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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롯데마트, 고객에게 '신선'을 묻다

  • 2018.12.10(월) 10:58

롯데마트, 제5회 신선명장 경진대회 개최
올해 처음으로 고객들이 평가단으로 참여
고객 선택결과 데이터화…서비스·제품 반영

썩 내키지 않았다. 기사 아이템 보고를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발견한 자료에서 힌트를 얻었다. 귀찮기는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기자들에게 '꺼리'는 중요하다. 전화해보니 현장을 찾는 기자도 많지 않다고 했다. 가볍게 한 번 다녀오자고 마음을 굳혔다. 이제서야 고백하자면 데스크가 '킬(kill)'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신은 역시 내 편이 아니었다. 데스크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다. 낭패였다. 뒤늦게 날짜를 확인하니 심지어 일요일이었다. 남들 다 쉬는 날 혼자 일을 하러 가야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어'를 수없이 되뇌었다.

집을 나선 지 2시간여 만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마침 대형마트 휴무일인 탓에 행사장 입구는 내 마음처럼 더욱 스산했다. 가족 단위로 행사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와 달리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처음으로 고객들에게 오픈해 초청하는 행사여서 많이들 오신 것 같다"고 했다. 주차장은 이미 차량들이 빼곡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행사장 입구의 문을 열었다. 깜짝 놀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순간 직감했다. '오늘 시식 코너가 많겠구나'. 그래서일까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했다. 나는 대형마트의 꽃은 시식 코너라고 확신하는 1인이다. 그때부터 설렜다.

지난 9일 서울 롯데 빅마켓 영등포점 6층 롯데 리테일 아카데미에서 열린 '제5회 롯데마트 신선명장 경진대회'를 다녀왔다. 롯데마트 신선명장 경진대회는 지난 2014년부터 시작했다. 전국 롯데마트에 근무하는 농산, 축산, 수산, MS(Meal Solution·간편조리식) 파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최고를 뽑는 자리다.


올해 행사는 여느 때와는 달리 조금 특별했다. 그동안 신선명장 선발대회는 사내 행사로만 진행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고객들에게 개방했다. 고객들이 직접 참여해 롯데마트 각 부문의 신선명장을 선발한다. 이번 행사에는 추첨을 통해 고객 80명과 파워블로거 16명 등 총 96명의 평가단이 참여했다.

고객 평가단의 경우 경쟁률이 105대 1에 달할 만큼 치열했다. 이들은 이날 자신에게 배정된 부문의 식재료 손질부터 제품을 만드는 과정까지 일일이 직접 참관하며 점수를 매기는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시식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신선명장 경진대회는 전국 롯데마트에서 근무하는 각 부문 직원 중 총 50명의 '선수'들을 선발해 진행한다. 각 지역별로 위생법규 등 1차 필기시험을 거친 후 이를 통과한 사람들은 2차 실기시험을 치른다. 여기서 선발된 최정예 멤버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각 지역별 최고 명장들이 나온 셈이다. 이번 대회의 경쟁률은 24.3대 1이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지역별로 응원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행사장이 북적였다.

행사장은 농산, 수산, 축산, MS 부문별로 방이 나눠져있다. 각 방에는 선수들이 각자 자신만의 레시피와 재료로 요리한다. 행사장 중간에는 참석자들이 오가면서 시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롯데마트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예전 대회에서 입상해 실제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미쓰유동'의 유부초밥부터 갱엿닭강정, 롯데마트의 PB 상품인 '요리하다' 어묵탕, 롯데마트의 베이커리인 브랜드인 '치즈앤도우', '스톤오븐 39'의 빵, 피자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롯데마트가 영입한 전문 쉐프가 직접 구워주는 토마호크 스테이크도 인기였다. 행사장만 둘러봐도 기분이 좋았다. 이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요동쳤다.

롯데마트는 이번 행사를 철저히 마케팅을 위한 자리로 기획했다. 자신들이 선보이고 있는 좋은 제품들을 고객들이 직접 체험하고 맛볼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심지어 아직 출시 전인 제품들도 선봬 고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도축된 지 사흘 안에 선보이는 돼지고기인 '삼지돈'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스윗 허그' 착즙주스와 신선한 방어, 연어를 즉석에서 회로 선보여 고객들을 즐겁게 했다. 덩달아 나도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각 부문 참가자들은 80분 동안 열심히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중간 평가자들의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고객 평가단은 롯데마트가 지급한 태블릿 PC를 들고 각 참가자들의 요리 과정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자칫 실수했다가는 바로 점수에 반영되기에 참가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가 기준은 부문별로 해당 분야의 특성에 맞게 다양했다. 공통적인 것은 작업 능력 및 숙련도, 상품화 가능성 등에 주안점을 뒀다. 실제로 신선명장으로 선정된 참가자의 '작품'은 롯데마트에서 제품으로 판매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제품이 출시될 것이라는 기대에 참가자들의 손놀림은 더욱 신중하고 더욱 섬세하게 움직였다.


