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길었던 '반도체 한파' 끝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라 메모리 업황이 살아나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적자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전사 실적은 전년 동기, 전 분기 대비 크게 개선됐다. 올 초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4' 시리즈 출시 효과에 힘입어 스마트폰 사업도 '캐시카우' 역할을 지속했다.
영업이익 10배 '껑충'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71조9200억원, 영업이익 6조6100억원을 기록했다고 30일 밝혔다.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6조5670억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전년 동기(6402억원)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뛰었다.
매출의 경우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4 판매 호조 및 메모리 시황 개선에 따른 판가 상승 덕에 전년 동기 대비 12.8% 증가했다. 삼성전자 매출이 70조원대를 회복한 것은 지난 2022년 4분기(70조4646억원) 이후 처음이다.
이번 호실적은 반도체 사업의 흑자 전환이 주효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은 올 1분기 매출 23조1400억원, 영업이익 1조9100억원을 기록했다. 업계에서 기대했던 '영업이익 2조원'에는 소폭 미치치 못했지만, 5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DS부문은 지난 2022년 4분기 2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뒤 지난해 4개 분기 내내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DS 부문의 영업손실액은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원 △3분기 3조7500억원 △4분기 2조1800억원으로 연간 적자 규모만 14조8700억원에 달했다.
업황 회복세에 접어든 메모리 사업이 흑자로 돌아서며 DS부문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해 4월 D램이 적자에서 벗어난 데 이어, 올 1분기는 고용량 SSD(데이터저장장치) 수요 강세로 낸드플래시까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날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생성형AI로 촉진된 수요를 기반으로 고부가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과 서버 SSD 비중을 늘리며 비트 출하량 확대보다는 ASP 개선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 주력했고, 이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의 질적 성장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1분기 D램 출하량은 10% 중반 감소했지만, ASP(평균판매가격)는 20% 수준에 육박했다. 낸드 역시 출하량은 한 자릿수 초반 감소를 기록했지만, ASP는 30% 초반으로 시장 기대를 상회했다.
메모리 흑자 전환에는 재고자산평가손실 충당금 환입과 환율 영향도 있었다. 재고자산평가손실은 기업의 제품·원재료 등 재고자산의 취득원가가 현재 시가보다 높을 때 예상되는 손실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김 부사장은 "ASP 상승 등에 따른 재고평가손 환입 영향으로 흑자 폭이 일부 추가 개선된 부분도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환영향 관련해서는 "원화가 주요 통화 대비 전반적인 약세로 전 분기 대비 전사 영업이익에 약 3000억원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다만 메모리 외 다른 반도체 사업은 실적 개선 속도가 더뎠다. 시스템 LSI의 경우 신제품용 SoC(시스템온칩), 센서 등 부품 공급은 증가했으나 패널 수요 둔화에 따라 DDI(디스플레이구동칩) 판매 감소로 실적 개선은 예상 대비 정체됐다.
파운드리는 주요 고객사 재고 조정이 지속돼 매출 개선이 지연됐다. 다만 효율적 팹 운영을 통해 적자 폭은 소폭 축소됐다. 4나노 공정 수율을 안정화하고 주요 고객사 중심으로 제품 생산을 크게 확대한 결과다. 선단(첨단)공정의 경쟁력이 높아지며 수주실적도 역대 1분기 최대치를 달성했다.
Z세대 사로잡은 '갤S24'
올 1분기 사업부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낸 것은 스마트폰 사업을 맡은 MX(디바이스경험)부문이다. MX부문은 매출 33조5300억원, 영업이익은 3조5100억원을 기록했다. 스마트폰 시장은 역성장했지만, 올 초 출시한 갤럭시S24 시리즈의 판매 호조로 전 분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3.9%, 6.4%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10.9% 감소하며 수익성은 하락했다.
이날 다니엘 아라우조 상무는 "차별화된 AI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S24는 긍정적인 소비자 반응을 얻으며 수량·매출 모두 전작 대비 두 자릿수 성장했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갤럭시S24 흥행 요소를 '갤럭시 AI'로 꼽으며, 이러한 AI 기능이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의미 있게 평가하고 있다.
아라우조 상무는 "전작 대비 전 연령대에서 판매량이 증가했지만 Z세대에서는 그 증가율이 전체 평균보다 더 높았고, AI 기능 사용률도 평균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SDC, 경쟁 심화로 실적 '뚝'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을 제외한 사업 부문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 조 단위 영업이익으로 반도체 사업의 적자를 메웠던 삼성디스플레이(SDC)는 전 분기·전년 동기 대비 실적이 하락했다.
1분기 삼성디스플레이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5% 감소한 5조3900억원, 영업이익은 56.4% 줄어든 3400억원이었다. 갤럭시 스마트폰 출시에 따른 가동률 개선에도 판매 경쟁이 심화된 탓이다. 대형(TV)의 경우 비수기 진입으로 시장 수요가 약화됐지만, QD-OLED(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 모니터 신제품 도입 및 고객 기반 강화로 적자 폭이 줄었다.
비수기에 진입한 VD(영상디스플레이)의 경우 전년 대비 1.8% 감소한 13조4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5300억원으로 전년 동기(1900억원) 대비 약 2.8배 증가했다. TV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전략 제품 중심 판매에 주력하고, 생활가전에는 재료비 등 원가 구조를 개선해 수익성을 제고했다.
하만도 계절적 비수기 진입에 따른 소비자 오디오 판매 둔화로 실적이 소폭 하락해 매출 3조2000억원, 영업이익 2400억원을 기록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1분기에도 미래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와 시설 투자를 지속했다. 1분기 연구개발비는 7조8200억원으로 분기 최대 수준이었다. 시설투자는 11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00억원 늘어났다.
부문별로는 반도체 9조7000억원, 디스플레이 1조1000억원이었다. 메모리의 경우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R&D(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고 특히 HBM·DDR5 등 첨단 제품 수요 대응을 위한 설비 및 후공정 투자에 집중했다.
파운드리는 중장기 수요에 기반한 인프라 준비 및 첨단 R&D를 중심으로 투자를 지속했다. 다만 설비 투자의 경우 시황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디스플레이는 IT OLED 및 플렉시블 제품 대응 중심으로 투자가 집행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도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설투자 및 R&D 투자를 꾸준히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