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가 구조적으로 답답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 대외 여건이 개선되고 경기 순환적 측면에서 국내 증시가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코스피 지수 최상단으로는 2400포인트를 예상합니다"
증시가 답답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 훈풍이 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보통신(IT) 섹터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지고 설비투자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3일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사에서 만난 윤창용 투자전략부 연구위원은 내년 상반기 국내 증시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있고 경기 순환적 측면에서도 상승 국면에 진입할 때가 됐다는 진단이다.
윤 연구위원은 현재 신한금투에서 거시경제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서강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까지 수료했다. 서울신용평가 한국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을 거쳤다. 최근 8년간 각종 매체에서 매년 거시경제 애널리스트 1위 평가를 받았다.
신한금융투자는 오는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내년 국내외 경제와 증시를 분석하는 '신한 금융시장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내년 시장의 전제 흐름은 '상고하저'의 모습을 띌 전망이다. 경제 펀더멘털 회복과 대외적 불확실성 해소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 증시는 비교적 온건한 분위기가 기대되고 있다.
윤 위원은 "국내 경제 성장률이 세계 평균보다 낮고 중화학 산업은 중국의 국산화 전략, 미국의 셰일혁명 여파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건 맞다"면서도 "대외 여건이 개선되고 경기 순환적 측면에서 반등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놓은 내년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2.3%다. 여타 기관 예상치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소재·부품·장비 분야 설비투자가 증가하고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규모가 정부 안대로 올해 대비 대폭 증가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 미만에 머물러 있고 코스피 기준 배당수익률이 2% 중반으로 올라온 것을 감안하면 밸류에이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밸류에이션이 9~10배 수준이었다면 11~12배 정도로 확대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 주기가 짧아진 것도 증시를 끌어올릴 재료로 지목된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경기 주기가 1년 반~2년 사이로 줄어든 점을 감안한다면 최근 국내 증시는 빠질 만큼 빠졌다는 게 윤 위원의 진단이다.
"기업 이익이 올해는 100조가 채 안 될 것 같은데 내년에는 120조~130조원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이익이 떨어진 건 반도체 때문인데요. 폴더블폰 출시와 5G 상용화 등 IT 업종을 중심으로 개선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윤 위원이 설정한 내년 코스피 지수 상단은 2400포인트다. 굳이 따지자면 상고하저의 구조가 예상된다. 다만 이 같은 전망은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 국면에 진입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협상이 어그러지면 상반기 상승을 자신할 수 없다.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는 이유는 분쟁으로 이득을 보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승자 없이 패자만 있는 데다 최근 양국의 정치 경제 여건도 갈등에 따르는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국은 간접금융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직접금융 시장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주로 은행 대출을 일으켜 기업에 자금을 대 파이를 확대했다는 말이다. 관세가 오르면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률이 떨어져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기업 활동 위축은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은행 대출자산이 위험자산으로 편입될 개연성을 제공한다. 그러면 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고 중국 정부로서는 외환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 국채를 팔아야 할 가능성도 상정 가능하다.
미국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제조업 부흥을 내걸고 있다. 문제는 국가부채가 상당한 까닭에 민간 재원을 끌어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관세가 올라가면 그만큼 재원 조달 한계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윤 위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탄핵 이슈로 무역분쟁을 끌고 가기 부담스럽고 중국 정부도 홍콩 정경불안 문제와 민생경제 양극화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양국 간 1차 합의가 이뤄진다면 경기 확장 기대심리가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주요 이벤트로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꼽았다. 민주당 후보가 이긴다면 시장은 이를 불확실성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대개 독과점 이슈와 함께 증세 이슈 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어 정책 전환이 이뤄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봤다. 한국은행의 추가적 금리 인하 조치는 나오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시장에 풀린 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자산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고 금리 인하는 금융회사 자본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윤 위원은 "내년 채권 금리는 대체로 박스권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기준금리를 낮추는 데 따르는 실익이 그렇게 크지는 않기 때문에 내년 경기 부양 수단은 통화 정책보다는 제조업 지원 정책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도 지적했다.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 수익을 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 행태가 나오게 되는데, 이 경우 상대적으로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위험성 높은 자산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는 "시장금리가 낮다 보니 채권에 돈이 몰리고 있고 수익 창출을 위해 중위험 중수익 상품을 찾게 된다"며 "미국의 레버리지론, 중국의 그림자금융, 한국의 사모펀드 이슈 등이 사실상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생산성 자산으로 돈이 흘러가게 되는 점도 경계했다. 윤 위원은 "성장 없이 돈이 풀리니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성 자산에 투자하게 되는 행태가 나타나게 된다"며 "이 경우 금융 쪽에서는 신용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