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약 10개월 동안 진행해왔던 슬로베니아 홈쇼핑 업체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CJ ENM은 애초 스튜디오 모데르나(Studio Moderna)를 인수해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 했습니다. 스튜디오 모데르나를 발판으로 동유럽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삼아 궁극적으로 서유럽까지 진출하려던 생각이었습니다.
서유럽 시장 진출은 CJ ENM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해있는 만큼 좀 더 큰 시장인 유럽을 노렸던 겁니다. 다만 직접 유럽시장을 공략하기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스튜디오 모데르나는 CJ ENM을 유럽시장으로 이끌 우회로였던 셈입니다.
이번 딜은 스튜디오 모데르나가 CJ ENM에 인수를 제안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비록 중국 일부와 일본, 터키 등에서는 쓴맛을 봤지만 중국의 천천 CJ와 동방 CJ, 멕시코와 동남아시아 시장 등에선 큰 성과를 거두고 있던 CJ ENM으로선 매력적인 매물이자 유럽시장에 다가설 좋은 기회였습니다.
스튜디오 모데르나는 동유럽 주요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 21개국에 진출해있습니다. 홈쇼핑은 물론 인터넷 쇼핑몰과 출판 마케팅 사업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390개의 오프라인 매장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있는 자체 브랜드(PB)를 가지고 있어 더 매력적입니다.
이 때문에 CJ ENM은 그동안 스튜디오 모데르나 인수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업계에서도 CJ ENM의 스튜디오 모데르나 인수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업계에선 이달 중 CJ ENM의 스튜디오 모데르나 인수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고, 막판 밀고 당기기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인수 목전까지 갔던 딜은 결국 없던 일이 됐습니다. CJ ENM이 그토록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던 일이던 만큼 내부적으로도 아쉬움이 큽니다. 사실 일부에선 생각보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협상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CJ ENM은 왜 이번 딜을 중단했을까요? 업계에선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지주사인 CJ㈜가 이번 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스튜디오 모데르나를 인수해 서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CJ그룹 내부에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비록 스튜디오 모데르나가 동유럽 시장 곳곳에 진출해있고 경쟁력있는 PB브랜드도 갖추고 있지만 정치·경제적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한 동유럽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 영 찜찜했다는 겁니다. 아울러 동유럽 소비자의 구매력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판단해 이번 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후문입니다.
가격도 걸림돌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애초 스튜디오 모데르나는 매각 가격으로 5000억원을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CJ그룹은 대형 M&A(인수·합병)를 진행 중입니다. CJ제일제당의 미국 쉬완스, CJ대한통운의 독일 슈넬레케 등이 대표적입니다. 두 딜 모두 조(兆) 단위입니다. 그룹 차원에서 각별히 신경을 쓰는 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CJ ENM이 추진하던 스튜디오 모데르나 인수 건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룹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딜에 많은 자금을 투입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미 조 단위 딜을 진행 중이니 더더욱 그랬을 겁니다. 그룹의 지원을 받아야 했던 CJ ENM으로선 상대가 원하는 가격을 맞혀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기간 가격을 두고 양측이 실랑이를 벌인 이면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전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CJ ENM은 스튜디오 모데르나가 부른 가격보다 한참 낮은 가격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고 이 간격이 메워지지 않아 결국 딜이 중단된 것 같다"면서 "CJ ENM도 불확실한 미래 청사진만으로는 그룹을 설득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랜기간 공을 들여왔던 CJ ENM으로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럽시장 진출의 기회를 잃은 것은 물론 대내외적으로도 유무형의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물론 이번 딜이 깨졌다고 해서 CJ ENM의 유럽진출 꿈이 사그라진 건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이런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을지, 온다면 언제쯤 올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답답할 뿐입니다.
CJ ENM은 좋은 기회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기회를 엿볼 겁니다. 현재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계열사의 큰 딜에 밀렸지만 조만간 CJ ENM에도 다시 기회가 올 겁니다. CJ ENM이 언제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좀 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