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경기 악화로 건설산업이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건설업계 양대 연구기관이 머리를 맞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은 지난 9일 '2024년 건설시장 및 건설산업 정책 진단 세미나'를 개최했다. 건설업계 두 싱크탱크가 처음으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업계의 위기의식에 기름을 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미 행정부의 재집권으로 내년 시장 상황도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공공 발주 물량이 감소하고 규제 중심 정책 기조가 이어질 거란 우려가 불거졌다.
"환율 1500원 돌파? 신인도도 문제"
김태준 건정연 신성장전략연구실장은 "트럼프 2기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상원과 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했고 사법부도 보수 성향을 띄고 있어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건설업계는 환율상승과 유가하락, 금리인하 제약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상승에 따라 국내 건설시장은 내수경기 침체로 구매력이 하락하지만 해외 건설시장의 경우 북미 지역 해외직접투자에서 증가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김 실장의 분석이다. 글로벌 유가 하락은 에너지 가격을 떨어뜨려 건설자재 가격 안정화를 가져오는 반면 산유국 재정 악화로 발주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고 봤다.
또 금리인하 제약으로 국내 건설시장은 이자비용 부담에 허덕이는 동시에 해외 프로젝트 조달비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여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 정치 상황도 건설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김 실장은 "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원 기준) 1400원대에 진입한 환율이 계엄 사태 이후 정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 1500원 돌파는 시간 문제"라고 진단했다.
국내 건설시장 영향은 컨트롤타워(관제탑) 부재로 인해 공공부문 공사 발주가 지연 또는 축소되고, 구매심리 악화로 인해 주택시장 불경기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해외 건설시장의 경우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건설사 신용평점이 떨어지거나, 해외 보험사가 한국 건설사의 보증을 거부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됐다.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와 해외시장 수익성 감소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설상가상' 시나리오다. 전영준 건산연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계엄 시국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민간 건설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공공 건설시장이 버팀목 역할을 해 줘야 하지만 공공 발주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건산연에 따르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경상금액은 2021년 53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42조6000억원으로 20.2% 감소했다. 건설공사비지수를 반영해 물가 변환한 값은 45조5000억원에서 33조1000억원으로 감소폭(-27.3%)이 더 크다.
전 실장은 "건설업은 규제 수주산업이다 보니 정책 기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지난 국회부터 건설업을 '카르텔'로 정의하고 처벌 중심 규제만을 강화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설업을 바라보는 행정·입법부의 시각을 규율·통제의 대상에서 육성·진흥의 대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조 건설투자로 1만개 일자리 창출"
이런 악조건을 버티기 위해서는 '건설업계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발제자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이충재 건산연 원장과 김희수 건정연 원장은 "건설산업이 위기 임계치에 도달했지만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업역 간 분절을 넘어서 건설산업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중추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 역시 "정부 정책이 룰러(공급자) 시각을 벗어나 플레이어(참여자) 시각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나경연 건산연 경제금융도시연구실장은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규제완화, 제도개선, 정부지원, 세제혜택을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건설 시장과 재원, 제도의 유기적 혁신이 건설산업 대전환의 시작"이라고 봤다.
나 실장은 건설투자가 단기적 내수경기 활성화는 물론 장기적 성장동력 마련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1조원의 신규 건설투자를 통해 1만5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와 타 산업으로의 후방 연쇄 효과(8600억원), 가계소득 증가(5250억원), 민간 소비 증가(3400억원) 등 연쇄적 파급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는 "합리적 공공기여 원칙을 마련해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고 사업 기간 증가형 분쟁을 줄이기 위해 공급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 선진화 차원에서 책임준공 확약 등 시공사에 위험이 집중되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홍성진 건정연 산업정책연구실장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건설 정책은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단위적 방법론에 불과하며 새로운 정책 발굴보다는 기존 정책과 연계해 수정·보완하는 대응에 불과하다"며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지역 경기 활성화, 미래 도시 등 미래지향적 정책과 궤를 같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그 예시로 꼽혔다. 홍 실장은 "지난 정부에선 도시재생과 대북 건설산업 등 건설업계 사업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정부에선 특별법이 그 모멘텀"이라며 "1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수도권, 지방 중소도시도 적용되는 만큼 전반적인 도시공간과 기능을 재창조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