행사 도중 부문별 방을 쉴새 없이 돌았다. 마치 마트에 온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고객님, 어서 오세요. 이 제품은 이렇게 만들었고요. 레시피는 여기에 있으니 사진으로 찍어서 직접 활용해도 좋아요". "보세요. 얼마나 신선해요. 이런 재료로 만들면 뭘 만들어도 맛있어요". 참가자들은 자신의 제품을 만들면서 쉴 새 없이 홍보에도 나섰다.

반면, 요리에만 집중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주변 다른 참가자들이 열심히 자신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을 때 눈치만 보고 입도 떼지 못하는 참가자들이 꽤 눈에 띄었다. 슬쩍 가서 물었다. "왜 소개를 안 하세요?". 얼굴이 빨개진 한 참가자는 머뭇거리며 "제가 말을 잘 못 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미안했다. 내겐 채점을 위한 태블릿 PC가 없다. 있었다면 점수를 더 줬을텐데.

행사장 곳곳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대부분 초청받은 고객들이다. 서서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담당 부문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의 방도 돌아다니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시식 코너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섰다. 표정은 다들 밝았다. 곳곳에서 롯데마트의 각 부문 임원들도 보였다. 지역 부문장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참가한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도 행사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각 부스를 돌았다.

사실 이번 행사는 김종인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그동안 사내 행사에 그쳤던 것을 고객들에게 개방해 고객들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자는 생각이었다. 김 대표는 "만날 신선식품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외치지 말고 직접 고객들에게 검증을 받자. 신선식품을 직접 구매하는 사람들이 고객이다. 그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비용이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 개방해서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그 덕에 일요일, 심지어 마트 휴무일임에도 롯데마트의 모든 임원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도 싫지만은 않았다. 행사장에서 만난 함 임원은 "생각보다 분위기가 무척 좋다. 직접 고객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솔직히 얼마나 되겠나. 여기서 이렇게 직접 만나 의견도 듣고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의 좋은 제품도 소개하고 여러모로 좋은 자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치열했던 행사가 끝나도 시상식이 열렸다. 롯데마트 신선명장은 부문별로 1명씩 뽑는다. 1등부터 3등까지 부문별로 1명씩, 최고 영예인 신선명장은 1등 4명 중 한 명이 차지하는 방식이다. 신선명장에게는 300만원, 1등에게는 각 200만원, 2등은 100만원, 3등은 50만원의 상금을 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선명장 1인에겐 정기인사 때 특진의 기회가 주어지고, 해외 선진 유통 현장 답사 기회도 부여한다. 아울러 자신이 속한 해당 지역본부의 트레이너가 돼 해당 지역의 점포를 돌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게 된다. 참가자들이 목숨 걸고 신선명장이 되려는 이유다.

올해 고객이 직접 뽑은 신선명장에는 롯데마트 진해점의 농산부문 김승아 씨가 꼽혔다. 김승아 씨는 2위와 압도적인 격차로 신선명장에 등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신선명장 경진대회에서 농산부문이 신선명장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축산부문이 3번, 수산부문이 한 번씩 차지했다. 롯데마트 내부에서도 놀라는 분위기다. 마침 행사날이 아들의 생일이었다는 그는 좋은 선물을 가져가게 됐다고 기뻐했다.

그가 제시한 제품은 철저히 고객의 니즈에 맞춘 과일 선물세트다. 기존 과일 선물세트가 획일적이고 정형화돼 있었다면 그의 제품은 고객이 원하는 과일로 구성할 수 있게끔 했다는 게 특징이다. 롯데마트는 앞으로 내부 검토를 거쳐 이를 실제 제품화하는 과정을 고민하기로 했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이렇게 열심히 심사할 줄은 전혀 몰랐다"면서 "고객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철저히 복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이번 신선명장 경진대회의 핵심은 '고객에게 묻는 것'이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직접 듣고 이를 데이터화해 앞으로 롯데마트의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신선명장에 농산부문이, 고객의 니즈가 반영된 제품이 선정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깔려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문득 '축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롯데마트의 신선명장 경진대회는 축제였다. 그 안에서 맛보고 경험하고 즐겼다. 모두가 기뻐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집에 도착해 옷을 벗자 옷에서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축제에는 고기가 빠질 수 없다. 그렇다. 난 축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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