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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퍼(Dropper)'
마약 운반책의 은어다. 불법 마약 조직은 드로퍼를 고용해 마약을 은밀하게 전달한다. 만일 적발되더라도 꼬리자르기 식으로 드로퍼만 체포, 처벌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법적인 행태는 이처럼 말단 조직원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불법 리베이트 온상 'CSO'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 전부터 제약사들은 자사 의약품을 처방, 판매해주는 병의원과 약국 등 보건의료인들에게 대가성으로 금전적 이익을 제공해왔다. 과거에는 제약사들이 직접 불법 리베이트를 주도했지만 정부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의약품 영업대행사(CSO)를 리베이트 창구로 활용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이 세금조사를 진행한 의약품 업체 16곳의 불법 리베이트 과거 사례에서도 CSO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A사는 직원 가족 명의로 설립한 CSO에 허위용역비를 지급해 자금조성을 조성한 후 의료인에게 뇌물을 수수했고, B사는 전 직원 명의로 CSO를 설립한 후 병원 소속 의사들을 주주로 등재해 고액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적발됐다.
이에 정부는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제출 의무화 대상을 기존 의약품 제조·수입 회사에서 2023년 CSO도 포함하도록 확대한 바 있다.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제출 CSO 5.8% 불과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는 정부가 의약품·의료기기 공급자 등이 요양기관에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 내역을 의무적으로 작성, 5년간 보관하도록 2018년 도입한 제도다. 의약품·의료기기 공급자가 자발적으로 지출 내역을 작성하게 함으로써 불법 리베이트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제도대로 CSO들이 지출내역을 자발적이고 투명하게 작성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CSO 가운데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곳은 극히 일부(5.8%)인 574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94.2%)인 9385곳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 업체를 대신해 영업업무를 대행하는 CSO 대부분이 의료인 등에게 금전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또 다른 지표에선 정 반대의 수치가 나온다. 제약사 가운데 제조업과 수입업의 경우 절반 이상(각 61.8%, 53%)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유통회사인 도매·판매업에서도 52.2%가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
복지부 "업계 자정노력 기대"…사실 검증 없이는 유명무실한 제도
제약사의 경우 지출보고서 작성·제출하지 않을 경우 불법 리베이트 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지출보고서 작성에 성실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수백개에 달하는 품목 중 다수 품목들이 일괄 적발될 경우 리베이트 규모가 큰데다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의약품 약가인하나 급여정지 등 행정처분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1인 CSO로 품목들을 세분화하면 불법 리베이트 규모가 작아 CSO나 해당 품목 제약사에 가해지는 처벌 수위도 낮출 수 있다. 예를 들어 100개 품목에 대해 총 1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과 1개 품목에 대해 100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됐을 때 리베이트 규모가 적은 경우 처벌 수위도 낮아질 수 있다.
복지부는 "지출보고서 의무화 및 공개 제도 도입을 통해 투명하고 건전한 의약품 유통 질서 조성과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업계의 자정노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별도의 사실 여부 검증은 아직 계획에 없다"고 했다.
합법이건 불법이건 금전 지급이 있었더라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보고하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물론 자발적인 윤리경영을 실천하려는 제약사도 있다. 하지만 치열한 의약품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겉으로는 윤리경영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1인 CSO를 통한 불법 리베이트를 지속하고 있는 제약사도 다수 있다. 리베이트를 중단할 경우 당장 처방, 판매가 경쟁사 의약품으로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CSO 총 9959개소 중 1인 사업자인 곳인 무려 69%에 달하는 6869개소였다. 상당수의 CSO가 1인 사업자라는 의미다.
마약처럼 제약업계가 수십년간 관행처럼 해 온 불법 리베이트 역시 자발적으로 끊어내기가 어렵다. 지출보고서가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직접적인 감시체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실 확인 절차까지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