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8년만에 구체적인 원유 감산에 합의하며 유가가 급등했다. 그간 유가 하락이 반복적으로 증시 발목을 잡아온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호재다. 다만 한 달 전부터 감산 기대감이 선반영된데다 원유 수급을 둘러싼 큰 그림을 감안할 때 유가가 크게 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나 실제 OPEC의 감산 이행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증시도 비교적 차분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 유가, 50달러대 안착 기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OPEC은 일평균 산유량은 3250만 배럴로 감축하는데 합의했다.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OPEC 회원국들은 일일 120만배럴의 감산에 나서게 된다. 여기에는 나이지리아와 리비아는 제외됐고 이란은 일일 90만배럴의 증산이 허용됐다.
비OPEC 회원국들도 총 60만배럴 감산에 참여했다. 러시아는 30만배럴 감산에 동의한 상태로 오는 9일 이를 최종 확정하는 OPEC과 비OPEC 국가간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처럼 8년만에 OPEC의 감산 합의가 나온 것은 더이상 증산으로 가격 추세를 바꾸지 못하는 현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 감산의 키를 쥐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증산을 허용하면서 만창일치를 이끌어내 합의의 의미를 키우고 있다.
이번 원유 감산으로 유가는 50달러대에 안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감산 소식에 유가는 장중 8%나 급등했고, 배럴당 50달러 선까지 빠르게 치솟았다. 서부텍사스유(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49달러와 51달러대로 올라섰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초과 공급규모가 80만배럴이고, 합의대로 실제 감산이 이뤄지면서 일평균 180만배럴이 줄어들 경우 내년에는 원유시장의 초과 공급 상태가 균형을 넘어 초과수요 상태로 돌아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 美 수급 감안시 60달러 돌파는 '무리'
하지만 유가가 오름폭을 곧바로 확대해 60달러대를 돌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감산 조치가 유가 하락을 막을 순 있지만 현재의 원유시장 수급 구조상 유가 레벨을 크게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분석에서다.
OPEC이 전격적인 감산에 나서긴 했지만 원유 수급의 또다른 축을 형성하는 미국과 미국 셰일업체들의 경우 원유 생산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자국의 에너지 독립을 주장하며 원유 생산 증가를 지지하고 있는 만큼 유가 상승세를 제한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증권은 "셰일오일이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5~50달러를 크게 넘어서 60달러에 가까워질 경우 생산량이 단기간에 증가할 수 있다"며 "OPEC의 생산량 감축에도 내년 상반기 중 60달러 시도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유가가 계속 오르기보다는 60달러 선에서는 추가 상승이 멈칫할 전망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단기적으로는 55달러까지 빠르게 오를 수 있겠지만 다시 45~60달러 선에서 움직일 전망"이라며 "이번 감축이 과거 유가로의 추세 상승을 이끌기엔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 실제 감산이행 여부 등 지켜봐야
OPEC의 실제 감산합의 이행 여부는 물론 향후 OPEC의 감산 행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도 확인해야 한다.
과거에도 OPEC은 수차례 감산을 단행했지만 회원국별로 감산 합의 준수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장 오는 9일 열리는 비OPEC 회원국과의 회담에서 러시아의 감산 동참이 실제로 확정될지도 봐야한다
한국투자증권은 "늘 그랬듯 합의 또한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OPEC 회원국들이 감산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벌금을 부과하거나 합의내용을 강제할 수 없다"며 "게다가 이번 감산 합의로 유가가 상승할수록 OPEC 회원국들이 감산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유인은 더욱 높아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합의는 6개월짜리에 불과해 내년 5월말 다시 감산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은 사우디가 감산량을 늘리고 이란의 증산을 허용했지만 유효기간이 짧다보니 합의가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서태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WTI 유가가 배럴당 55달러 이상으로 상승할 경우 다시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유가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