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KT의 미디어·콘텐츠 자회사 스튜디오지니에 1000억원을 베팅한 복심이 무엇일지 관심이다. 두 회사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방송 등 콘텐츠를 송출하는 채널 사업을 전개하는 미디어 경쟁사다.
표면상으로 CJ ENM은 스튜디오지니가 확보하고 있는 IP(지식재산권)에, 스튜디오지니는 CJ ENM의 파급력 높은 채널에 관심을 두고 이번 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SM엔터테인먼트 인수에 차질을 빚은 CJ ENM이 음악 사업 강화를 위해 지니뮤직을 낙점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CJ ENM은 KT 스튜디오지니의 보통주 1000억원어치를 오는 6월까지 취득하기로 했다. 약 10% 수준의 지분을 취득할 것으로 보인다. 지분 취득을 마치면 CJ ENM이 스튜디오지니의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스튜디오지니는 KT의 미디어·콘텐츠 자회사다. KT가 보유하고 있던 콘텐츠 제작·투자·유통 사업체들을 총괄 경영하는 곳으로 지난해 1월 출범했다. KT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장부가액은 작년 9월 말 기준 2207억원 수준이다.
엄밀히 따지면 스튜디오지니와 CJ ENM은 경쟁관계다. CJ ENM은 tvN, 엠넷 등 각종 방송 채널을 보유하고 있고 자회사 티빙을 통해 OTT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스튜디오지니는 위성방송 자회사인 스카이라이프TV의 2대 주주이며 OTT 시즌(Seezn) 운영사인 KT 시즌도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사업영역 중 채널 부분이 중복되는 셈이다.
CJ ENM은 스튜디오지니가 보유한 채널보다 IP에 중점을 두고 투자를 단행했단 입장이다. 스튜디오지니는 내년까지 4000억원을 투자해 오리지널콘텐츠 라인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스튜디오지니의 자회사 스토리위즈와 밀리의서재가 소유하고 있는 웹툰·웹소설, 도서 콘텐츠 원천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단 계획이다. CJ ENM도 이들의 IP를 물색, 공동 제작에 나선다.
업계에서는 CJ ENM이 IP 확보뿐만 아니라 지니뮤직과의 협력에 무게를 뒀다고 보고 있다. 음악 플랫폼인 지니뮤직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멜론의 경쟁 채널이다. 스튜디오지니가 보유한 계열사 중 가장 덩치가 크다. CJ ENM은 지난해부터 지니뮤직과 오디오 예능 등을 공동 제작해왔으며 자사가 보유한 음원 IP를 지니뮤직을 통해 유통해왔다.
시기적으로 이번 투자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CJ ENM은 음악 사업부문의 몸집을 불리고자 지난해부터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추진해왔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8.7%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이 계획은 사실상 좌초된 것으로 알려졌다.
KT와의 접점을 넓힐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다. 올레tv 등 채널을 장기간 운영해온 KT는 콘텐츠의 흥행 여부를 10등급으로 세분해 예측할 수 있는 빅데이터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양사는 실감미디어 사업을 위한 공동 펀드도 조성할 예정이다. XR(확장현실) 등 실감미디어 기술은 KT의 경쟁사 LG유플러스가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다.
스튜디오지니 측도 CJ ENM과 손을 잡는 데 여러 요소를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계약으로 스튜디오지니는 자체 채널들에서 독점적으로 방영해야 할 영상 콘텐츠를 CJ ENM 채널과 공유해야 한다. 채널 경쟁력이 콘텐츠 독점에서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의아한 지점이다. 넷플릭스 등 OTT는 오리지널콘텐츠를 독점 공급해 가입자 유치 및 락인(lock-in)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IP 유통을 위해선 tvN과 OCN 등 CJ ENM이 보유한 막강한 채널이 필요하단 결론을 내렸다. 스카이라이프와 시즌 만으론 IP 확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시즌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뿐만 아니라 티빙, 웨이브 등 토종 OTT 대비 유료가입자 수가 적다.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스튜디오지니는 자체 채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한편 CJ ENM은 조만간 물적분할 실행 여부에 대한 답도 내놓을 예정이다. CJ ENM은 지난해 말 엔데버콘텐츠 인수를 발표하면서 예능·드라마 등 콘텐츠의 제작 부서를 한 데 모아 독립법인을 출범하겠단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월트디즈니처럼 멀티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이 계획은 모회사의 주가 할인을 우려한 주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스튜디오지니와 CJ ENM의 협약은 올해들어 급박하게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갖고 있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니즈가 상호 일치하면서 빠르게 논의가 진척된 것으로 안다"며 "음악과 OTT 시장 판도에 영향을 줄 만한 협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