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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돌잔치 취소 위약금…코로나19에 되풀이되는 '논란'

  • 2020.02.27(목) 08:00

<김보라의 UP데이터>
소비자원에 접수된 여행·돌잔치 피해구제 건수 증가
코로나19, 천재지변 아닌 사회재난… 메르스 사태 반복
가이드라인 없어, 소비자 vs 사업주 간 책임공방 되풀이

오는 3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A.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증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감염우려로 인해 결혼식을 뒤로 미뤄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예식장에 문의하자 관계자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개인의 변심'에 따른 취소이기 때문에 계약금과 식대 위약금 35%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코로나19로 결혼식을 미루는 것도 속상한데 계약금과 위약금 등 367만원의 손해를 보게 되어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면서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기존에 진행하기로 했던 외부행사도 갑작스레 취소하는 상황이 늘고 있습니다. 결혼식, 돌잔치, 항공사, 여행사, 호텔 등 주요 서비스업종에 취소문의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여행·돌잔치 등 늘어나는 외부행사 취소

이태규 무소속 의원실이 지난 23일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월 1일부터 15일까지 여행 취소로 인한 위약금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124건이 접수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건이 접수된 것과 비교하면 12.4배 증가한 것이죠.

돌잔치 취소에 따른 위약금 피해구제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요.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2월 1일~15일까지 돌잔치 취소에 따른 위약금 피해구제 신청은 1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2월 1일~15일에는 27건의 피해구제 신청이 접수됐습니다.

예식장은 아직 큰 폭의 수치변화는 없었는데요. 지난해 2월 1일~15일까지 예식장 취소에 따른 위약금 피해구제 접수는 8건이었고 올해는 같은 기간 7건이 접수됐습니다.

다만 예식장의 피해구제 건수가 아직 많지 않은 것은 2월 15일 이후 접수된 건수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지난 19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이후 한국소비자원에는 예식장 관련 피해구제 상담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26일 한국소비자원이 공개한 '코로나19 소비자상담 맵'에 따르면 1월 20일부터 2월 25일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해 접수된 전체 소비자상담건수는 9729건에 달합니다.

한국소비자원은 자체 홈페이지에 "예식장 계약취소 및 위약금 관련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한 소비자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지를 내걸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코로나19로 인한 결혼식, 돌잔치 등 연기 및 취소에 따른 위약금 부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원이 다수 올라왔습니다.

# 코로나19는 천재지변 아닌 '사회재난

이처럼 갑작스러운 취소로 인한 계약금 및 위약금은 어떻게 처리가 될까요. 한국소비자원에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피해구제 접수 건수를 봤을 때 대체로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약관계의 불공정함을 해소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준약관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이 통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 간 권리의무 등 거래관계에 있어서의 표준이 되는 약관입니다.

공정위의 '예식장 이용 표준약관'에 따르면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해 예식을 하지 못할 경우 이용자가 책임을 지지 않고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예식장이 공정위의 표준약관을 따르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약관이 존재함에도 소비자에게 위약금 부담이 전가되는 이유는 '불가항력'에 대한 해석 때문입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에 해당합니다. 지진·홍수·태풍 등 천재지변이 자연재난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한 결혼식 취소·연기는 천재지변이 아니어서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2288건의 메르스 피해구제와 관련한 상담이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됐었는데요. 당시에도 대다수의 소비자가 메르스를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보고 위약금 면제를 요구했지만 사업주들이 약관에 따라 위약금을 부과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 항공사, 일부 지역 수수료 면제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여행, 항공, 예식장, 돌잔치, 공연관람 등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는 위약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실제로 불가항력에 대한 해석은 업계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 유독 항공사는 코로나19를 불가항력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1월 20일부터 4월 25일 출발하는 항공권 중 발권일이 1월 28일 이전인 경우 항공권 변경·취소에 따른 수수료 및 위약금을 면제하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홍콩, 타이베이 포함)지역에 한해서입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서울도 중국 장자제, 린이 노선과 홍콩 등을 대상으로 항공권 환불수수료를 면제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수료면제와 위약금 시행하고 있는 항공사들도 중국과 홍콩 등 일부 노선에 한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고 감염이 우려돼 중국 이외의 다른 지역 항공권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경우 수수료·위약금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됩니다.

실제로 베트남 다낭 항공권을 예약한 A씨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이유로 취소에 따른 수수료 면제를 문의했지만 B항공사는 개인사유로 인한 취소라며 수수료를 면제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매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일본 간사이 지방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소비자들의 항공권 취소 요청이 이어졌지만 항공사들은 공항 자체가 폐쇄된 것이 아니라면 개인사유로 판단, 취소에 따른 수수료를 소비자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코로나19와 관련해 접수된 소비자 상담 맵 모습 [사진=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 갈무리]

# 소비자·사업자 책임공방 되풀이

지난 2015년 발간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월간소비자에 실린 '돌잔치, 환갑 등 외식서비스 계약취소 시 환불거절 및 위약금 과다 청구 소비자 피해 실태'라는 제목의 글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지속여부 또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는 예약한 돌잔치나 회갑연 등을 취소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이로 인한 정신·물질적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대로 사업주 역시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코로나19가 사업주의 과실이 아님에도 소비자들에게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것은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당장 얼마 남지 않은 예식장·돌잔치 등의 행사는 이미 준비절차가 진행된 경우도 있어 이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사업주가 부담해합니다.

소비자와 사업자간 책임공방은 메르스 때도 불거진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코로나19 감염증이 확산되자 소비자와 사업자 간 논란이 다시 되풀이된 것이죠.

현재 한국소비자원은 공정위가 2007년 마련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고시)에 따라 소비자와 사업자 간 분쟁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해당 고시는 품목별로 해결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감염병 발병에 따른 별도의 규정은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자연재해에 해당하는지 등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원에서는 민원이 접수되면 공정위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최대한 소비자와 사업주가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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