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3년간의 외부감사인 주기적 지정 기간을 끝내고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계법인이 지정 기간에 받은 보수와 자유수임으로 전환한 이후 받은 보수 간 차이가 약 1억원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회계법인 간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수 깎기에 나선 결과다. 이에 금융감독당국은 회계법인 간 '덤핑' 경쟁이 감사 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자유수임 전환 후 보수 확 내려가자, 금감원 '경고등'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회계법인들을 대상으로 감사 보수 인하 경쟁이 감사 품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 줄 것을 지도했다.
또한 올해부터 회계법인 품질관리 평가 시에도 이같은 요소를 고려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1년에 한번 약 14곳의 등록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품질관리 수준을 평가한다. 이때 지정 기간 대비 감사보수를 확 낮춘 감사 건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감독당국이 모니터링을 강화한 건 매해 지정 기간 감사보수와 자유수임 감사보수 간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빅4(삼일·삼정·한영·안진) 회계법인의 2021년 받은 지정감사 보수와 자유수임 보수는 각각 평균 4억3000만원, 4억3100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22년 지정감사 보수가 자유수임 보수를 역전하더니, 2025년에는 지정감사 보수와 자유수임 보수가 각각 5억14000만원, 4억원을 기록했다. 몇 년새 보수 간 격차가 1억1400만원으로 벌어진 것이다.

'시장경쟁서 불가피' vs '신외감법 이전 회귀 신호'
회계업계에 따르면 주기적 지정제 도입 이후 기업들이 부담하는 감사 보수는 이전 대비 20~30%가량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기적 지정제는 3년간 감독당국이 정해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고 이후 6년간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는 제도로, 2018년 신외감법을 통해 도입했다.
지정 감사 때는 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하므로 사실상 회계법인이 제시하는 보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감사 비용 부담이 과도하다는 불만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하지만 3년의 지정 기간이 끝나고 기업들이 다시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감사보수도 지정 기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거나 오히려 더 낮아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기 악화로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대형 회계법인 간에도 수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점도 영향을 준다.
A 회계법인 관계자는 "빅4의 감사품질이 상향평준화되면서 기업이 느끼는 품질차이는 크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이 유일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B회계법인 관계자는 "빅4 중 한 곳에서만 지정감사를 받았다면 자유수임 때는 최소 나머지 세곳에서 제안을 받는다"며 "경쟁이 붙으니 단가가 내려가고 심지어는 감사인 지정 전보다 가격이 낮아지는 경우도 생긴다"고 전했다.
물론 보수 인하가 곧바로 감사 부실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해당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이미 높은 상태에서 감사를 진행하거나, 과거 감사 경험이 있는 회계법인이 다시 수임하는 경우에는 투입 인력이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보수가 낮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투입비용 감축은 결국 감사품질에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분명히 존재한다. 앞서 지난 3월26일 열린 제6차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에선 한 증선위원은 "감사보수가 지나치게 낮을 경우 그에 따라 투입시간도 줄어들고 감사품질 또한 낮아질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감사시장이 신외감법 시행 전으로 다시 회귀하는 문제가 발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도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정제 도입 전에 해당 기업의 감사를 진행한 적 있거나 그 회사의 용역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면 회사를 처음 감사하는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감사 투입 인력이나 시간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점 등을 고려해 감사보수를 책정하는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유지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