만든 LiBS에 대한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개발에 성공한 직후 일본 전자 기업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담당자가 약속 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들어온 뒤 무시하는 듯한 질문 몇 개만 던지고 나가버린 것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했지만 이른바 '무명 기업'의 시작은 이렇게 초라했다. SK 연구진들은 "이 업체에는 반드시 우리 제품을 넣겠다"고 다짐했다.

기술 개발은 거듭됐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축차연신' 공정을 완성한 게 대표적 성과다. 이는 점도 높은 반죽 형태의 분리막 원료를 얇은 필름으로 펼치는 공법으로, 분리막 두께를 균일하고 정교하게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퍼스트 무버'가 아니었던 SK가 소수 과점 형태로 시장을 장악한 일본 기업들을 점차 꺾어 나가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질적 기반이 됐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세번의 위기

위기도 있었다. 하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투자 확대는 언감생심인 상황이었지만 SK그룹 차원의 과감한 투자 결정이 단행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 회사 기술혁신연구원에 방문했을 때 LiBS 담당 팀장의 증설 건의를 했고, 최 회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다. 공장 라인 두개 증설이 이때 추진됐다.

다른 하나는 소송전이다. 2006년 당시 분리막 분야 선두주자였던 일본 도레이가 서울중앙지법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특허 공방전이 2009년까지 진행된 끝에 대법원은 SK의 손을 들어줬다. 

충격적인 위기도 있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자 LG화학이 2011년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LG화학이 SK 분리막의 최대 고객사였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고객사' LG화학은 당시 거래 물량도 줄였다고 한다. 

다만 이런 배경으로 다른 공급처를 찾게 된 것은 오히려 공급망 다변화 측면에선 기회가 됐다. 

독립적 성장 모드로

이런 위기 속에서도 투자는 지속되고 있었다. 생산설비는 2010년 4,5호기를 추가했고, 2012년에는 전기차 약 19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6, 7호 라인으로 확대했다. 이때 일본 도레이와 미국 셀 가드를 추월해 세계 2위에 오르게 된다.

시간은 흘러 성장은 거듭됐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4월 SKIET를 물적분할한다. 사업 전망이 밝으니 회사를 더욱 효율적으로, 또한 더욱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한 결정이다. 지난 5월에는 코스피 시장에도 상장했다.

실제 SNE리서치에 따르면 SKIET는 지난해 '티어1'(Tier1) 습식 분리막 시장에서 점유율 26.5%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습식 분리막은 건식보다 제조 비용이 비싸나, 제품의 두께가 일정하고 품질·강도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분리막 시장은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맞물려 가속도를 밟는 전기차 시장 성장과 함께 공급 부족까지 예측된다.

이에 SKIET는 생산 거점도 해외로 확대중이다. 지난해 중국 창저우 공장 가동에 이어 이달에는 폴란드 공장을 준공하며 유럽 시장 파트너들과의 협력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의 성장성과 수익성은 물적분할 과정을 거친 까닭에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이른 단계다. 지난해 매출액은 4693억원 수준이었고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2940억원 수준이었다. SKIET에 따르면 작년 전기차용 습식 분리막 판매량은 2018년 대비 490% 성장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산업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아이폰의 애플이 대표적입니다. 꼭 전에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로 창조하는 기업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후발주자였지만 기술과 전략으로 시장을 압도해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한국 기업 가운데도 꽤 있습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역경을 딛고 퍼스트 무버로 자리잡거나, 또 이를 향해 나아가는 'K-퍼스트무버' 기업 사례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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