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대진첨단소재가 상장후 잠재적 물량부담이 될 수 있는 전환사채(CB) '리픽싱' 조항을 일부 삭제했다. CB는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인데 통상 리픽싱 조항을 붙여 주가 하락시 전환가격도 같이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전환 물량도 늘어나면서 잠재적 물량 부담이 된다.
리픽싱 조항 삭제 뒷 배경엔 상장 예비심사를 맡고 있는 한국거래소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픽싱 조항을 없애면 CB 투자자들에게 불리해지지만, 전환 물량이 나올 가능성을 낮춰 주가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대진첨단소재는 작년 11월 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후 다음달인 12월 금감원에 첫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총 다섯차례에 걸쳐 신고서를 수정했는데, 지난 1월 20일 제출한 3차 정정보고서에서 상장 전 발행한 CB의 리픽싱 조항을 삭제했다.
CB는 지금은 채권이지만 나중에 약속한 시점이 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때 전환가격이 핵심이다. CB를 발행할 때는 전환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조건(리픽싱)도 포함한다.
CB 투자자 입장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전환가격도 낮추는 이른바 '안전장치'이며, 반대로 CB 보유자가 아닌 다수의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매물이 늘어나는 복병이기도 하다.
대진첨단소재는 1년 전인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6차례에 걸쳐 사모 CB를 발행했다. 회사는 IPO 주관사 미래에셋증권과 우리금융디지털투자조합1호, 에스제이 지비 ESG혁신펀드를 대상으로 각각 20억원어치씩 발행했다. 한국투자증권, 하나증권, 리딩투자증권을 대상으로도 각 10억원씩 발행했다. 전부 합쳐 총 9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해당 CB의 전환가격은 발행 당시 1주당 3만5706원으로 정해졌는데, 작년 8월 무상증자 실시로 전환가격이 1주당 1만6068원으로 낮아졌다. 이는 발행주식 증가에 따란 자연스런 가격 조정이다.
또한 CB 발행 당시 보통주 가격이 하락하면 3개월마다 전환가를 조정할 수 있는 조건도 있었다. 만일 기준일의 당일 평균 주가와 최근 일주일 평균치, 최근 한달 평균치가 전환가보다 낮으면 그 가격으로 전환가를 조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상장을 앞두고 돌연 이 조항을 없애기로 것이다. 거래소는 상장예비심사 당시 회사가 상장한 이후 이 조항이 발동해 전환가격이 낮아질 경우, 주식 전환 매물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해당 조항 삭제를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CB를 보유한 몇몇 기관은 거세게 반발했다. 상장 후 주가는 떨어지는데 전환가격은 그대로 유지한다면 손실을 감수해야하는 탓이다. 그러나 회사와 주관사의 설득에 리픽싱 조항 삭제로 뜻을 모았다. 대진첨단소재 관계자는 "당장은 손실로 여겨질 수 있어 일부가 강하게 반대했지만 상장이라는 목표를 갖고 얘기를 나눠 협의를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상장후 주가가 공모가 대비 30% 이상 하락할 때 전환가격을 공모가 70% 수준으로 정하는 리픽싱 조항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회사 측이 제시한 공모가 희망밴드는 1만900~1만3000원이다.
이번 사례를 두고 시장에서는 거래소의 리픽싱 조항 삭제 요구가 이례적이진 않지만, 몇 년째 IPO 주가 상장 이후 지지부진한 수익률을 보이자 거래소가 오버행 이슈에 깐깐해졌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한다.
일례로 연초 기대를 한몸에 받은 LG CNS는 상장 당일 공모가(6만1900원) 대비 9.85% 하락한데 이어, 현재도 5만4000원대에서 부진한 주가흐름을 보이고 있다. LG CNS 주가를 가장 크게 압박한 요인은 2대주주인 맥쿼리PE가 6개월 의무보유확약이 끝나면 지분 매각에 나설 것이란 우려였다.
대진첨단소재 역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이 적고 기관투자자의 지분이 많아 오버행 이슈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회사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최대주주 유성준 대표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26.43%에 불과한 반면 벤처금융 및 전문투자자 지분 총합은 49.27%에 달한다.
심의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5년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6.1~19.2배로 추정돼 성장성 대비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다"면서도 "50%를 넘는 벤처금융 물량은 부담요인이므로 상장 후 변동성 확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초대어' LG CNS가 상장 직후 오버행 우려 속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인 탓에 앞으로 거래소가 새내기주 관리에 고삐를 더욱 조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거래소의 이같은 움직임에 증권가도 주목하고 있다.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투자자들이 LG CNS를 포함한 여러 회사의 주가가 상장 직후 하락하는 사례를 학습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최근 거래소도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할 것이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희석하기 위해 수급 문제에 더 예민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