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무풍지대로 불렸던 판교의 IT게임업계에 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엔씨소프트에 이어 NHN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산하 지회를 만들었다. 실적 악화로 불안정한 고용환경이 지속된 가운데 성과 배분에 대한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직 어렵다" 노조로 결속
NHN 노동자들은 지난 18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산하 NHN지회 출범을 공식화했다. 지회 이름은 '넥스트.휴먼'이다. NHN노조는 본사뿐만 아니라 주요 계열사 노조까지 가입 가능한 형태다. 고용안정 보장, 임금 인상, 복지 강화, 노동조건 개선, 사업장 내 차별 철폐 등을 내세웠다.
올해 게임업계에서 노조가 설립된 건 엔씨소프트에 이어 두번째다. 네이버, 카카오, 한글과컴퓨터를 비롯한 IT기업과 게임사로 이뤄진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는 "이제 판교에서 노동조합은 익숙한 낯섦이 아닌 익숙함"이라면서 NHN노조의 설립을 환영했다.
IT게임업계는 근속연수가 짧고 성과주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직이 자유롭고 채용 기회가 활짝 열렸던 시기에는 회사에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기보다 이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부 게임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채용규모를 줄이고 사업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기업 직원은 "어디나 상황이 어려우니 이직보다는 스테이(잔류)가 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채용한다고 공고만 올려두고 실질적으로는 티오(TO·정원)가 없는 경우도 있다"면서 "직군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채용시장이 많이 얼어붙은 분위기라서 이직할 곳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임금교섭 공동대응 기류도
이전처럼 이직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 속 임금이나 처우 차이를 두고 불만이 커지자 노조 설립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곳이 늘어났다.
NHN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이) 바라는 바는 다양하지만, 주변에 다른 IT노조가 생기면서 임직원 전체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일이 노조 설립에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사 한 관게자는 "아무리 이직해도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경험을 하다보니 점차 노조를 찾게 되는 것"이라면서 "기존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절을 바꿔나가는 쪽으로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노조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엑스엘게임즈 노조는 지난달 구조조정 시 노조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엔씨소프트노조 또한 이달 초 노동조건 개선과 전환배치 시스템 개선을 골자로 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내년 임금교섭을 앞두고 노조간 손을 잡기도 한다. 네이버·넥슨·스마일게이트·엔씨소프트·웹젠·카카오·한글과컴퓨터 노조는 'IT 임협(임금협약) 연대'를 결성했다. 앞서 넥슨노조는 상위단체인 민주노총이 여성단체와 함께 지회와의 협의 없이 기자회견을 열었던 일로 탈퇴를 검토했으나, 협상을 앞두고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관계자는 "(노조의 발표)이후에 따로 진행된 상황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