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쩔 수 없어요. 그냥 쓰세요." 경기도 A 공공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 모 씨는 하자 재보수를 신청했다가 관리인에게 이 같은 말을 들었다. 화장실 타일이 깨져 있어 보수하려 했지만 기존 타일 색깔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자재를 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공공임대주택 하자 보수 문제는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만큼 민간 아파트에 비해 시공 품질이 떨어지고, 여러 임차인을 거치면서 생활 하자도 빈번한 게 현실이다.
하자 관리 체계나 서비스도 아직 미흡하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대부분을 공급하고 또 운영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갈수록 늘어나는 임대 재고에 비해 인력과 운영비는 점점 부족한 실정이다.
중첩된 운영위탁 체계도 관리 부실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공공임대 주거 질을 높이려면 촘촘한 계획 아래 더 신속하고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그냥 쓰세요?'…골치 아픈 하자 보수
공공임대 커뮤니티 등에는 LH를 비롯해 각종 지자체 주택도시공사가 공급한 공공임대주택 하자 문제에 대한 지적과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애초에 시공에 문제가 있거나 주택 노후화에 따른 하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한 가운데, 보수 처리가 늦거나 미흡하다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한 공공임대 아파트에 입주한 A씨는 천장에서 물이 새 보수를 요청해 벽지를 갈았지만 벽지가 심하게 들떴다. 이에 재보수를 요청했지만 관리인은 "애초에 시공할 때부터 단차를 잘못 맞춘 거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공임대 아파트 입주자 B씨는 화장실 타일이 깨져 보수를 진행했으나 요청한 시공 범위 및 타일 색깔이 달랐다. 관리인에게 재보수를 요청하자 "LH 자재만 쓸 수 있는데 색깔이 딱 맞는 게 없다. 별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공임대 아파트 입주 예정자 C씨는 입주 전 찢어진 시트지 보수를 신청했다. 원래 시트지는 짙은 나무색이었으나 새로 붙인 시트지는 흰색에 가까운 밝은 나무색이라 색상 차이가 심했다. 재보수를 요청하자 "사는 데 지장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LH의 공공임대주택 유지 보수 신청은 '바로처리센터' 혹은 '관리소'에 할 수 있다. 바로처리센터는 하자가 접수되면 현장 점검을 통해 시공 하자인지 유지 보수가 필요한 하자인지를 판단한다. 시공 하자면 수급업체를 지정해 하자 보수를 처리하고, 그 외엔 관리소가 있으면 관리소 담당자를 지정해 준다.
관리소 담당자는 도어록, 실리콘 등 경미한 보수일 경우 직접 처리하고 그 외 보수는 LH 지역본부 담당자를 연결해 준다. LH 지역본부 담당자는 유지보수 업체에 보수를 지시해 처리한다. 바로처리센터가 아닌 관리소에 하자 보수를 바로 신청할 때도 이 절차로 진행한다.
과거에 비해선 절차가 간소화되고 처리 기간도 빨라지긴 했지만 하자 정도나 인력 상황 등에 따라 처리 기간이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불만이 여전하다. 이에 공공임대 입주민들 사이에선 "귀에서 피날 때까지 얘기해야 보수해 준다", "정 처리가 안 되면 본사에 민원을 넣거나 국민신문고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는 등 방법이 공유되기도 한다.
LH 관계자는 "자재를 저렴하게 들여오려면 제작해서 통으로 물건을 납품받는 경우가 많다"며 "공사가 끝난 뒤에도 여분의 자재를 두고 가지만 입주하고 시간이 꽤 지나면 자재를 다 쓰고 새로 사야 하는데 똑같은 자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럴 땐 입주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공 가능한 자재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면서도 "그러나 이 같은 절차를 외주 업체를 통해 진행하는데 물량이 너무 많으면 가끔 이를 생략하는 사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140만 가구…"관리 계획 세워야"
지난해 초 공공임대주택의 하자 보수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면서 바짝 경각심을 조성했음에도 분위기가 크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충주의 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에서 도배와 창틀(섀시) 등 주택 마감 하자를 처리하지 않은 채 벽에는 '그냥 사세요'라는 조롱 글이 발견돼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중대 하자 문제도 있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6월까지 LH 분양 전환 공공임대주택,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공분양주택에서 발생한 중대 하자 건수는 1581건에 달했다.
이 와중에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계속 증가해 체계적인 관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지자체 주택도시공사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LH가 관리해야 하는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LH에 따르면 전국에 LH가 공급한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2013년 75만627가구에서 2023년 143만4913가구로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관리할 주택은 크게 늘었지만 인력은 오히려 감소 추세다.
LH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전체 임직원 수는 2020년만 해도 9683명으로 1만명에 가까웠지만 2023년엔 8871명까지 줄었다. 기간제, 파견직 등 비정규직과 자회사 직원은 제외한 규모다.
영구임대주택의 경우 LH 자회사인 주택관리공단을 통해 관리하지만 그 외 공공임대 유지 관리는 대부분 외주 업체에 맡긴다. 결국 LH 직원은 외주 업체를 관리하고, 외주 업체가 공공임대주택 유지 관리를 대행하는 구조다.
LH 유지 보수 담당 직원은 350여명 정도다. 이들이 지역본부마다 외주 업체를 공모·선정·관리·감독해야 하는데, 거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상당하다. 담당자가 없어서 공가를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지 보수나 운영비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부족하다. LH가 건설임대나 매입임대를 짓거나 살 때는 정부가 일부분 출자해 주지만 운영비 지원은 거의 없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인식도 걸림돌이다. 입주민들이 더 좋은 주거 품질을 바라면 "저렴하게 사는 만큼 그 정도는 감수해라"는 식의 반응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공공임대 주거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선 더 촘촘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미윤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이학박사(한국주택학회 회장)는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관리 계획을 마련하고 불필요한 절차나 비효율적인 비용을 줄여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공공임대 유지 보수, 이렇게 해야…
오랜 기간 LH토지주택연구원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던 진미윤 박사는 효율적이고 질 높은 공공임대 주거 관리를 위해선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공공임대 하자 및 유지 보수는 수백개의 업체를 통해 위탁 관리하고 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라고 꼬집었다.
진 박사는 "공정 거래를 위한 공개 입찰 때문에 위탁 업체를 선정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을 쓰고 있다"며 "하자 보수 관리 인력 부족, 과다한 위탁 관리, 비효율적인 조달 원칙 때문에 서비스 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직원당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 물량이 배정돼야 입주민에게도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현재는 위탁을 주고 행정 서류만 난무한 셈"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촘촘한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할 때"라고 봤다.
그러면서 "아울러 체계적인 전담 관리 회사를 설립하거나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법도 있고, 유지 보수는 노후시설 개선을 위한 개념인 만큼 정부의 상시 보조금도 필요하다"며 "단순히 양적 공급에 치우치기보다는 기존의 주택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