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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치킨값 소동과 가격통제의 기술

  • 2017.03.17(금) 14:23

BBQ 치킨값 인상 소동이 남긴 것
농식품부, BBQ 백기들어 체면..MB정부땐 공정위 총대
"기업 꼼수 막아야" VS "정부통제 부작용 크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한 한식당에서 열린 '외식업계 CEO' 간담회장. 김태천 제너시스비비큐(이하 BBQ) 부회장은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전만 해도 불참 의사를 밝혔던 그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를 기다리던 기자들도 모두 떠난 뒤였다.

이 간담회 주인공은 원래 BBQ가 아니었다. 김영란법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외식업계의 고민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 13일 농식품부가 "AI로 인한 닭고기의 수급 불안을 핑계로 (치킨)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하자 치킨가격 인상을 예고한 BBQ에 관심이 쏠렸다.

간담회 시작 전 이준원 농식품부 차관은 "특정업체를 강제로 오라가라 할 수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BBQ 간담회 불참은 곧 농식품부와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론은 시시했다. 1시간 늦게 나타난 김 부회장은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BBQ 입장은 농식품부가 대신 전달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BBQ는 "가격인상을 철회한 것이 맞냐"는 기자 질문에 "농식품부에서 자료를 배포했다"고 에둘러 답했다. 농식품부가 배포한 1장짜리 자료에 따르면, BBQ는 "AI나 닭고기값 상승을 이유로 치킨값을 인상하겠다고 결정한 바 없고, 발표한 적도 없다"고 자백(?)했다. 기업 입장을 정부가 대신 발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사진= 이명근 기자]


◇ MB정부 물가관리 총대맸던 '공정위'

정부가 기업의 제품가격에 관여하는 가격 규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기획원 등이 물가를 직접 관리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정부(2008~2013년)도 MB물가지수를 만들어 자장면 등 52가지 물가를 직접 관리했다. 이명박 정부때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총대를 맸다.

기업들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서릿발에 눈치를 살폈다. 2011년 오비맥주는 두차례 맥주가격 인상을 시도했다가 "정부 시책에 부응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풀무원도 두부와 콩나물 등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만에 인상안을 접었다.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은 길들이기에 나섰다. 2011년 농심은 1600원짜리 '신라면블랙'을 출시했다. 정부는 리뉴얼을 통해 편법으로 가격을 올렸다며 제동을 걸었다. 공정위가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광고를 문제삼아 1억5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가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은 '신라면블랙은 라면일 뿐, 설렁탕과는 달랐다'였다. '신라면블랙'은 5개월만에 생산 중단됐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규제에 나서면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 자료 제출하라하면 내고, 제재하면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도 정부와 맞설 수 없다"고 토로했다.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의 가격규제 약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정부 눈치를 보며 가격인상을 접었던 기업들은 정권 말기나 교체기때 가격을 올렸다.

오비맥주는 가격 인상을 보류한 지 10개월만에 맥주 가격을 5.89% 올렸다. 2013년 빵값 인상을 철회했던 SPC삼립은 그 이듬해 6.4% 인상했다. 풀무원은 2011년 유보했던 두부 등 가격인상 요인을 2016년에 반영했다. 농심의 신라면블랙은 생산중단 1년2개월만에 판매가 재개됐다.

정부가 무리하게 물가를 잡으려다 뒤탈도 났다. 2008년 공정위는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라면가격 인상과정에서 담합했다며 직권 조사에 나섰다. 결국 농심 등은 2001~2010년 라면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를 받고 과징금 108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은 라면값 담합 과징금이 부당하다며, 농심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치킨가격 인상 철회과정에서도 농식품부가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 등을 언급하면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썼다'는 얘기가 나왔다. 규모가 크지 않은 프랜차이즈 업계에 세무조사는 '저승사자'와 같다. 지난해 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는 세무조사로 70억원의 과징금을 받고,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신세가 됐다. BBQ가 가격 인상을 철회한 날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정부가 칼을 들었다는 질책을 들었다"며 "정부가 규제를 휘두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 "BBQ 꼼수" VS "과도한 정부 규제"

이번 치킨가격 인상 소동도 기업의 꼼수냐, 정부의 과도한 통제냐를 놓고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정부가 시장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이 옳은지, 기업이 합리적 방식으로 가격 인상을 추진하는지 등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민간식 치킨 가격이 오르면 체감 물가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BBQ가 원자재 때문에 치킨가격을 올리겠다고 했지만, 타당성이 부족하다. 최근 2개월가량 닭고기값이 오른 것은 맞지만, 2013~2015년에 계속 내렸었다. 닭고기 가격 내릴 땐 2만원 짜리 비싼 신제품을 내놨다. BBQ가 주장하는 배달 앱 수수료 등은 본사와 가맹점 문제다.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안된다. BBQ 영업이익은 2014년 21억원에서 2015년 139억원으로 6배 넘게 늘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가격을 규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치킨값이 비싸면 안사먹거나 돼지고기를 사먹으면 된다. 가격규제는 진입이 제한된 전력·통신 등 공익사업 영역에선 가능하지만, 경쟁 체제에선 안된다. 억지로 내리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과거 프랑스 대혁명 시절 공포정치로 펼쳤던 로베스피에르는 우윳값이 비싸지자 반값으로 내리라고 명령했다. 2주 뒤 젖소 값이 폭락했다. 우윳값이 떨어지니 젖소를 죽여 고기로 팔아 버린 것이다. 암시장에서 우유 가격은 몇십배 뛰었다. 정부의 가격 규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기분이 좋지만,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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