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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겨자먹기' IPO 강행하는 이유는

  • 2022.09.22(목) 06:12

쏘카·WCP, 몸값 반토막에도 상장 추진
시장 악화에 자금조달 빨간불
컬리도 자금사정 악화에 IPO 강행할 듯

증시 한파 속 기업공개(IPO)에 호기롭게 도전했던 기업들이 수요예측 단계에서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고 있다. 그러나 상반기와는 다르게 철회 대신 몸값을 대폭 낮춰 IPO를 진행하려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대표적으로 하반기 대어인 쏘카와 WCP가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 대비 40%나 낮춘 수준으로 확정했다.

이들이 상장을 강행하는 이유는 금리인상 기조로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 자금 조달 환경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지속적인 영업활동을 위한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IPO가 사실상 유일한 조달 창구로 남으면서 재정이 열악해진 기업들은 공모가 할인을 불사하고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몸값 절반 깎는 대어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차전지 분리막 업체인 WCP는 지난 15~16일 공모가를 6만원으로 확정했다. 주관사와 회사가 제시한 희망밴드(8만~10만원) 하단 대비 25%, 상단 대비로는 40%나 낮춘 가격이다. 공모물량도 900만주에서 720만주로 줄였다. 이에 따라 공모금액은 최대 9000억원에서 4320억원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이처럼 공모 규모가 대폭 줄어든 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참패한 탓이다. 지난 15~16일 진행된 WCP 수요예측의 경쟁률은 33.28대 1에 그쳤다. 참여 기관 가운데 희망밴드 하단 미만 가격을 써낸 곳이 87.5%에 달했다. 반면, 의무보유 확약을 건 기관은 5.80%에 불과했다. 

지난달 코스피시장에 상장한 쏘카 역시 수요예측에서 14.4대 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하며 공모가를 깎는 굴욕을 맛봤다. 당초 제시한 희망밴드(3만4000~4만5000원) 상단 대비 38% 낮췄다. 공모주 수량도 455만주에서 364만주로 쪼그라들면서 공모액 규모는 2047억원에서 1019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는 올 상반기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현대오일뱅크 등 대기업 계열사들과의 행보와는 상반된다. 이들은 원하던 몸값을 책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IPO 레이스를 중도 포기했다.  

말라붙은 돈줄...유일한 창구는 IPO? 

그렇다면 쏘카와 WCP처럼 몸값을 깎으면서까지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참가자들은 단연 '사업자금 확보'를 주된 배경으로 꼽았다.  

그간 IPO를 중도 포기한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 중에는 상장 목적이 지배구조 개편과 대주주 엑시트 등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말 현대엔지니어링은 증권신고서 제출할 당시 2021년 3분기 말 재무제표를 제시했는데, 현금성 자산에서 차입금을 제외한 순현금은 1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사업 자금 확보보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해 IPO를 추진한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SK쉴더스와 원스토어의 경우엔 구주매출이 상당했다는 점을 보아 기존 주주 엑시트가 주된 목적이었다고 분석된다. SK쉴더스의 공모물량 중 구주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6.7%인데, 이 물량은 2대주주인 블루시큐리티인베스트먼트의 지분이다.

블루시큐리티인베스트먼트는 2018년 SK텔레콤이 SK쉴더스의 전신인 ADT캡스를 인수할 때 투자를 집행했다. 원스토어의 구주매출 비중은 29.1%로 SKS-키움파이오니어의 보유분의 절반에 해당한다. SKS-키움파이오니어는 SKS프라이빗웨쿼티, 키움인베스트먼트, SK증권이 모여 만든 사모펀드로 2019년 투자금을 유치한 2대주주다.  

한편, 최근 상장을 강행하기로 한 기업들은 사업자금 조달이 급해진 상황이다. 우선 쏘카의 경우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유니콘 특례상장 절차를 통해 상장 문턱을 넘겼다. 올해 1분기 기준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361억원으로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결국 안정적인 사업 활동을 위해서는 IPO를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한편 WCP는 현금흐름도 플러스이고 올 상반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회사 로드맵상 내년 유럽 현지 생산을 개시하기로 한 점을 감안하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회사는 공모자금중 구주매출을 제외한 금액 전체를 국내외 공장 증설에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올들어 자금조달 환경이 어려워진 점 역시 '울며 겨자먹기' 식 IPO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금리는 고공행진 중이다. 은행 예금 금리와 채권 수익률이 오르면서 투자자본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선 이전보다 높은 수익률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한 비용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규모(1~7월 기준)는 전년 대비 각각 29.0%, 29.6%씩 뒷걸음 쳤다.

코너에 몰린 시장, IPO 강행 계속된다

아직도 IPO 시장에는 몸값 조정을 통해서라도 상장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대기 중이다. 컬리는 지난달 상장심사를 통과해 연내 상장이 유력하다. 컬리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작년 말 기준 -1383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영업손실액은 2177억원으로 집계되는 등 재정상황이 좋지 않다. IPO를 통해 자금이 수혈될 필요가 있다.

이달 20일 거래소 예심을 통과한 케이뱅크의 경우엔 재무적투자자(FI)들과의 계약으로 내년까지 상장을 하지못하면 콜옵션이 발동돼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가게 된다.

비상장 투자 전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상반기 때 상장을 하려던 회사 상당수가 하반기로 일정을 미뤘다"며 "그러나 지금은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시장이 호전될 것 같지 않자 상장을 밀어붙이려는 회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존 주주와의 이해관계 등으로 공모가 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공모가를 기존 예상보다 낮출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며 "주관사는 IB실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상장을 어떻게 해서든 추진하려고 하지만, 기업과 구주주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탓에 조율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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