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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vs 조선' 후판값 줄다리기 승자는…

  • 2022.04.20(수) 16:58

車 강판과 달리 조선 후판 협상 난항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가 올 상반기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을 두고 줄다리기 협상이 한창이다. 자동차 업계의 강판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한 것과는 달리 후판 협상은 난항을 겪는 분위기다. 자동차용 강판 가격은 올 상반기 톤(t)당 13만~15만원 선에서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 업계는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만큼 후판 가격을 최소 10%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선업계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최소폭 인상을 요구 중이다.

만약 철강 업계의 가격 인상이 반영될 경우, 조선업계의 향후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조선업계는 최근 수주가 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내실없는 호황'이 될까 우려 중이다.   

조선 후판 또 오르면… 실적 악화 불가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업계에 따르면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는 상·하반기 연 2회 후판 가격을 협상한다. 상반기 협상은 통상 3월쯤 마무리되며 협상 이전에 거래했던 후판은 소급 적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은 3월 말쯤 끝나는데 올해는 유난히 (협상이) 길어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철강 업계는 자동차 업계와도 강판 가격을 협상 중이다.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한 조선 업계와는 달리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단 설명이다. 작년 차량용 강판은 톤당 120만원 안팎 수준으로 업계에선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고려해 톤당 130만~140만원대 선에서 강판 협상을 마무리할 것으로 추정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와 얼마에 협상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라면서도 "최근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랐고 이에 대한 강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철강 업계는 조선 업계와도 '후판가를 얼마나 인상할 것이냐'를 두고 줄다리기 협상 중이다. 현재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에 조선용 후판을 공급하는 국내 철강사는 포스코, 현대제철 등이다. 

현재 이들의 후판 가격 협상 과정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아니다. 다만 업계의 얘기를 종합하면 철강 업계는 후판가를 기존 가격 대비 최소 10% 인상을, 조선 업계는 2~5%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조선해양 2021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후판 가격은 톤당 112만원으로 전년대비 68.1% 상승했다. 만약 철강업계의 요구가 반영될 경우, 올 상반기 후판 가격은 120만원 중반대를 형성하게 된다.

만약 철강 업계의 요구대로 후판 가격이 정해지면 향후 조선 업계의 실적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 특성상 현재 수주 성적은 2~3년 후 실적으로 반영된다. 조선업계는 초기 선수금을 적게 받고 선박 후반기나 인도 시점에 대금을 몰아서 받는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으로 계약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조선 업황에 대해 전년보다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며 "선가가 여전히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 요인이지만 후판 가격도 상승하고 있어 실적 악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위·아래 압력에 놓여"

조선업계 입장에선 후판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후판은 조선 원가의 20~25%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선박을 수주 한 이후 설계-건조-인도까지 약 2~3년 기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후판 가격이 4~6번은 변동되는 셈이다. 후판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성은 개선되지만 반대인 경우엔 조선사가 남기는 이윤은 줄어든다. 지난 2년은 후판 가격이 상승한 경우다.

후판가가 올랐다고 선주들에게 그 인상분을 전가할 수도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계약마다 다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가격은 선주가 발주를 넣는 초기 시점에 이뤄진다"며 "자동차 업계의 경우 강판 가격이 오르면 차 가격을 인상해 수익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지만 조선사는 선주들에게 이 인상분을 전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후판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조선사들이 위(선주)·아래(철강사)로부터 압력을 받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후판 가격이 크게 오르면 조선사들은 공사손실충당금을 쌓는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회계상 선(先)반영한 단 얘기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한국조선해양은 8960억원, 대우조선해양 8300억원, 삼성중공업 372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반영했다.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공사손실충당금을 쌓았기 때문에 당장 충당금을 쌓을 가능성은 낮다"며 "현재 조선업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다간 내실 없는 호황이 될까 걱정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업 특성상 현재 수주는 향후 2~3년 실적에 반영되는데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고통 함께 감내해 와"

/사진=포스코 제공

철강 업계는 원자재 가격이 인상된 만큼 후판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올 1분기 평균 철광석 가격은 톤당 140.8달러로 전분기대비 23.7% 상승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철강업도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고심이 많다"며 "무리하게 가격이 올리자는 것이 아닌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만 후판가에 반영하자는 게 철강 업계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제는 더이상 조선 업계 상황만을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선업이 한창 어려웠던 2010년 초·중반 당시 고통을 분담했다는 게 철강 업계 입장이다. 글로벌 물동량 증가로 선박 수주가 살아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철강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이 힘들었을 당시 철강업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후판가를 시장가보다 낮춰 공급하면서 고통을 같이 감내해왔다"며 "조선업도 이제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철강업계)도 이제 제값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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