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리 조선소를 통해 북미 시장을 공략할 것이며, 상선·함정·MRO 3개 사업을 모두 진행할 예정입니다."
최근 한화오션이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는 이유에 대해 밝힌 내용입니다. 한화그룹의 미국 조선소 인수는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미국 조선업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필리 조선소는 미국 상선의 50% 이상을 공급하고 군 등 정부 선박 건조 실적을 보유한 것은 물론 해군 수송함의 수리∙개조 사업도 핵심 사업 영역 중 하나라고 한화 측은 설명했습니다. 세계 최대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도 부여했죠.
하지만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요. 미국의 선박 건조 능력과 미국 경제 상황 등을 따져볼 때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생각보다 더 작은 조선소…인수 시점에 대한 아쉬움도
2일 미 해군 정보국(ONI)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상선의 1% 미만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미국의 233배에 달하는 선박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한화가 이번에 인수한 필리 조선소는 연평균 1.2척 정도 건조 가능하며, 주력 선종으로는 중형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선), 3000TEU급 소형 컨테이너선, 관공선(병원선 등)이 있습니다. 함정은 애초에 만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인데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총 31척을 만든 게 전부입니다. 보유 시설도 도크 2기, 660톤 골리앗 크레인 1기 등이 전부인 소형 조선소입니다.
필리 조선소의 인력을 살펴보면 총 인원은 500여 명으로 필리 조선소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500명이라는 인원이 결코 작은 수치는 아니지만, 국내 대형 조선소 한곳에서 근무하는 총 인력이 2만~3만 명인 것에 비하면 초라해 보입니다.
미국 전체 조선소들이 건조하는 연평균 선박 건조 수량은 10척 안팎에 불과합니다. 전 세계 상선 4만4000여 척 가운데 미국 선적은 200척도 되지 않는데요. 이에 따라 해외 교역에서 미국 선적 상선이 담당하는 물동량은 전체의 1% 미만입니다.
이에 더해 미국 조선사들은 한국, 중국, 일본 대비 선박 건조 비용은 2~3배 비싸고, 납기는 2~3배 길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예를 들어 이지스함 같은 경우 한국에선 1조2000억원의 비용이 투입되는 반면 미국은 같은 사양을 건조하는데 3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인수 시점에 대한 물음표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경기가 어렵다 보니 현재 미국 기업들도 필수 자리를 남겨두고 인력을 감축하는 모양새입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업들이 고금리 상황에서 해고 대신 구인하지 못한 일자리를 없애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현상) 완화 흐름은 기업들의 이러한 현상이 만들어낸 지표"라고 밝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지만 미국 시장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국은 3%대의 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으며, 고용 시장에서 실업률은 2022년 1월 이후 처음으로 4%까지 올랐습니다. 미국 경제가 어려운 만큼 한화가 인수에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경제 상황이 어려운 시기에 지분 인수를 단행한 한화에 대해 "유상증자 등을 이용해 무리한 지분 인수를 하게 되면, 인수 회사의 재무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현격히 높아진다"며 "투자에 확실한 이점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미국 군함 건조 능력의 한계
미국은 군함 건조 능력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 전략 국제문제 연구소(CSIS)는 지난 6월 5일 공개한 '초국가적 위협 프로젝트'에서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해군을 증강하는 가운데 미국의 해군력은 약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CSIS에 따르면 중국 해군이 운용 중인 군함의 70%가 2010년 이후에 진수된 것인 반면 미국 해군은 운용 중인 군함의 25%가 2010년 이후에 진수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총 전함(군수 지원함을 제외한 군함) 수도 중국이 234척인데 반해 미국은 219척으로 숫자상으로는 중국에 뒤처지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또 지난 10년간 중국이 진수한 구축함은 23척인데 비해 미국은 11척에 불과하며, 순양함의 경우 중국은 2017년 이후 8척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단 한 척도 진수하지 않았습니다.
군사 전문가는 "미국이 질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을 월등히 앞서는 상황이나, 양적으로 계속 뒤처지다 보면 실질적으로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와 중동 지역 관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에는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상실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도 있습니다. 당시 미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 건조 사업자로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가 선정됐기 때문인데요.
입찰에는 미국의 록히드마틴, 제너럴 다이내믹스, 헌팅턴 잉걸스와 호주 오스탈의 미국법인,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등 총 5곳이 참가했지만, 미 해군이 자국 업체 대신 이탈리아 핀칸티에리(핀칸티에리는 미국 위스콘신에서 마리네트 마린 조선소를 소유하고 있어 존스법에 저촉되지는 않음) 호위함을 채택한 것입니다. 외국 기업에 함정 건조를 맡겨야 할 만큼 미국 조선소의 군함 건조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저하되고 있습니다.
한화의 전략, 미 정책 방향과 일맥상통할까?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등 우방국들의 직접 투자 유치 및 낙후된 조선소 현대화 등을 통해 미국 내 조선소 경쟁력의 회복을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오션이 1억 달러(한화 1382억원)를 들여 지분을 인수한 날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은 "한화의 필리 조선소 인수는 우리의 새로운 '해양 치국'(Maritime Statecraft)의 판도를 뒤집는 중요한 사건(game changing milestone)"이라며 "그들(한화)이 미국 조선업의 경쟁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 알기에, 미국에 진출하는 첫 한국 조선 업체인 한화를 환영할 수 있어 너무 흥분된다. 한화가 마지막 한국 조선 업체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인수는 미 해군과 250년 관계를 맺어온 필라델피아시에 고임금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다만 여기서 문제는 고임금을 한화오션이 감당할 수 있는지입니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총 수주금액인 35억2000만 달러(한화 4조 8653억원)을 뛰어넘는 53억3000만 달러(7조3665억원)의 수주를 올렸음에도, 공정에 따라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금액이 모두 필리 조선소 정상화에 투입될 우려가 있습니다.
아울러 수주 금액의 대부분이 진수와 딜리버리 단계에서 인식되는 조선업의 특성상 그전까지 필리 조선소의 역량을 어떠한 방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한화오션 자체 자금으로 가능할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한 리스크가 있습니다.
통상 조선소는 수주 후 4단계(계약금->커팅(후판 절삭) 시->진수(론칭)->딜리버리)에 따라 수익이 창출되며, 수주 금액의 대부분은 진수 또는 딜리버리 시점에 수익으로 인식됩니다.
또 한화시스템이 지분의 60%를 들고 있는 만큼 지분의 40%만 보유하고 있는 한화오션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업계 다수의 의견인데요. 한화오션 옥포조선소가 이제야 정상화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상황에서 한화오션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의 경우 생산 시스템 자체를 1990년대 후반대에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한화오션의 자금 투입이 양분화되면 한화오션에게도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