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봤다 #삐에로쑈핑 #생각보다 더 돈키호테ㅋ #사람 넘침ㅠㅠ
코엑스몰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유명 잡화점인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했다. 아니, 따라 했다. 거의 그대로 들여온 것만 같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이 삐에로쑈핑을 만든 건 신세계 그룹의 이마트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기업이 일본의 대표 아이템을 카피(?)한 셈이다.
이 정도면 표절 논란이 있을 만하다. 그런데 SNS를 살펴보니 반응은 의외였다. 표절에 'ㅍ'자도 없었다. 다들 일본에 온 것 같다며 좋아하기만 한다. 사람이 바글바글했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구경하고서는 사고 싶은 걸 싹쓸이 해왔다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어땠냐며 나도 가고 싶다는 댓글도 줄줄이 달린다. 실제 삐에로쑈핑의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1만 명에 달하고, 인스타그램에는 개점 한 달 만에 벌써 1만 개 이상의 인증샷이 올라왔다.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따라 했기에. 아니, 어떻게 벤치마킹했기에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까. 그 느낌 그대로 살린 게 통한 걸까. 아니면 우리는 모르는 비결이 있는 걸까.
▲ 김현진(왼쪽) 삐에로 쑈핑 가전·문화 바이어와 임대섭 식품 바이어.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지난 2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김현진 삐에로쑈핑 가전·문화 바이어와 임대섭 식품 바이어를 찾았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일본을 수차례 다녀오며 삐에로쑈핑 1호점 개점을 위해 직접 발로 뛴 실무자들이다.
이들이 이마트의 새로운 잡화점을 만들기 위해 뭉친 건 지난해 12월. 이미 '삐에로쑈핑'이라는 이름은 정해져 있었고, 개점 날짜도 2018년 6월로 못 박혀 있었다. 팀원은 이들 두 바이어를 비롯해 여섯 명이었다. 시간이 없었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잡기 어려웠다.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에서도 각 상품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이들이었지만 손에 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야 하는데 팀원 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이도 없었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현진 바이어는 "말이 안 통하니까 돈키호테 매장 직원에게 구글 번역기로 이것저것 물어봤다. 당연히 어디서 왔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고 사진을 찍다가 쫓겨난 적도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수모를 당하면서 여러 지역의 매장을 돌던 이들이 만난 '구세주'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임대섭 바이어는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재고 정리나 상품 진열 방식이 다를 것 같아서 그런 걸 주로 물어봤다"고 전했다.
다행히 3월쯤 일본어가 유창한 이마트 주재원이 팀에 합류했고, 이후에는 나름 수월하게 현지 탐방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 6개월간 2박 3일씩 세 번 일본을 찾았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매장을 찾아다녔다.
일본 잡화점 하면 대부분 관광객이 돈키호테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일본에는 유사한 분위기의 다른 잡화점들이 많다. 마츠모토 키요시나 로프트, 빌리지 뱅가드 등이다. 이들은 이 매장들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김 바이어는 "예를 들어 돈키호테의 경우 중요한 상품을 매대의 가장 위와 아래에 진열해 고객들이 위아래를 보면서 여러 상품을 훑어보게 한다. 빌리지 뱅가드의 경우 어떤 테마를 만들어 편집숍처럼 꾸미는 특징이 있다. 그런 걸 보고 조합을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임 바이어는 벤치마킹했던 과정을 두고 "유에서 무를 창조했다"고 표현했다. 국내에는 없는 형식의 매장인 데다 여러 업체를 관찰한 뒤 일관된 컨셉을 뽑아내야 하는데 그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힘들게 현장을 발로 뛴 후 이들이 내린 결론은 조금 허무했다. 돈키호테는 컨셉이 없는 게 '컨셉'이라는 사실이다. 김 바이어는 "예를 들어 이마트는 상품 구성을 순서대로 하는데 이 포맷이 없다는 게 컨셉이었다. 매장마다 다 다르게 조정해놓고, 상권 등 여러 요인을 보고 상품을 빼거나 넣었다. 결국 기준이 없는 게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돈키호테 등 일본 잡화점 매장의 모든 걸 캐내기가 쉬운 일도 아니었다. 임 바이어는 "돈키호테도 초창기에는 상품 진열을 잘 못해서 매장이 복잡했던 게 맞다. 그런데 지금은 엄청나게 정교하게 진열한다. 섹션별로 담당자가 있고 어디에 어떻게 물건을 진열할지 명확한 컨셉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그걸 다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이들이 내놓은 결론은 원조의 분위기를 살리되 일단 코엑스몰에 맞는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성인샵과 흡연실, 일본에 가면 꼭 사야 하는 인기상품 모음 매대 등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특화존'이 소비자들을 끄는 주요 포인트가 되고 있다.
성인샵은 일본에선 관련산업이 워낙 발달해 있는 탓에 돈키호테 매장에선 일부 섹션으로만 구성한 경우가 많다. 반면 삐에로쑈핑 코엑스점에서는 독립적인 '샵' 형태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용품 매장이 활성화하지 못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코엑스몰점의 성인용품은 개점 당시에는 다소 밋밋한(?) 상품들로 진열했는데 폭발적인 반응에 상품 구성도 늘리고 규모도 확대했다. 김 바이어는 "처음 2주 정도는 성인용품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상품으로 진열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이제는 상품을 늘려서 내놓을 상품들을 다 오픈했다"고 설명했다.
흡연실은 코엑스몰의 특성을 고려해 만들었다. 코엑스몰은 워낙 규모가 큰 탓에 쇼핑 중간중간 흡연하기가 만만치 않다. 임 바이어는 "코엑스몰에서 담배를 한 번 피려면 20분이 걸린다.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우리 매장에 구현하기로 했다. 집객 효과도 있으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흡연실을 지하철 2호선 객실처럼 꾸며 흡연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려 한 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직원 유니폼에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거나 매장 바닥에 '제정신일 의무 없음'이라고 써놓은 등의 유머 코드도 삐에로쑈핑만의 특징이다. 'B급 감성'을 더 적극적으로 살린 대목은 젊은 층의 호응을 끌어내는데 한몫하고 있다.
삐에로쑈핑 매장 내 식품군 중 베스트셀러는 아사히 미니 캔맥주와 명란마요, 테라오카 계란간장소스 등이다. 개점 한 달이 된 지금까지는 '일본'과 '돈키호테'의 이미지가 짙다. 물론 삐에로쑈핑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공들여 들여온 상품들인 만큼 자연스럽고 반가운 일이긴 하다.
다만 이마트는 삐에로쑈핑만의 분위기를 점차 살리면서 진화해나갈 계획이다. 임 바이어는 "1호점에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이 꼭 사가야 할 한국 상품 매대를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다"며 "조만간 동대문 두산타워에 개점하는 2호점의 경우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걸 더 크게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삐에로쑈핑을 제대로 구경하는 비법을 물어봤다. 너무 정신이 없어 뭘 사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다.
그런데 임 바이어의 '지론'이 인상 깊다. 그는 "쇼핑 비법을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삐에로쑈핑은 목적 구매를 지향하지 않는다. 이걸 사러 갔다가 저걸 사고 나오거나 아니면 아이쇼핑만 해도 된다. 이마트 동료 중에서도 추천 좀 해달라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냥 오라고 했다. 그냥 오시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